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럽지만 분명하게 거절하기

정신의학신문  | 이슬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우리는 살면서 누군가에게 부탁을 하기도 하고, 또 받기도 합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부탁할 때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상대가 나의 부탁이나 요청을 들어주기를 바랍니다. 그런 나의 기대와 달리 부탁이 거절당할 경우, 무안하기도 하고 못내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하죠. 반대로 누군가가 내게 들어주기 힘든 부탁이나 요청을 해 올 때는 난감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유독 타인의 부탁을 거절하는 게 어려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분명 상대방의 부탁에 응하기 힘든 상황이거나 자신의 능력 밖에 있는 일인데도 말입니다. 결국 타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자신이 손해 보는 일이 생기거나 아무 대책도 없이 부탁에 응했다가 일을 미루거나 회피하다가 곤란한 상황에 처하기도 합니다.

거절하는 게 죽기보다 어려운 사람들, 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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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혹시 피플-플레저(people pleaser)라는 용어를 들어 보셨나요? 이 용어는 캠브리지 영어사전에 등재된 말로,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좋아하는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항상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행동을 인정해 주기를 바라는 사람’을 뜻합니다. 즉, 자신의 감정이나 욕구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타인의 기분이나 필요를 살피며 그들에게서 인정받고자 하는 경향이 강한 사람들인데요,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고, 안 좋은 평가나 비난받는 것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을 갖는 특징을 보이기도 하죠.  

이런 분들은 흔히 어릴 때부터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빠졌을 확률이 높습니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지닌 사람은 자기 주도성이 떨어지는 대신에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보고,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심리학자 존 브래드 쇼(John Bradshaw)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생겨나는 이유에 대해,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통해 설명합니다.

상처받은 아이가 내면에 자리 잡을 경우, 다른 사람이 자신을 싫어하거나 피할까 봐 몹시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다른 사람들이 자기 곁에 머물기를 바라며 타인의 기준에 따라 착한 행동을 과하게 추구하는 것이죠. 심리학자들은 상처받은 내면아이는 많은 경우, 어린 시절 가족 환경과 관계 경험, 부모의 양육 태도, 기질 등에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고 말합니다. 부모의 지나친 사랑이나 과보호, 양육자와의 불안전한 애착, 부모 사이의 잦은 갈등이나 방임, 정서적 학대 등이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이로 인해 자기 정체성이나 자기 기준을 제대로 확립하지 못하고, 낮은 자존감이 형성되기도 하죠.

사실 대부분의 부모들은 보통 자녀가 부모의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착한 아이’는 비단 부모에게만 착하게 굴지 않죠. 그것이 자기상으로 굳어진다면, 다양한 사회적 상황에서나 관계에까지 확장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만약, 어린 시절부터 자녀에게 ‘아니요!’라고 거부 의사를 밝히거나 거절하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인정해 주지 않았거나, 가르쳐 주지 않았다면, 또는 배우지 못했다면 지금부터라도 싫은 것은 싫다고, 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우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결정권은 바로 나 자신에게 있음을 마음 깊이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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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을 잘하는 사람들은 어떤 요청이나 부탁을 받았을 때 먼저 자신의 감정과 의사 등을 면밀히 살핀 다음 자신을 둘러싼 여러 상황 등을 고려해서 들어주기 힘들다고 판단되면 상대에게 정중하지만 분명하게 거절 의사를 밝힙니다.  

그런데 거절과 관련해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거절 자체가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관계를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거죠. 그러나 내가 거절하는 것은 바로 상대의 ‘부탁’이나 ‘요청’이지, 상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부탁받는 사람은 물론, 부탁하는 사람도 정확히 인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거절 그 자체가 아니라, 거절하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서로가 전혀 불편해지거나 불쾌하지 않을 수 있음을 아셨으면 합니다. 혹시 여러분도 누군가에게 거절하는 것이 많이 어렵다면, 다음의 몇 가지 방법을 기억하고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첫째, 기한을 두고 결정하세요

상대의 부탁에 즉시 응하는 것은 부탁 내용이나 자신의 현재 상황을 세심히 고려해서 반영하지 못해 성급히 결정했다가 후회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에 부탁한 사람의 면전에 대고 바로 거절 의사를 밝히는 것 또한 상대의 요청을 가볍게 여긴다거나 매몰차다고 느낄 수 있으므로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판단하는 것이 좋습니다. 단, 시간을 지체하는 것은 실례가 될 수도 있으므로,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답변을 주도록 합니다.

 

둘째, 거절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 주세요

대부분의 경우에 상대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지만, 들어줄 수 없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런 설명이나 이유도 말해 주지 않고, 거절 의사만 전달한다면 상대방은 납득하지 못하거나 자칫 오해가 생기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타 부서에서 업무적으로 협조 요청을 해 올 경우 현재 내게 부과된 일의 중요도나 우선순위에 따라 먼저 해결해야 할 일들이 있으니 당장은 협조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점을 설명해서 상대를 이해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셋째, “I’m sorry, but…”을 기억하세요 

누군가가 나에게 무슨 일을 부탁하거나 함께하자고 제안하는 것은 나의 능력에 대한 신뢰와 호감에 기반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상대의 부탁이나 제안을 수락하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함을 진심으로 전하는 것이 정중하게 예의를 갖춰서 거절하는 핵심 포인트입니다. 자기표현을 잘하는 외국인들이 많이 쓰는 표현 중 하나가 바로 이 “I’m sorry, but….”인 것도 우연은 아닐 겁니다. 

 

넷째, 융통성을 발휘해 대안을 제시해 보세요

부탁하는 사람의 마음은 때로 정말 간절할 때도 있습니다. 이럴 경우, 상대의 부탁을 모두 다 들어줄 수는 없어도 부분적으로 들어줄 수 있는 부분이나 다른 대안책이 있을 경우, 융통성을 발휘해 도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면서 거절할 줄 아는 것이 마지못한 부탁에 응하며 마음속으로 상대를 원망하거나 내면에 억울함이라는 감정을 차곡차곡 쌓는 것보다 훨씬 더 건강한 자기표현 방법입니다. 또 이렇게 정중하지만 분명하게 거절할 줄 아는 사람이 누군가에게 거절을 당했을 때도 불쾌해하지 않으면서 상대의 의견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습니다.  

거절은 나와 타인 간의 경계를 지키고, 내 삶의 주도권을 가지고 나답게 살기 위해 익혀야 할 중요한 삶의 기술입니다. 아울러 부드럽게 거절하고, 거절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은 서로를 존중하고 예의를 지키는 길입니다. 

물론, 거절이 어려웠던 분들이 하루아침에 쉬워질 리 없습니다. 지금까지 거절하는 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웠던 여러분이라면, 이제부터는 센스 있게 거절하기 위한 여러 방법을 시도해 보면서 가장 나다운 거절 방법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자신에게 맞는 경계를 정해 놓지 않으면, 사람들은 당신의 욕구를 무시하게 된다.”            _ 오프라 윈프리

 

당산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슬기 원장

이슬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당산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서울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 대전,서울지방병무청 병역판정의사
(전) 서울 중랑구 정신건강증진센터 상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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