정신의학신문 |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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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어떤 노래, 어떤 냄새, 어떤 장소와 조우했을 때 특별히 떠오르는 기억이 있으신가요? 누구나 특정한 장소나 사물에 노출되거나 감각이 자극받을 때 유독 기억나는 과거의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그 기억은 그때 느꼈던 감정까지 함께 소환하곤 합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유독 어떤 기억은 마치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나는 이유는 뭘까요?

우리가 경험으로부터 기억으로 저장하거나 배우는 것들을 ‘일화기억(episodic memory)’ 또는 ‘사건기억’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경험은 대뇌신피질의 신경망에 흔적을 남기는데, 사람이나 사물, 장소, 시간과 관련해 경험한 사건은 장기기억으로 저장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 ‘의미기억(semantic memory)’이란, 보다 일반적이고 개념적인 지식과 관련된 기억으로, 각국의 수도명이라든가 전화번호를 외우는 것 등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처럼 지식의 형태로 학습하는 대부분의 기억은 단기기억이 되기 쉽습니다. 기억을 자꾸 반복해서 회상하지 않는다면 잠시 동안 기억되다 사라지는 것이죠. 물론, 의미기억 역시 새로운 개념을 익히고 오랫동안 기억하려고 애쓴다면, 이 지식이 대뇌신피질에 시냅스 연결로 부호화되면서 장기기억으로 저장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기억을 강한 감정과 연결할 때 우리는 어떤 지식이나 사실을 학습해서 의미적으로 기억했을 때보다 더 오래 잘 기억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건을 경험할 때 오감을 통해 들어온 외부 환경의 모든 정보가 신경회로에 함께 기록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감각들에 대한 정보가 일화기억의 장면과 함께 우리의 신경망에 저장되는 것이죠. 

특히, 평소와 다르게 새로운 경험이나 강렬한 자극이 느껴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경우, 모든 감각이 그 경험에 강하게 연합됩니다. 보고, 듣고, 냄새를 맡고, 느끼는 감정의 자극들이 서로 다른 경로를 통해 뇌에 전달되면, 신경망이 활성화되고, 시냅스를 통해 엄청난 양의 신경전달물질들이 분비되는 데 이르는 것이죠. 그리고 이렇게 여러 종류의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면 다양한 느낌이 만들어집니다. 어찌 보면 느낌이란 화학적인 기억이라고도 할 수 있는 셈이죠. 이처럼 우리가 특정한 경험을 더 잘 기억할 수 있는 것은, 그날의 경험과 감각, 느낌이 조합되면서 우리의 뇌 속에 각인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과거의 경험을 기억하면 그때의 감정이 재현되는  것은 당시에 저장된 신경망이 활성화되면서 이전과 같은 화학물질을 분비하기 때문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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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한 젊은 여성이 있습니다. 그녀는 특별할 것 없는 주말 오후 시간을 평화롭게 보내고 있습니다. 여느 때처럼 동네 한 바퀴를 돌며 산책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거리에서는 오래전 헤어진 남자친구와 함께 즐겨 들었던 그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이제는 모두 잊었다고 생각했던 그와의 기억이 그 노래를 드는 순간, 바로 어제 있었던 일처럼 선명히 떠오릅니다. 사실 그 노래는 예전 남자친구가 생일날 불러 줬던 노래입니다. 그녀의 생일 때마다 평생 불러 주겠다던 그 노래. 덕분에 그와의 이별 뒤 우연히 그 노래를 듣게 될 때면 한동안은 그와의 추억이 떠올라 괴롭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날의 장면이 그저 한때의 예쁜 추억으로 남겨졌습니다. 

과거에 그녀는 남자친구(대상)와 함께 그 노래(청각 경험)를 즐겨 들었습니다. 특히 그녀의 생일에 남자친구가 노래를 불러 주는 이벤트(새로운 경험)를 해 줬기에 더욱 특별한 경험으로 기억되었죠. 그날 그녀는 남자친구의 이벤트 덕분에 감동을 받고 로맨틱하고 행복한 기분(느낌)을 느꼈습니다.

이렇듯 당시의 청각 정보와 시각 정보, 감정 정보 등이 기억 가능한 신경망에 저장되면서 어느 날 우연히 듣게 된 그날과 같은 노래로 인해 여자는 그날 있었던 일들과 감정까지 모든 것을 기억해 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과거의 신경회로를 활성화하는 데는 몇 가지 연합자극만으로도 충분했던 것이지요. 

 

한 실험에서 두 집단을 나누어 여러 영화를 보게 했습니다. 대조군은 아무런 지시 사항 없이 영화를 보게 했고, 실험군은 영화를 보는 동안 감정이입을 하지 말도록 요청했습니다. 실험이 끝나고 두 집단에 그들의 기억을 시험하는 질문을 했습니다.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영화를 시청했던 대조군 집단의 참가자들은 영화의 내용을 세세하게 기억해 냈습니다. 그에 비해 감정이입을 하지 않도록 요구받았던 실험군 집단의 사람들은 영화에 대해 많은 것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대조군의 경우, 참가자들은 영화에서 나오는 감각자극에 함께 감정이입을 하자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하고, 이로 인해 신경망이 더 강렬하게 활성화되고 연합되었기에 이후에 영화 내용을 더 잘 기억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제 어떤 노래를 듣거나 냄새를 맡을 때면 자꾸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는 이유를 알게 되셨나요? 경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선생입니다. 그리고 그 경험에 우리의 오감을 자극할 만한 다양한 감각 경험이 더해질 때 기억은 더욱 또렷하게 오래도록 남게 됩니다. 만약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소중한 순간이 있으시다면, 감미로운 음악과 맛있는 음식, 좋은 향기와 멋진 풍경이 함께이기를 바라겠습니다.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전형진 원장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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