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김지용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B씨의 사연:

 

안녕하세요, 힘든 시간을 견디고만 있는 저희 언니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를 찾고 싶어 이렇게 도움을 요청드립니다. 언니는 50대의 나이로, 남편, 두 아이와 생활 중인 주부입니다.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려운 집안 형편에 네 명의 동생들 뒷바라지하느라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직장을 다니며 가장 역할을 했습니다. 그 덕분인지 다섯 남매 모두 잘 자라나 가정을 이루고 안정적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언니는 5년 전쯤 남편 직장 관계로 원래 살던 곳에서 떨어진, 시댁 식구들이 살고 있는 지방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언니는 익숙한 환경, 친구들과 헤어지고 싶지 않았지만 남편의 일방적인 결정에 의해서 이사를 하게 되어 큰 불만을 가졌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언니는 시댁 식구들이나 친정 식구들에게 헌신적인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구보다도 당차고 씩씩하면서도 상냥하던 언니의 모습이 요즘 들어 많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눈에 띄게 우울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긴장하고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구강 작열감과 전신통증으로 매우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부터 기분이 예전과 다르다고 느꼈지만 갱년기 증상 정도로 여겼었는데, 1년쯤 전부터는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나고, 억울한 생각과 외로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혀가 마르고 갈라지는 현상이 생기고 수시로 전신에 통증이 생겨서 너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진_픽셀

 

그래서 원인을 찾고자 집 근처의 구강내과, 내과, 산부인과, 정신건강의학과, 통증의학과를 포함해 여러 병원을 다니면서 진찰을 받고, 대학 병원 구강내과에서 구강작열감증후군으로 진료도 받았습니다. 이 병원들에서 공통적으로 항불안제를 처방해 주었고, 심리적인 원인이 크다면서 정신과 협진과 상담을 수차례 권유받았습니다. 그런데 언니는 모든 처방된 약을 한두 번 먹다가 증세가 더 심해진다며 투약을 거부했습니다. 의사선생님들의 말씀을 왜곡해서 이해해서 신뢰하지 못 하는 것 같았고, 재방문을 안 했습니다. 부작용이 덜할까 하는 생각에 한방병원에 3주 정도 입원치료하기도 했지만, 입원기간 내내 더 불안해하고 통증 때문에 힘들어했습니다.

 

언니는 본인 의지가 강한 성격이라 지금의 통증들이 심리적 문제라면 어떻게든 본인의 의지로 이겨보겠다며 열심히 좋은 글 읽고 긍정적 생각을 하려는 등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여전한 본인의 상태에 좌절감을 느끼고도 있습니다. 그리고 약 성분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을 하고, 부작용들도 염려하면서 약이나 의사의 도움 없이 극복하고 싶다고 합니다.

저희 언니를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요.

 

 

뇌부자들의 답장:  

 

마치 아버지같이 가족들을 챙겨온, 강하기만 하던 언니의 힘들어하는 모습이 낯설기도 하면서 많이 걱정되시겠네요. 오늘 이 지면에 미처 다 싣지 못한 너무도 상세한 글에서 B씨께서 언니를 얼마나 걱정하고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분명히 몸이 아파서 여러 병원들에 들렸는데, 공통적으로 정신과 치료를 권유하는 모습에서 언니께서는 의아함을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신체통증을 호소하지만 여러 검사들에서 이상을 찾지 못한 후 결국 정신건강의학과에 찾아오게 되는 많은 분들께서도 대부분 쉽게 납득하지 못하시거든요. 환자분들 입장에선 굉장히 답답하고 불안한 상황이라, 차라리 MRI, CT 등 검사 결과 상 신체 이상이 발견된다면 속이라도 시원하겠다는 말씀들을 하시곤 해요.

 

사진_픽사베이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현재 언니의 증상들은 신체증상장애 혹은 우울증으로 인한 것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우울증에 대해선 이전에도 들을 기회가 있으셨을 테니 다소 생소한 질환일 수 있는 신체증상장애에 대해 설명을 드려보겠습니다. 하나 이상의 신체증상이 있으면서, 이와 연관된 과도한 생각이나 느낌, 행동들이 일상 생활을 여러 방식으로 망가뜨리게 된다면 신체증상장애를 진단할 수 있습니다. 신체증상에 대한 생각에 종일 사로잡혀 심하게 불안해하시고, 그 증상의 원인들을 찾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시간과 돈, 그리고 에너지를 소모하는 모습을 보이시곤 하죠. 우울장애나 불안장애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매우 흔하고, 그 질환들의 특징인 뇌의 세로토닌이나 노르에피네프린의 불균형이 신체증상장애에서도 동일하게 관찰됩니다. 그러한 뇌 호르몬의 불균형이 몸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부위를 가리지 않는 다양한 신체통증들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죠.

 

이런 ‘심리적 스트레스가 신체증상으로 나타나는 신체화 현상’은 일종의 방어기제로,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는 알아채지 못하게 되고 의지로 조절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신체화 방어기제를 처음으로 알아낸 프로이트의 경험을 이야기해볼게요. 엘리자베스라는 한 젊은 여성은 형부에게 사랑의 감정을 품고 있었는데, 스스로는 그것을 가족으로서 느끼는 감정이라고 인식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 갑자기 언니가 사망하여 형부와 함께 참석한 장례식에서 ‘이제 그는 자유의 몸이니 나와 결혼할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떠오른 것이죠. 당연히 자신의 도덕관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그 생각을 그녀는 바로 억압해서 무의식으로 집어넣었고, 이후에 다리 통증이 발생했어요. 프로이트는 무의식에 숨어있는 내적 갈등이 신체 증상으로 전환되어 나타난다고 생각했고, 면담을 통해 그녀의 무의식에 숨어 있던 생각과 감정을 다시 의식의 수면 위로 끌어올려 정리하게 되자 다리 통증도 자연스레 사라졌다고 해요.

 

현재 B씨 언니의 마음 깊숙한 곳에도 스스로 인정하기 힘든 내적 갈등이 있을 것입니다. 평생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만을 위해 살아온 인생에 대한 회한, 자신과 타인들에 대한 분노 등의 여러 생각과 감정들이 휘몰아치고 있겠죠. 의식 위로 떠오르기엔 너무 부담스럽고 인정하기 힘든 이런 감정들은 무의식 속에 계속 억눌린 채 활활 타오르며 스스로를 괴롭히고, 그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무의식이 선택한 것이 현재의 신체통증이에요. 단지 받아들이기 힘든 생각과 감정들로부터 주의를 돌리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고, 그러한 생각을 잠시라도 가진 자신에 대한 처벌적 의미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겠죠.

 

사진_픽셀

 

이와 같이 B씨 언니의 신체통증은 무의식적인 내적 갈등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며, 그 과정에 발생한 뇌 호르몬 체계의 불균형이 증상들에 영향을 미치고 있어 이들 각각에 대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내 적갈등을 깨닫고 해소하도록 도와줄 수 있는 상담치료와 뇌 호르몬 불균형을 조절해줄 정신과 약물치료, 둘 다 필요한 것이죠.

 

계속 말씀드린 것처럼 신체화 방어기전은 무의식적인 과정이기 때문에, 대부분 환자분들께서 자신의 심리적 원인에 대해 알아차리지 못하고 주변의 지적에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분들께서 신체의 증상에 따라 여러 병원들을 전전하고, 효용이 입증되지 않은 여러 비과학적 치료법 등에 아까운 시간과 돈을 소비하곤 하죠.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신체증상장애는 정신과 의사들에게도 쉽지 않은 질환입니다. 치료를 시작하기도, 지속해 나가기도 어렵고 100% 회복된다고는 말씀드릴 수 없죠. 하지만 단연코 회복가능성이 가장 높은 치료법이기 때문에 가족분들께서 언니를 잘 설득하셔서 정신과 치료를 시작하게 되면 좋겠습니다. 언니께서 꼭 좋은 치료자를 만나서 예전의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팟캐스트 뇌부자들 [16화 Part 1] "난 몸이 아픈데 정신과에 가라고요?" 에피소드

[더 자세한 내용들을 팟캐스트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아이폰 Podcast: https://itun.es/kr/XJaKib.c

팟빵: http://www.podbbang.com/ch/13552?e=22395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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