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는 회복을 낳고_1화 조현병 환자로 산다는 것

 

사진_픽사베이

 

나는 조현병 환자다. 스무 살 때인 2003년부터 병이 시작되었다. 그때는 정신분열증 혹은 정신분열병이라 불렸다. 나는 아무에게도 내 병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심지어 몇 안 되는 대학교 친구들에게 조차 사실을 숨겼다. 내 입으로 정신분열증이란 단어를 내뱉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증상들마저 숨길 수는 없었다. 밤마다 먹는 약에 취해 하루 12시간을 잤다. 오전 수업에 늘 지각하거나 결석하는 나를 보며 친구들은 집도 가까운데 늦는다며 놀리곤 했다. 그나마 깨어있는 시간에도 늘 정신이 멍해 있었다.

 

군대를 면제 받았을 때 친구와 주변 사람들이 사유를 궁금해 했다. 처음에는 면역력이 약해서라고 둘러댔다. 그러다가 콩팥이 하나 없어서 면역력이 약하다고 말하곤 했다. 나중에는 어릴 적 교통사고로 콩팥 하나를 잃었고 이로 인해 면역력이 약해져 군대를 면제 받은 걸로 정리했다. 차마 내 입으로 정신분열증 환자라서 면제 받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말하면 나를 인격이 분열된 다중인격자나 사이코 패스로 바라볼 것 같았다.

 

하지만 서류가 내 앞에 놓여 있을 때는 거짓말 할 수가 없었다. 취업을 위해 이력서를 작성할 때 군필 여부와 미필에 따른 면제 사유를 적어야 했다. 육군 병장 제대라고 쓰기 싫었다. 거짓말을 해야 할 정도로 내 병에 대해 수치스럽게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정신분열 장애라고 적는 건 더욱 싫었다. 낮은 학점에 정신 병력까지 있는데 날 뽑을 리가 없다. 게다가 인사담당자로부터 값싼 동정심이나 편견을 심어 주고 싶지도 않았다. 대신 작은 회사들은 이력서가 비교적 자유형식이였다. 그래서 아예 학점과 병력 유무의 칸을 지우고 자기소개서 위주로 작성했다. 자기소개서를 솔직하고 담백하게 잘 쓰다 보니 중소 출판사, 언론사 위주로 여러 회사들에 합격할 수 있었다. 물론 군대나 병에 대한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정신분열병이라는 병을 내가 먼저 말하지 않으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전혀 지장이 없을 거라 믿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작은 사건에서 깨지기 시작했다.

 

취업을 할 때 빠질 수 없는 스펙이 운전면허증이다. 나 역시 대학을 졸업하고 시간적 여유 속에 운전을 배웠다. 한겨울이었고 그 해에 가장 눈이 많이 내리던 날 주행시험까지 합격했다. 필기와 실기를 모두 좋은 성적으로 합격했다. 그리고 운전면허증 신청서를 제출하려 가까운 면허시험장 발급과에 갔다. 준비 서류를 받고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을 써내려 갔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문제에 봉착했다. 정신과 치료 병력이 있는지 묻는 칸이였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병명을 적어야 했다. 많이 망설였지만 결국 사실대로 ‘정신분열병’이라는 단어를 적어야 했다. 밑에 허위사실을 적을 경우 법적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는 문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서류를 받아 든 직원은 잠시 당황하더니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눈빛이었다. 직원은 바로 상급자에게 보고했다. 상급자는 나를 따로 불러내 사무 공간 안쪽 자리에 앉혔다. 치료를 받은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어느 병원을 다니고 있는지를 물은 뒤 의사소견서를 떼어 오라고 주문했다. ‘이 환자는 운전해도 아무 문제가 안된다’라는 내용의 소견서를 떼어오라는 것이다. 나는 알았다고 하고 면허시험장을 나와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 창밖을 바라보다가 내려서 집을 향해 걷고 있었다. 그때까지는 머릿속에 아무생각 없이 멍했는데 아무도 없는 골목길에 들어서자 눈물이 쏟아졌다. 그 직원의 눈빛을 떠올리며 내가 범죄자도 아니고 시한부 환자도 아닌데 왜 그런 눈빛으로 쳐다봤는지 분하고 억울하다가 슬퍼졌다. 그리고 운전을 하는데 의사소견서까지 필요할 정도로 내가 부족한 사람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정확히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으로 인해 골목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이 일이 ‘정신분열병’이라는 병명을 가진 환자로서 겪은 첫 번째 현실이었다.

 

사진_픽사베이

 

이후 교회를 통해 미국에 단체로 여행을 갈 기회가 있었다. 모두들 여행 물품과 함께 여권과 비자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독 나만 비자 신청이 거부되었다. 직접 비자를 받기 위해 미국 대사관을 방문했다. 대사관 직원과의 인터뷰를 위해 여러 가지를 준비했다. 신청자가 영어를 너무 능숙하게 하면 미국 내 불법 체류가 의심될 수 있고 반대로 너무 못해도 발급이 거부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난 평상시대로 영어를 하면 되는 수준이니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차례가 되어 미국인 대사관 직원과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어려운 말은 옆에 통역관이 설명해 주었다. 미국에 가는 목적, 기간, 장소 등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 이어졌다. 그리고 혹시나 했던 군대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아마도 군대를 다녀오지 않으면 병역을 회피하기 위해 미국에 불법 체류한다는 의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병역 기록이 없기에 충분히 의심 받을 수 있었다. 그래도 거짓말을 할 수 없어 면제라는 사실을 말했다. 직원은 군대를 면제받은 이유에 대해 물어봐도 되냐고 말했다. 나는 잠시 주춤해하다가 건강이 좋지 않아서라고 대답했다. 직원은 다시 어떤 건강 문제 때문인지 물어봤다. 내가 대답하기를 망설여하자 유리벽 아래 구멍으로 펜과 종이를 건네 주었다. 뒤에 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다른 사람들이 보거나 듣지 못하게 하려는 배려였다. 종이에 솔직히 ‘정신분열병’이라고 적었다. 그리고 종이를 통역관에게 건네 주었다. 통역관의 설명을 들은 미국인 직원은 내게 솔직하게 적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똑같은 질병에 대해서도 한국과 미국의 문화에서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가 있음을 느낀 사건이었다.

 

이후 병이 시작된지 10년이 지난, 2013년 서른살이 되었을 때다. 우연히 ‘정신분열병’이 ‘조현병’이란 이름으로 바뀐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겪고 있는 조현병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었다. 그래서 포털사이트에서 병에 대해 검색 하곤 했다.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환자와 가족들의 노력으로 2011년 “현악기의 줄을 고르다”라는 뜻을 가진 ‘조현병’이라는 새 이름이 탄생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이전까지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 ‘대한조현병학회, 조현병 바로 알기 캠페인 진행’이라는 뉴스기사 제목을 보았다. 클릭해서 내용을 읽어 보았다. 조현병의 자세한 뜻은 ‘현악기의 줄을 고르면 좋은 소리가 나는 것'처럼, 치료를 통해 뇌와 마음의 신경망을 조절하면 건강한 생활이 가능하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환자와 가족들을 대상으로 공모전도 실시한다고 했다. 수필과 사진, 그림 부문으로 나누어 접수를 하고 있었다. 평소 글쓰는 걸 좋아했기에 '질환극복수기'를 주제로 수필 부문에 도전했다. '용서는 회복을 낳고'라는 제목의 이 수필은 과거 증오와 분노에 잡혀 살던 내가 성경 말씀대로 용서하여 회복되어 가는 과정을 담았다. 그리고 한 달 뒤 그 수필은 대상작으로 선정되었다. 몇 일 뒤에는 국민일보를 비롯해 여러 언론사에서 이번 캠페인과 수상작들에 대해 다루어 주었다. 이 일을 계기로 조현병을 이겨내는 것은 물론 글 쓰는 것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또한 나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책을 써내는 것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이라는 확신도 갖게 되었다.

 

물론 최근에도 살인사건의 범인이 조현병을 갖고 있었다는 내용의 뉴스가 미디어를 통해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있다. 인터넷 검색 순위에 조현병이 상위를 차지할 때면 또 병이 있는 누군가가 살인을 저질렀구나 싶어 가슴이 철렁거린다. 반면에 희망적인 뉴스들도 볼 수 있다. 인구의 1%가 흔히 겪을 수 있는 조현병에 대한 설명과 환자들 모두가 생각만큼 위험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보도도 있다. 정신질환자의 범죄율(0.08%)이 일반인의 범죄율(1.2%)에 비해 15분의 1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많이 알려져 있다.

 

그리고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을 통해서도 환자들과 가족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 또한 일반인들에게 이 병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정보를 주고 싶다. 물론 나는 의사나 교수가 아니다. 하지만 글을 쓰고 출판일을 하고 있는 조현병 환자로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믿는다. 그것이 내 사명이고 하나님이 이 병을 허락하신 이유이자 축복이다.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