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지용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N씨의 사연:

 

안녕하세요, 심리학과 철학에 관심이 많은 28살 취준생입니다. 저는 언제부터인지 인간관계에서 포기가 잦아졌습니다. 돌이켜보면 학창시절부터 피해의식이 있어서인지 사람들을 싫어했습니다. 학교에 1살 일찍 들어갔는데, 초등학교 졸업할 때쯤 왕따 비슷한 일을 겪었지만 중학교까지는 대체로 아이들과 잘 어울려 놀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3학년 때 친해진 짝꿍한테서 다른 친구를 험담하는 말을 듣자 ‘나도 책잡히면 뒤에서 저런 소리를 듣겠구나’ 생각이 들며 짝꿍에게 정이 떨어진 이후로는 혼자 다니게 되었습니다. 이후 전문대로 진학을 했는데, ‘공부 못하는 꼴통들이 가는 학교’라는 기존의 선입견이 더 강해져 아무와도 어울리지 않고 딱 1명의 친구와 친하게 지냈습니다. 그 친구의 입대 후에는 복학생 형들과 어울렸는데, 항상 ‘이기려는 습관’ 때문에 지기 싫어서 친해지지 못했던 동갑내기 친구들과 달리, 형들과 지내는 것은 편했습니다. 내가 진다고 해서 자존심이 상하거나 기분 나쁘지 않아서 자연스레 주위에 형들이 많아졌습니다.

 

그 후 편입을 하게 됐고, 늦은 나이로 입대하여 다른 분대원들과 문제가 많았습니다. 처음엔 나보다 어린 선임을 인정하기가 많이 힘들었고, 시간이 지나 분대장을 맡은 후엔 대화가 통하지 않는 분대원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또 후임 및 동기들과는 관계가 계속 좋지 못했지만, 간부들과의 관계는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는 사촌동생에게 공부하는 습관을 만들어 주기 위해 플래너 작성을 하게 했는데, 금새 귀찮다며 그만하고 싶다는 겁니다. 실망감이 드는 동시에 제가 무시 당하는 감정이 커서 결국 사촌동생도 포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또래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제 성격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서 심리학, 정신과, 그리고 철학 쪽 책들을 읽고 있습니다. 이렇게 포기가 잦은 저 왜 이러는 걸까요? 정신과 상담이 필요할까요?

 

사진_픽셀

정신의학신문의 답장:

 

학창시절부터 또래들과 못 어울리고 친구관계를 자꾸 포기하게 되면서도, 나이가 더 많은 분들과는 잘 어울리는 본인의 특성에 대한 사연 글을 보내 주셨네요. 일단 보내주신 글 중에 ‘책잡힐 것 같아 어울리지 않았다’와 ‘이기지 못하면 기분이 나쁘다’는 부분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어요. 물론 뒷담화 당하거나 지는 거 좋아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게 싫어서 애초에 관계를 맺는 것을 시작 조차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보고 ‘대체 어떤 이유일까?’란 생각이 들어 흥미롭기도 했네요. 가수 임재범 씨의 ‘상처받는 것보단 혼자를 택한 거지’라는 유명한 노래가사가 떠오르기도 했고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희들은 현재 N씨의 대인관계 특성에 자기애적 성격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자기애란 말 그대로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자체는 건강한 인격을 형성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들어 낮은 자존감을 가지게 될테니까요. 그런데 여러가지 요인들로 인해 병적으로 과대한 자기애를 가지게 될 경우 대인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런데 흔히들 머리 속에 가지고 있는 자기애적 성격을 가진 사람들의 ‘잘난 체하며 타인들로부터 많은 칭찬과 관심을 받길 바라는’ 이미지는 본인의 모습과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N씨께서도 저희 이야기에 의아해하셨을 것 같아요. 이는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외현적 자기애가 아닌 내현적(과민성) 자기애를 가지고 있으시기 때문인데요, 이 경우 ‘타인의 반응에 매우 민감하며, 쉽게 상처를 받고 모욕감을 느끼는’ 특성을 보입니다. 이처럼 외현적 자기애와 180︒ 다른 모습이지만 둘 다 '타인들보다 뛰어난 나'라는 생각이 핵심에 있다는 점은 동일하지요.

 

사진_픽셀

내현적 자기애에서 보이는 상처받고 싶어하지 않아하는 마음 역시, 결국 ‘나는 상처 받아서도 안 되고 실패해서도 안 되는 특별한 사람’ 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거든요. 이 분들의 마음 속으로 더 들어가보면 낮은 자존감이 근원에 자리잡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낮은 자존감을 극복하기 위해 '난 패배자가 아닌 대단한 사람이야!'라며 무의식적으로 만들어낸 과대한 자기 이미지를 속으로 감춰 놓은 채 남들이 알아봐 주기를 기대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상처 받는 심리인 것이죠. N씨께서도 이와 같이 자존감에 손상을 입게 되는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더 큰 상처를 입기 전에 관계를 끝내 버린 경험을 반복해오신 것 같네요.

 

N씨께서 나이 많은 분들과는 편하게 지내온 점 역시 자기애적 성향으로 설명할 수 있고, 또한 N씨 성격의 근원을 유추해 볼 수 있게 해 줍니다. 복학생 형들과 군대 간부들은 N씨에게 있어 경쟁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자존감의 상처를 받을 일이 없는 편한 상대였겠지요. N씨의 낮은 자존감, 경쟁심, 그리고 자기애적 성향 모두 또래들과의 경쟁에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알프레드 아들러 (Alfred Adler)라는 정신과 의사는 타인과의 비교 과정에서 생긴 열등감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성격발달의 주요 동기라고 보았습니다. N씨의 과거 중에서 초등학교에 1년 일찍 입학한 상황은 열등감과 강한 경쟁의식을, 따돌림을 받았던 상황은 낮은 자존감과 자기애적 성향을 만드는 계기였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지금까지 설명 드린 N씨의 내현적 자기애적 성향과 그로 인한 대인관계의 문제점은 꾸준한 면담치료를 통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흔히들 '성격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스스로의 문제를 깨닫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경우라는게 전제가 되어야 하지만요. N씨처럼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계신 경우는 성격 변화를 향한 가장 중요한 첫 관문을 이미 통과한 것이라고 봐요. 이제 앞으로 뻗어 있는 험난한 길을 같이 나아가며 종점까지 인도해 줄 좋은 치료자를 만난다면, 지금까지 지내온 것과 달리 여러 소중한 사람들로 더 풍성해지는 삶을 누리게 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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