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흔히 부모가 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고 말합니다. 아이가 웃을 때, 처음 뒤집었을 때, 혼자서 일어설 때,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때. 매 순간이 감동의 연속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사랑의 힘으로 극복하기 버거운 시기가 찾아옵니다. 바로 공포의 ‘왜’ 시기. “하늘은 왜 파래요?”와 같은, 평소 생각조차 해 본 적 없는 것의 원인을 탐구하는 아이 때문에 남몰래 한숨을 쉬게 됩니다. “사실 엄마 아빠도 몰라.”라는 솔직한 고백은 마음 깊숙이 넣어 두게 되죠. 대신 적절한 답을 찾아봅니다. 부모라면 누구나 슈퍼맨을 꿈꾸기 마련이니까요.

미국심리학회(APA)에 실린 한 연구에 따르면, 아이들의 일상 대화를 분석한 결과 만 3세즈음 ‘왜?’ ‘그래서’ ‘때문에’ 등 인과에 대한 언어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주변 현상의 인과관계를 폭발적으로 습득합니다. 즉, “왜?”라는 질문은 세상의 원리와 원인을 알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아이들의 의문문은 ‘무엇 → 누가 → 어디 → 언제 → 왜’의 순서로 발달합니다. 아이들의 “왜?”에는 다른 질문보다 복합적이고 어려운 사고의 기능이 포함돼 있습니다. 이는 뇌의 발달 단계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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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뇌는 크게 세 가지-△생명의 뇌 △감정의 뇌 △인간의 뇌-로 나뉩니다. 생명의 뇌는 다른 말로 ‘파충류의 뇌’라고 하며, 숨을 쉬거나 청각과 시각을 감지하는 등 생명 유지에 필요한 기능을 담당합니다. 감정의 뇌는 ‘포유류의 뇌’라고 불립니다. 감정을 느끼고, 그 감정을 바탕으로 행동에 필요한 동기를 얻는 기능을 관장합니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뇌는 ‘이성의 뇌’라고 불리며, 여러 정보를 조합해 판단을 내리고, 목표를 설정하고, 계획을 세우는 등 인간만이 수행할 수 있는 기능을 담당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뇌는 ‘생명의 뇌’부터 ‘인간의 뇌’의 순서로 발달해 왔습니다. 따라서 생명을 유지하는 데 문제가 없어야 감정을 느낄 수 있고, 감정과 이성이 동시에 작동할 때 감정을 따라가는 것이 더욱 본능적인 선택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아이가 “왜?”라고 질문할 때는 ‘인간의 뇌’를 사용하게 됩니다. ‘인간의 뇌’는 뇌의 세 가지 영역 중 가장 마지막으로 발달하기 때문에 아이들의 의문문 역시 마지막 단계가 “왜?”인 것이지요. ‘인간의 뇌’에서 가장 대표적인 부위는 전두엽으로, 사고 기능을 담당합니다. 원인을 탐구할 때 이 전두엽이 활성화되고 ‘감정의 뇌’ 활동은 줄어드는 모습을 보입니다. 

 

자녀가 쭈뼛쭈뼛 다가와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고민을 털어놓는 상황이라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때 부모가 감정에 호응하는 대신 해결책을 주는 것에만 집중한다면, 소통은 어려워집니다. 소통의 장벽과 함께 마음의 벽도 생기게 되지요. 더욱 큰 문제는 그 해결책이 사실은 해결 방법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감정은 그 자체로 이해받지 못하면 분노나 실망감 등 다른 감정으로 폭발하게 됩니다. 오히려 감정을 충분히 표현해야 이성이 제대로 작동합니다. 따라서 정서에 공감을 표현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판단이나 사고의 표현을 쓰는 순간 공감의 힘이 사라진다는 점을 기억하고 ‘감정의 뇌’를 사용하는 게 좋습니다. 

 

‘감정의 뇌’는 감정뿐 아니라 욕구나 동기 유발도 담당합니다. 무언가를 학습하거나 판단할 때는 ‘왜’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이 도움이 되지만, 동기가 필요하거나 인간관계에서 친밀감을 얻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왜’는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대신 ‘감정의 뇌’가 관장하는 ‘무엇?’ 혹은 ‘어떤?’이라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지금 내 감정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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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핵심은 ‘왜?’가 이성의 활성화를 증폭할 수는 있어도, 목표 실현을 위한 동기 부여는 나의 진정한 욕구 탐색을 바탕으로 이뤄진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며 욕구를 찾아 나가고 아울러 그 욕구를 동기로 치환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선미 아주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저서  『영혼이 강한 아이로 키워라에서 아이가 세상을 논리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볼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논리로 세상을 배운 아이들은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삶의 진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세상이 나를 움직이려면 근거를 대야만 한다는 태도를 배운 탓이다. 게다가 학교에는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사람도 없다. 당연히 해야 한다고 할 뿐이다. 예전에는 조곤조곤 설명해 주던 엄마도 더 이상 아이 마음을 효과적으로 움직이지 못한다. 무조건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선생님 말씀을 잘 들으라는 말뿐이다. 마지못해 해 보지만 왜 해야 하는지 모르면서 하는 행동은 한계를 넘지 못한다.”

 

“왜?”로만 세상을 이해하는 태도는 스스로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 닥쳤을 때 의욕을 저하시키고 결과에 한계를 가져옵니다. 삶에는 종종 ‘그렇기 때문에’로 끝맺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저 사람이 나를 ‘왜’ 싫어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처럼요. 그럴 땐 이유를 찾기보다 그 사람의 감정 그 자체로 수용해야 나의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그러니 아이의 ‘왜’가 잠잠해질 때 즈음, 논리 너머의 것을 바라볼 수 있을 때 즈음, 엄마와 아빠가 너를 그 무엇보다 사랑하는 데 이유가 없는 것처럼, 때로는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할 때가 있는 법이라고 말해줘도 좋겠습니다.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정정엽 원장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석사, 서울고등검찰청 정신건강 자문위원
보건복지부 생명존중정책 민관협의회 위원
한국산림치유포럼 이사, 숲 치유 프로그램 연구위원
저서 <내 마음은 내가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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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주를 듣는 것 같은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고 많은 사람이 도움 받고 있다는 걸 꼭 기억해주세요!"
    "선생님의 글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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