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규홍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결혼 9년차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전업주부입니다. 결혼 초부터 남편과 갈등이 많았는데, 이게 단순히 성격 차이, 성장 환경 차이가 아니라, 남편이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어 벌어지는 일들이기에 제가 참는 데 한계에 다다른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 양육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점이 가장 걱정됩니다. 남편은 고학력자 전문직입니다. 두뇌 회전이 빠르고 이성적이고 분석적이라 전문 분야에서 능력은 뛰어난데, 인간관계에서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터무니없이 떨어지고, 평소 언행이 매우 유아적이고 유치할 정도입니다. 반면 저는 매우 감성적, 감정적인 편이라 남편의 언행 하나하나가 비수를 꽂듯 고통스럽게 느껴집니다.

또 남편의 집안은 매우 보수적입니다. 시아버지께서 목소리가 크시고 시어머니는 조용히 따르는 타입이세요. 요즘은 좀 덜한데 결혼 초에 저에게 대놓고 “여자가 시집가면 그 집안 귀신 될 생각해야 한다.” 이런 말씀하시고, 시댁에서는 권위, 질서, 상명하복이 자연스러운 집안 문화입니다. 

진짜 문제는 둘째 여자아이가 태어나고부터 시작됐습니다. 둘째에게 남편의 화살이 집중되었어요. 첫째와 둘째는 연년생인데 첫째가 남자아이, 둘째가 여자아이예요. 둘째는 짜증과 칭얼거림이 많지 않고 전반적으로 잘 먹고 잘 노는 순한 편이었는데, 가끔 화가 나면 굉장히 크고 세게 울었어요. 그때부터 남편은 둘째가 기가 세다며 이대로 두면 오빠를 쉽게 보고 이겨 먹을 수 있다며 아이를 정서적으로 학대하기 시작했어요. 장난이라면서 기어 다니는 아이에게 장난감 총을 쏘고, 허리를 못 가누는 아이를 미끄럼틀에 태워 일부러 위험하게 넘어지게 하고… 정말이지 사람 같지 않은 행동들을 아이에게 했어요. 

제가 중간에서 막고 싸우는 것도 한계가 있어, 시댁에도 알리고 이혼하겠다고 선언을 하면 남편은 그 순간만 좀 조심하고 자제하는 척을 했어요. 이 문제로 남편을 데리고 정신과 상담, 부부상담 등을 수차례 받아봤습니다. 물론 끈질기게 남편과 싸워 꾸준히 남편의 나쁜 행동은 줄어들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고쳐지지 않습니다.  

올해 일곱 살인 둘째를 여전히 틈만 나면 놀리고, 아이의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말을 하고, 첫째와 많이 차별합니다. 문제는 첫째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부터 부쩍 아빠의 행동을 따라하며 동생을 함부로 대한다는 겁니다. 동생을 수시로 놀리고 가만있다가도 툭툭 때리는데 발로 배나 머리 쪽을 차는 수준입니다. 제가 훈육을 하려고 해도 반항하고 오히려 더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둘째도 문제지만 첫째 아이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할 것 같아 그토록 걱정했는데, 우려가 현실이 되는 것 같아 앞으로의 미래가 막막하고 불안합니다.

아이들이 잘못 자라면… 무기력하게 끌려온 제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우울증이 만성화되어 늘 무기력하고 작은 일에도 짜증이 납니다. 아이들 앞에서는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어쩔 수 없이 티가 나는 것 같아 속상합니다. 늘 뭔가에 쫓겨서 억지로 하는 것 같고, 허덕이는 기분이에요. 이런 남편과의 가정생활을 지속하는 게 맞는지 늘 회의가 듭니다. 남편을 개선시킬 방법이 있을까요? 남편을 변화시키길 포기한다면, 제가 이런 남편과의 생활에서 흔들리지 않고 밝고 건강하게 살아갈 방법이 있을까요? 정신과에 가서 우울증 약도 많이 먹어 봤지만, 머리가 멍해지고 별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어쩌면 좋을까요?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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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남편 분과의 결혼생활과 관련해, 그리고 자녀 교육 및 양육 문제와도 관련해서 오랜 시간 고민되고, 회의감까지 드는 상황이라고 하시니 그동안 얼마나 많이 답답하고 힘드셨을까 싶습니다.

사연자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처럼, 오랜 시간 고착된 남편 분의 성격이나 성향, 또 인격적인 부분이 쉽게 변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더욱 고민이 깊으실 것 같습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바꾸는 것도 쉬운 문제는 아니기에, 타인을 바꾼다는 것은 정말로 어렵고 때로 이것이 가능하고 또 타당한 것일까 하는 질문도 해 봅니다.

사실 사연자님께서 남편 분과 지금처럼 계속 함께하실지, 또 다른 선택을 할 것인지에 관한 부분은 사연자님의 생각과 판단이 가장 우선시되어야 하는 문제이므로, 저희가 조언 드릴 수 있는 영역 밖의 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다만, 사연자님께서는 두 아이의 아버지인 남편 분께서 자녀들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가능한 최소화하고, 교육적으로나 관계적으로 좋은 아버지로서의 모습으로 조금이나마 변화되어 함께하기를 바라시기에, 이러한 고민 상담을 해 주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짐작을 해 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태어날 때 부모를 선택할 수 없습니다. 이는 사연자님의 자녀분은 물론이고, 사연자님이나 사연자님의 남편분에게도 해당됩니다. 지금 남편분의 성격이나 가치관, 행동 등이 자녀분들께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문제로 고민이신 것처럼, 어쩌면 남편분 역시 어린 시절에 가정환경이나 부모님으로부터 비슷한 어려움을 겪거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남편분의 집안이 무척이나 보수적인 편이고, 또 시아버지께서는 가정에서 가장 힘과 영향력이 센 존재로서 가부장적 사고가 강하신 분이며, 시어머니께서는 그러한 시아버지의 뜻에 크게 반하지 않고 시아버님께 맞춰 주는 삶을 살아오신 듯합니다. 이러한 시댁의 가풍이나 분위기, 가치관을 아마도 남편분은 어린아이 때부터 그대로 흡수해 오신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러나 시대는 많이도 변화했고, 더 이상 남녀 간의 차별이나 가정에서 부부간의 힘의 불균형이 당연시되는 세상이 아닙니다. 남녀는 물론 부부도 평등한 위치에서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할 뿐이지요. 여기서는 사연자님 가정의 구성원들과 맥락적 상황에서 몇 가지 주목해서 생각하고, 변화가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비록 쉽지 않고 더디더라도 남편분의 왜곡된 남녀 간의 성차별적 인식과 이에 대한 건강한 사고의 재정립이 필요해 보입니다. 남편분께서는 자신이 성장해 온 가정환경과 부모님 사이의 관계 패턴, 힘의 불균형 등이 자신의 가치관 정립 및 남성과 여성, 강자와 약자 등 힘과 권력에 대한 관점과 인식 형성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이것이 부부 관계나 자녀들의 양육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깊이 성찰해 보실 것을 권유 드립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찰을 바탕으로 힘(권력)과 성별에 대한 건강하고 평등에 기반한 가치관, 상호 존중의 가치관으로의 재정립이 우선적 과제로 다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사회적 위치도 공고한 성인에게 가치관이나 관점의 변화를 종용하는 것이 쉽지도 않을뿐더러 기대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결코 쉬운 과정은 아니지만, 꼭 필요한 부분일 수 있기에, 두 분께서 좀 편안하고 여유로운 시간에 이와 관련된 주제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다고 토론을 제안해 보시거나 남편분과 단둘이 논의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전문가나 제삼자와 함께 이 주제를 다루어 볼 수도 있겠습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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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부부간의 대화 방식을 한번 진지하게 살펴보시고 부정적인 악순환의 고리가 발견됐을 때 변화의 시작점을 찾는 것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사연에서 남편분께서 허리를 못 가누는 둘째 아이를 미끄럼틀에 태워 위험하게 넘어지게 했던 일이 있었다고 적어 주셨는데요, 정말 아이에게는 너무나 위험천만하고 남편분에게는 굉장히 화가 나는 상황이 맞습니다. 당연히 즉각적으로 남편분의 행동을 제지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때 즉각적으로 반응해 남편에게 강하게 화를 표출하는 것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일단은 남편분에게 짧게라도 유감을 표하고, 아이에게 다친 곳은 없는지 살피고 안심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이 상황에서 사연자님께서 크게 화를 낸다면, 남편분은 오히려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핑곗거리를 둘러댈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사연자님께서는 더 크게 화가 나서 싸움으로 번지게 되기 쉽습니다. 이렇게 될 경우 최대 피해자는 자녀분들입니다. 아버지의 심한 장난으로 크게 놀란 아이가 이번에는 부모님의 싸움이라는 불안한 상황에 또다시 노출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남편분과 따로 이야기할 시간을 마련해 다시는 그런 위험한 상황을 만들지 말 것을 짚고 넘어가는 것이죠. 그리고 이때는 남편분을 비난하거나 지적하는 태도로 일관하시기보다는 ‘나 메시지(I-message)’를 사용해서 당시 사연자님께서 자녀분이 다칠까 봐 얼마나 놀라고 걱정했는지를 진솔하게 전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상대의 잘못이 명백한 상황이라도 비난받는 당사자는 방어적이 되기 쉽습니다. 또 누군가를 개선하고자 할 때 비난이나 명령조로 말한다면 오히려 비협조적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니 사연자분과 남편분께서 ‘자녀들을 심신이 건강한 사람으로 잘 성장하도로 돕는다.’는 같은 목적하에 서로 독려하고 이끌어 주고 밀어 주는 한 팀임을 동의하고, 꾸준히 대화를 통해 자녀들에게 최대한 안 좋은 영향을 줄이고,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함께 대화하면서 합의점을 찾아 나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한편으로 우리가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고 또 개선하고자 노력하는 것도 많은 용기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따라서 남편분이 자녀분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아직 불만족스럽거나 미흡한 부분이 있더라도, 그간 많이 고치려고 노력하신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정하고 독려해 주시는 것이 좀 더 변화하고자 하는 남편분에게 더 강한 동기부여가 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완벽할 수는 없기에, 부모도 한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신다면, 개인의 결점이나 때로는 좋지 않은 영향도 자녀에게 줄 수 있음을 어느 정도 수용하실 수 있게 되실 겁니다. 이렇게 자녀분 양육과 관련된 문제를 비롯해 부부간 상호 이해를 넓히고 서로 교감할 수 있는 대화의 시간을 가지신다면 좋겠습니다. 자녀들은 부모-자녀 간의 직접적인 상호작용뿐만 아니라, 부모님 사이의 건강하고 따뜻한 상호작용을 보면서 마음의 안정감을 가지고, 건강한 상호작용을 모델링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 가족 간에 일상에서 잠깐씩이든 일주일에 하루든 여느 미디어나 방해받는 시간 없이 오로지 가족들끼리 얼굴을 맞대고 정서적인 교류를 하는 질 좋은 시간을 가지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가족 간에 긍정적인 상호작용의 질과 양을 조금씩 늘려 나가는 것인데요, 가족 간에 긍정적인 상호작용이 많을수록 때로 있을 수 있는 부정적인 상호작용에 대한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자녀분들의 정서적 회복 탄력성도 좀 더 키워질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남편분과 어떻게 자녀분들과 질 좋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을지 이야기해 보셨으면 합니다. 단, 이 시간만이라도 남편분께서는 의식적으로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언사나 행동을 하는 것은 절대로 삼가겠다는 다짐을 받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나 한 번의 다짐으로 몸에 밴 무의식적 행동이나 언어 습관이 한순간에 고쳐지는 것이 아님을 사연자님께서도 잘 인지하시고, 남편분께서 때로 잘 지키지 못하셔도 비난하거나 갈등으로 번지지 않도록 하고, 격려해 주셔야 이런 시간이 의미 있고, 계속해 나갈 수 있는 힘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또 그동안 이런 문제와 관련해 자녀분들에게 미쳤을 부정적인 영향이 크다고 판단되신다면, 자녀 분들과 함께 아동 상담소나 놀이치료실에 방문하시어 아동 심리검사를 비롯해 전문가 분과 상담하신다면 필요한 부분에서 도움을 받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연자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현재 겪고 계시는 우울증 치료를 꾸준히 받으시면서 아내나 엄마로서가 아닌, 개인적인 삶에 대한 만족도를 어떻게 높일 수 있을지 고민해 보셨으면 하는 겁니다. 가족을 제외한 한 개인으로서 추구하는 행복이나 즐거움은 무엇인지, 그러한 것들을 어떻게 충족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면서 일상에서 작은 즐거움과 행복감을 채울 수 있는 활동들을 찾아보고 꾸준히 이어 나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돌보고, 좋은 에너지들로 채울 수 있을 때 가족 구성원들과 건강하게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생겨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쪼록 오랜 시간 남편분과 자녀 양육 문제로 깊게 고민하고 노력해 오셨을 사연자님께 또 다른 많은 과제들을 안겨 드리는 것만 같아 한편으로는 죄송스러운 마음도 들지만, 지금껏 가정을 지켜온 뚝심과 애정으로 충분히 잘 해내시리라 믿으며,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강남푸른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규홍 원장

 

이규홍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의과전문대학원 졸업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수료
METTAA CBT / Schema Therapy Exp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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