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요즘은 이혼 관련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돌싱(‘돌아온 싱글’의 준말)들의 새로운 인연 찾기를 주제로 하는 프로그램도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혼의 아픔을 극복하고 다시금 행복한 인생을 꿈꾸는 돌싱들이 새로운 인연을 찾는 과정이 방송을 통해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이처럼 이혼과 재혼은 우리에게 더 이상 낯설거나 금기시되는 그 무엇이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하나의 이벤트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시청자들은 이미 한 번의 아픔을 겪은 이들의 상처와 아픔에 공감하며, 그들의 새로운 만남과 여정에 아낌없는 격려와 응원을 보냅니다.

만약 자녀가 있는 경우에 새로운 이성과의 만남을 진지하게 이어 가거나 재혼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라면, 새 출발에 대한 기대 못지않게 자녀를 향한 미안함과 걱정 등의 감정이 뒤섞여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사자는 물론, 이러한 상황을 곁에서 지켜봐야 하는 자녀의 마음은 더욱 혼란스러울 수 있을 텐데요, 자녀들은 또다시 상처받거나 부모의 새로운 연인에게 애정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간혹 이러한 감정들은 부모에게 드러내 놓고 실망감을 표현하거나 적대적으로 행동하거나 무기력감이나 우울감을 느끼거나 이전보다 더 부모에게 집착하는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자신의 감정을 아예 외면하거나 억압하거나 아무렇지도 않다는 식으로 거짓된 표현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자신을 둘러싼 외부 세계나 관계가 급변하는 상황에서도 감정적 동요나 반응이 거의 없어 보이는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지나치게 억누르고 있을 수도 있으므로, 더욱 유심히 살펴보고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처럼 부모의 연애나 재혼 소식은 예측하기 어려운 또 다른 갑작스러운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는 심적 부담과 혼란감, 불안감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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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자녀의 마음을 잘 헤아리면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을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상황에 놓인 자녀들의 내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들여다보고 이해하려는 노력과 태도입니다. 아이들에게 부모의 연인 혹은 새 부모의 등장은, 사랑하는 한쪽 친부모의 자리에 어느 날 갑자기 낯선 사람이 와서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일뿐더러 앞으로 무슨 일들이 펼쳐질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긴장되고 불안한 상황입니다. 이미 한쪽 부모와의 단절로 인해 아픔을 경험한 아이들이 본능적으로 방어기제를 작동하여 저항하고 외면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반응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아직 정서적 성숙이 덜 진행된 아이들은 자신들의 마음속 혼란과 두려움, 분노와 좌절감 같은 감정을 제대로 인식하거나 이해하기 힘듭니다. 마음이 힘들기는 한데, 이게 도대체 어떤 감정인지, 왜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인지 자신조차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지요. 이렇듯 제대로 인식되거나 소화되지 못한 감정과 충족되지 못한 욕구들은 부모 혹은 친구와 같은 대상이나 세상을 향한 거센 반발심, 공격성, 경멸감이나 거부와 같이 부정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때는 아이의 공격적인 행동이 아니라 그 뒤에 숨겨진 좌절된 욕구와 상처받은 마음을 이해하고 충분히 수용해 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충족되기를 바라는 욕구 혹은 좌절된 욕구나 감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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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정감에 대한 욕구

아이들은 이미 부모의 이혼으로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해체되는 경험을 한 바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안정감을 잃고, 중요한 대상이나 삶과 미래에 대해 불확실성과 불안감이 강렬하게 엄습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아이들이 다시 안정감을 찾을 수 있도록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디서 누구와 함께 살게 될지 미래에 일어날 변화에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불안해하지 않도록 명확하고 세세하게 설명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2. 신뢰에 대한 욕구

어떤 아이들에게 부모의 이혼은 일종의 배신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지금껏 믿고 의지하던 부모가 서로 등을 보이며 갈라섰다는 사실만으로도 더 이상 부모를 신뢰하는 게 어려워질 수 있으므로, 비록 가정은 깨졌지만 자녀에 대한 부모의 책임과 도리는 최선을 다할 것임을 진정성 있게 전달해야 합니다. 

 

3. 애정에 대한 욕구

부모의 새로운 연인이 생기거나 재혼한 경우, 혹은 배다른 동생이 태어나거나 의붓 형제들과 함께 살게 된 경우에 아이는 자신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예전 같지 않다거나 애정을 빼앗겼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자녀가 부모로부터 애정을 박탈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이지 않도록 꾸준한 관심을 보이고 애정을 쏟는 것이 중요합니다.

 

4. 자녀의 감정적 혼란과 고통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해 주기

자녀에게 있어서 부모의 재혼 소식은 이혼한 부모가 다시 합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에 내리는 사형 선고와도 같습니다. 그만큼 새 출발을 앞두고 한껏 들떠서 행복감에 젖어 있는 부모를 바라보는 자녀의 심경은 절망스럽고 복잡할 수 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해 주세요. 

 

5. 다른 한쪽 부모에 대한 그리움을 인정하고 연결해 주기

부모가 새 연인과의 만남을 이어 가거나 재혼했다고 해서 자녀에게도 곧바로 다른 한쪽 부모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다른 부모에 대한 자녀의 사랑과 그리움, 만남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고, 자녀가 원할 경우 언제든 다른 한쪽 부모와 연결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어른들의 이혼도, 재혼도 결코 아이들이 원하거나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녀를 ‘기다려 주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상처에 새살이 돋고, 여린 작은 가슴에 누군가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기 위한 ‘시간’입니다.

그러나 시간만이 약은 아닐 겁니다. 자녀들의 곁에서 그들의 마음을 세심하게 살피면서 상처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경험한 아이들마다 느끼는 감정적 고통이나 상처의 깊이, 현실을 받아들이는 시간과 방식은 모두 제각각입니다. 자녀의 감정선에 맞추어 굳게 걸어 잠근 마음의 빗장을 조금씩 열어 보일 때까지 충분히 기다려 주세요. 언젠가 부모의 이런 노력을 알아챈 자녀들과 다시 행복하게 웃을 날이 반드시, 올 테니까요.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우경수 원장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대구카톨릭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대구카톨릭대학교병원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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