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인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친구가 병원을 다녀요. 약도 먹고요. 정확한 진단명이 우울증인진 사실 잘 몰라요. 친구가 집안 사정이 복잡해요. 그래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 했고, 부모님이랑 자주 싸우고 맞은 적도 있어요. 약을 한 번에 다 털어 넣고 쓰러져 병원을 간 적도 있고요. 특히 가족들이랑 자주 싸우니까 하루하루 힘들어했어요. 근데 또 가족들과 사이가 좋을 땐 엄청 좋아요. 가족끼리 장난도 많이 치고 붙어 다니고요. 

처음엔 그냥 보듬어 주고 싶었어요.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위로해 주는 거밖에 없어서 너무 미안했고, 할 수만 있다면 집도 같이 구해서 집을 나가게 도와주고도 싶었고, 친구가 “힘들다, 오늘 밤은 같이 있자.” 하면 엄마한테 혼나고 엄마가 힘들어하는 걸 알면서도 친구와 밤늦게까지 같이 있었고요. 저희 엄마는 제가 들어올 때까지 안 자요. 물론 매번 새벽에 들어가는 건 아니지만 엄마가 잘 시간에 안 자고 기다리게 하는 게 매번 미안했어요. 이거 말고도 그냥 뭐든 무슨 일이 있던 저한테 이 친구가 1순위였어요. 힘들다 하면 안 달려갈 수가 없었어요. 

근데 한 번씩 현타(?)가 오더라고요. 예를 들면, 친구가 너무 힘들다, 부모님이 또 술 먹고 들어와서 행패 부린다, 진짜 죽고 싶다, 지금까지 나 챙겨 줘서 고마웠다, 하고 연락을 끊어 버려요. 그러면 저는 너무 걱정돼서 미치겠는 거예요. 그래서 다른 친구한테 연락해서 친구랑 연락 되냐, 어쩌면 좋냐 하면서 다시 연락 오기를 기다리며 계속 연락하죠. 혹시 그 친구에게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길까 봐 울면서 말이에요. 근데 갑자기 인스타 스토리에 그 친구가 부모님이랑 화해하고 사진 찍은 게 올라와요. 그걸 보면 ‘무슨 일이 안 나서 진짜 다행이다.’ 하지만, 그걸 수십 번을 반복하다 보니 결국 계속 망가지고 있는 건 저더라고요. 

사실 저도 부모님과 트러블이 많아요. 집에서 베개에 얼굴 파묻고 울고, 너무 힘들 때는 밖에 나와서 걸으면서 혼자 소리 지르며 울고, 우울증 약도 먹어요. 근데 친구한테 제 얘기를 못하겠더라고요. 친구도 힘든데 내 얘기까지 해 버리면 더 힘들어할 것 같아서요. 그래서 친구가 기분 좋고 괜찮아 보일 때 한 번씩 말하긴 했는데, 이 친구는 위로를 잘 못해요. 그래서 말하나마나 똑같았어요.

근데요 이 짓을 한지 4년 정도 됐는데, 이젠 못하겠어요. 연락이 오면 답장도 전이랑 다르게 하게 되고, 정신 차리라고 지금 네가 힘들어해 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힘들어할 시간에 해결책을 찾아라, 이런 식으로 세게 말하게 돼요. 그리고 자꾸 이 친구 때문에 제가 잃은 것들이 생각나요. 이 친구랑 다닌다고 욕먹던 시절이 생각나고, 정말 친했던 친구들과 멀어진 게 생각나서 힘들어요. 내가 잘못 살아온 것 같고, 지금 보면 저한테 남은 건 없는 것 같아요. 남은 게 이 친구 한 명 있긴 해요. 근데 이게 맞는 걸까요? 

이런 친구랑 왜 4년 동안 붙어 지내느냐고 하실 수 있지만, 저는 이 친구랑 놀 때 제일 재밌고, 유머 코드도 잘 맞고, 화내는 포인트도 잘 맞았어요. 근데 지금은 놀 때는 뭐 그럭저럭 전이랑 똑같은데, 힘들다고 연락 올 때면 제가 미쳐 버리겠어요. 답장을 안 해 주자니 너무 힘들어하고, 해 주자니 좋은 말이 안 나오고, 이런 관계가 지속되다 보면 저도 이 친구도 힘들어질 것 같아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친구랑 거리를 두는 게 맞는 걸까요? 아니면 다른 방법이 있을까요….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올려주신 고민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사연자님께서는 오랫동안 불안정한 가정환경 속에서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친구 분과의 관계를 어떻게 이어 가면 좋을지 고민이 깊으시네요.

친한 친구의 우울증 증상과 불안한 심리 상태, 위태로워 보이는 친구의 행동을 오랫동안 지켜보는 것은 사연자님께도 많이 불안하고 심적으로 힘들어지는 상황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단지 친구라는 이유로, 힘든 친구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싶고, 도움을 주고 싶은 것은 친구를 걱정하는 마음은 우정에서 우러나오는 선한 행위이겠지요. 

다만, 그런 일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너무 많이 반복되다 보니 사연자님께서도 일상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고,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불안하고 긴장감이 높아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친구 분께서 조금씩 회복되는 모습을 보인다면 차라리 좀 더 힘을 내서 다독여 주실 텐데, 좀체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는 친구 분의 상태를 곁에서 지켜보면서 많이 지치실 수밖에 없겠지요. 

 

일단 현재는 사연자님께서 친구 분을 케어해 주기 위한 능력이 어느 정도 한계에 도달했음을 먼저 인정하실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사연자님께서도 우울증 약을 드실 정도로 스스로도 힘들고 전문가나 주변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도 있으신 데다, 이미 친구 분에게 위로가 되고, 지지적인 역할을 해 주기 위한 최선을 노력을 기울이신 듯해요. 지금은 사연자님의 심리적인 에너지가 많이 소진된 상태로 짐작됩니다. 

우리 삶에서 친구란 존재는 정말 중요하고도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지금 너무나도 힘든 나 자신’을 외면하고 방치하면서까지 친구를 보살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제부터는 사연자님 자신을 보살피고, 회복하는 데 집중하시기를 권유 드립니다. 이 세상의 중심은 누가 뭐라 해도 바로 ‘나’입니다. 내가 있고 나서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는 것이지요. 이는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세상의 이치입니다.  

더군다나 지금 사연자님께서는 그 친구 분 때문에 그동안 ‘잃어버린 것들’이 떠올라 후회될 만큼 착잡한 기분을 느끼시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그동안 주변의 다른 친구들이나 가족들을 챙기거나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할지언정 그 친구 분에게는 사연자님의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투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것은 누가 시켜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사연자님의 선택이셨습니다. 그리고 사연자님께서 말씀해 주신 대로 그 친구와 함께했던 시간이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었을 겁니다. 즐겁고 행복한 기억도 많으셨을 거예요. 그러니 지나간 시간을 너무 후회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사연자님께서는 친구를 정말 아끼고, 또 힘든 친구를 위해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도 가져 보았고, 정말로 힘이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어요. 이렇게 진실된 마음으로 타인을 위해 주고, 걱정하는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 경험을 통해 친구와 함께 웃고 울며 수많은 감정을 느껴 본 시간들은 언젠가는 추억이 되고, 사연자님의 인생에도 도움이 되는 자양분으로 차곡차곡 쌓였을 테지요. 

이제부터는 그 에너지를 본인과 주변의 다른 소중한 분들에게도 한번 쏟아 보세요. 젊은 시절에는 특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맺으면서 이해의 폭과 시야를 넓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연자님의 활동과 인간관계의 범위를 너무 한두 분야나 사람에 국한하지 말고, 열린 태도로 시간과 에너지를 고루 분배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시기를 권유 드려요. 

 

그래도 그 친구가 여전히 신경 쓰이신다면, 솔직하게 본인도 요즘 많이 힘들다고 고백하시고 본인이 받아 줄 수 있는 적정선을 설정해 보세요. 본인이 친구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이나 감정적 경계를 어느 정도 설정해 놓고, 그 정도로만 친구와 관계를 이어 가는 거지요. 물론 기계적으로 딱 선을 정하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러한 경계 지점을 설정하고, 자신의 에너지가 너무 고갈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지금처럼 친구의 하소연을 들어 주기 힘든 상태에서 “지금 네가 힘들어해 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라고 말하기보다 차라리 “나도 요즘은 힘든 너의 마음을 받아 줄 만한 여력이 안 된다. 나도 많이 힘들다. 미안하다.”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해 보세요. 

그리고 친구 분의 문제에 대해서는, 그것을 받아 줄 여력이 있고, 실제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해결해 나갈 것을 진심으로 응원해 주세요. 그렇게 하는 것이, 두 분 모두를 위해 좋은 길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울러 사연자님께서도 꾸준히 우울증 치료를 잘 받으시고, 가족 분들이나 다른 친구 분들과도 잘 소통하시면서 행복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시기를 응원하겠습니다.

 

당신의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김인수 원장

김인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당신의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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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때 선생님 글을 만났더라면 좀더 빨리 우울감에서 헤어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글 내용이 너무 좋아 응원합니다. 사소한 관계의 행복이 회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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