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했지? 많이 힘들었을거다.

[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KBS 화면 캡처

어느 수능 다음날, 개인적으로 즐겨 듣던 고(故) 신해철씨의 라디오에서 이런 이야기가 흘러나왔던 것이 기억이 난다

‘어릴 땐 수능이 인생의 전부인줄 알겠죠. 그런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렇지 않을거에요. 수능보다 더 중요하고 결정적인 것들이 많아요. 10년만 지나도 인생에 가장 중요한 사건을 손꼽아 보라면 수능은 손가락 안에 들지도 못할 겁니다’

그의 사적인 견해일 지도 모르고, 가수로 살아온 그의 특수성을 생각한다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를 소리이긴 하지만, 이야기의 골자는 수능이 지나치게 중요한 것처럼 수험생들에게 부담을 주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마치 인생에 다시 없을 엄청나게 중요한 고비를 넘는 것처럼 온 나라가 들썩 들썩이고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으니 너무 부담스러워하지 말라는 그의 이야기가 수험생들에겐 어느 정도 위안이 되어 주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수능자살’이라는 단어가 생길 만큼 매해 수험생들의 자살이 끊이지 않는 오늘, 그 어조는 각각 다르지만 성적에 비관하는 청소년들에게 건네는 위로의 말들이 대부분 그와 같지 않나 싶다

‘인생엔 수능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아름다운 일들이 많아요. 지금 큰일 같지만 나중에 이겨내고 나면 별일이 아닐 거에요. 이런 수능 같은 걸로 당신 인생의 책장을 덮지 말아요’

맞는 말이다. 충분히 공감한다. 인생은 수능이라는-대단해보이지만 사실 별것 아닌 작은 사건보다 훨씬 더 무궁무진한 기쁨과 시련으로 가득 차있다. 수능 실패 따위로 저버리기엔 인생이 너무나 아쉬울 따름이다. 그렇지만 이런 위로는 어딘지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것 같다. 내 위로의 말에 두 손을 꼭 붙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던 아이가 뒤돌아서고 나면 입을 비죽이며 쓸쓸하게 혼잣말을 내뱉을 것만 같다.

‘수능만 보고 공부하랄 땐 언제고....’

 

정신과 용어로서 공감(empathy)은 문자 그대로 ‘자신을 그 상황에 대입시켜 느끼려 하는 것(feeling oneself into)’이다. 스스로의 정서적, 인지적 경험을 토대로 이를 하나의 잣대로 이용하여 타인의 내적, 주관적 상태를 평가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수능과 함께 마음 속 정체성의 일부가 함께 떨어져 나간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조언’보다는 바로 ‘공감’일 것이다. 매일 매일을 ‘수능만이 목표다’ ‘수능만 끝나면 하고 싶은 것 해라’ ‘대학만 잘 가면 다 할 수 있다’ 라는 주문 같은 잔소리에 파묻히듯 깔린 채로 온 국민이 함께 카운트 다운 해주던 수능을 기다려오던 아이들이 느끼던 그 인생의 무게를 어른들은 너무 빨리 쉽게 잊어버린다. 그 시절 어깨 위를 짓누르던 입시의 무게가 그 때엔 비할 바 없이 거대한 인생의 무게였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채 아이들에게 건네지는 위로의 한마디는 그렇게 공감에서 한 발짝씩 멀어진다. 그렇게 아이들은 관심 속에 소외 받는다.

 

우리나라 청소년(13세~19세)의 12.1%가 자살충동을 경험하였고, 그 중 39.2%로 가장 큰 원인을 차지하는 것은 학교 성적 및 진학 문제라고 한다. 10~19세 인구 10만명 당 자살자수는 지난 2001년부터 10년간 50%이상 증가했다. 성적과 입시는 이미 해가 갈수록 더 많은 아이들을 자살 앞으로 내몰면서 우리나라 중고등학생들에게 짐 지워진 압박감의 무게를 더하고 있다. 반면, 늘어가는 자살자수가 무색하게 입시 경쟁은 식을 틈 없이 과열되고만 있다.

학벌위주 사회에서의 차별과 멸시에 상처받은 어른들의 아픔. 학벌 없이도 편히 먹고살 금수저를 아이들에게 물려주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어른들의 열등감. 어른들의 그 시린 서러움은 ‘대학만 잘가면 돼’에서 ‘대학 못가면 평생 실패할거야’로 이어지는 맹목과 집착으로 아이들에게 투사(projection)된다. 이제 겨우 열 몇해를 갓 넘긴 어리고 혼란스러운 영혼들에게 떠넘겨지는 어른들의 그 서러운 눈물은, 실패를 용납할 수 없는 막대한 중압감으로 짐 지워진다. 그 밖에 다른 인생의 가치는 돌아보지 못하는 경주마의 눈가리개로 채워진다.

그렇게 맹목적으로 달려온 아이들이 입시의 실패에서 겪게 되면, 그 극단적인 좌절감 앞에 건네지는 위로의 한마디, ‘수능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야’. 그 위로의 한마디에선 아무래도, 어른들이 떠넘긴 사회의 부조리를 슬쩍 외면한 채 아이들의 미성숙함으로 탓해버리는 책임회피의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학벌주의, 경쟁과열, 입시위주의 사회적 풍토나 교육문화의 구조적 개혁과 전국민적 의식 계몽을 부르짖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라디오에서 들려왔던 조언이 잘못된 것이라며 비판하려 하는 게 아니다. 다만 수능을 마주한 아이들, 이제 막 수능을 마친 아이들의 상처에 진정 필요한 것은 따뜻한 ‘공감’이 아닐까 싶다는 이야기가 하고 싶다.

수능 날 아침 미역국을 끓여주며 ‘혹여나 시험에 망치거든 엄마가 미역국 끓여줘서 그런 것이겠거니 하며 엄마 탓하고, 부담 없이 다녀오너라’라고 이야기했다는 어느 어머니의 이야기처럼,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아이들이 짊어진 무게를 함께 나눌 공감의 한마디이다. 우리가 짐 지운 어긋난 사회의 무게에 입시 실패라는 자책감까지 더하기에는 아이들의 지친 어깨가 너무 가냘프다.

‘고생했지’ ‘많이 힘들었구나’

그저 함께 아파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절망의 늪에서 스스로를 끌어올릴 동앗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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