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도 꽤 부지런하다고

 

인시그니스
인시그니스
퓨전화이트
퓨전화이트
스트로만데
스트로만데
진저
진저
무늬마란타
무늬마란타
네트워크
네트워크

 

내가 식물을 처음 들이기 시작했을 때, 그때 어떤 식물에 심취했나? 하는 질문을 종종 받곤 한다. 나는 초반에 ‘칼라데아(Calathea)’라는 식물 종류에 심취했다. 우아한 ‘오르비폴리아’, 까탈스럽지만 치명적으로 예쁜 ‘퓨전화이트’, 순둥순둥 키우기 편한 ‘마란타’, 길쭉한 키가 인상적인 ‘인시그니스’, 격자무늬 잎이 특이한 ‘네트워크’ 화려한 색감의 ‘스트로만데 멀티칼라’, 한바탕 인기몰이가 있었던 ‘크테난테 아마그리스’ 등등. 칼라데아는 그 모양이 모두 다르지만, 한 묶음으로 칼라데아 종으로 불리는 신기한 식물이었다. 

공중 습도가 높은 것을 좋아하는 것이 고사리를 닮았고, 딱 맞는 화분에 키우면 더 잘자라는 것이 초보였던 나에게 아주 특이했다. 그중 가장 특이한 점은 ‘출퇴근’을 하는 식물이라는 점이었다. 칼라데아는 해가뜨고 해가 지는 것을 인지해 시간이 지나면서 그만큼을 움직인다. 저녁에는 세로로 잎을 모으던 칼라데아가 해가 뜨고 하루를 시작할 쯤에는 잎을 모두 펼쳐 열심히 해를 받는다. 그리고 그 행위를 매일 반복한다. 초보 집사일 때부터 조금 식물을 알게 된 지금까지, 칼라데아의 출퇴근은 나에게 여전히 특이하고 특별하다. 식물이 하루에 그만큼 움직일 수 있다는 점도 신기한 점이었고, 그것을 매일 반복한다는 점이 아주 특이하게 다가왔다. 

특히 잎의 길이가 길쭉한 ‘인시그니스(Calathea Insignis)’는 그 모습을 더 분명하게 보여준다. 저녁부터 밤새 그 길쭉한 잎을 촘촘히 모아 두다가 아침에 해가 뜨면 부채꼴로 잎들을 펼쳐 낸다. 나는 침대 근처에 인시그니스를 두고 키우는데, 매일 봐도 매일 신기하다. 

 

저녁시간 인시그니스
저녁시간 인시그니스
잎을 접어올린 밤의 무늬마란타
잎을 접어올린 밤의 무늬마란타

 

내가 우울증이 아주 깊었을 때, 나는 매일 뜨는 해를 보기 싫어서 암막커튼을 사용했다. 그때는 휴대폰을 찾아 보지 않으면 바깥의 시간을 몰랐다. 시간이 지나가는지도, 계절이 가는지도 그래서 오늘 갑자기 나가게 되면 뭘 입어야 좋을지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살아 있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삶을 살았다. 시간이 지나 하얗고 반투명한 커튼으로 바꾸고, 이렇게 살면 나를 갉아먹는 일이라는 이유로 나 스스로를 설득했다. 해가 뜨면 눈을 뜨고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그때 나는 우연찮게 인시그니스의 출퇴근을 목격하게 되었다. ‘내가 잘못 봤나? 분명 저녁엔 세로로 꽃꽂이 서 있었는데….’햇빛이 화창한 어느 날, 좌르륵 누워 있는 인시그니스의 잎은 나에게 흥미로운 퀴즈를 내는 것 같았다. 

 

낮시간, 잎을 펼친 인시그니스
낮시간, 잎을 펼친 인시그니스
낮 시간, 잎을 펼친 무늬마란타
낮 시간, 잎을 펼친 무늬마란타

 

우울과 불안으로 하루치의 약이 아주 많아졌을 때, 그럼에도 약으로 나아지기는커녕 겨우 하루씩을 버텨내고 있을 때, 나는 인시그니스의 모습을 관찰하며 다른 칼라데아들도 관찰했다. 인시그니스만큼은 아니지만 분명히 잎이 모아졌다가 펼쳐졌다를 반복했다. 게다가 칼라데아는 잎의 무늬가 각자 다른데, 각자 모두 특이하고 아름답다. 이 모습들을 관찰하며 나는 한동안을 보낼 수 있었다. 덕분에 의욕도 없이 축 쳐져서 매일 ‘사는게 어떤 의미가 있나?’라고 생존하던 암흑기를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으며 보낼 수 있었다. 칼라데아의 출퇴근이 나에게 그저 ‘식물의 신기한 현상’ 그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식물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이런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나는 긴 시간 그들과 함께했다. 식물은 반나절만 지나도, 반나절이 뭔가. 한두 시간만 지나도 움직임이 크게 일어날 정도로 부지런하고 생존과 번식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나는 다만 말을 못할 뿐, 그들은 여느 사람이나 여타 동물보다도 부지런하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식물로 인해 움직였고, 완전한 치유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나 스스로가 죽은 듯 침대와 한몸이 되어, 하루 종일 일어나지 ‘못해도’, 식물은 그러한 순간에도 움직이고 살아 내고, 늘 내가 둔 그 자리에서 계속해 활동했다. 살아 있는 무언가가 말없이 곁에 있어 주는 감정이었다. 그랬다. 정말…, 낯익은 누군가가 곁에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잔소리 없이 곁을 지켜주는 기분이었다. 나는 자주 울다가 식물을 바라봤고, 잠에서 깨자마자 식물이 눈에 들어왔다. 그 점이 그렇게 내 마음을 안심시켰다. 

 

오르비 폴리아
오르비 폴리아
오르비폴리아
오르비폴리아
퓨전화이트
퓨전화이트

 

식물은 때로 나에게 친구이자, 위로이고, 존재 이상의 감정을 갖게 해주는 존재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내가 암흑기에 들어서서 인간인 누구의 말도 너무 쉽게 상처받을 때, 식물은 자신의 일을 하면서 계속해서 나에게 위로를 건넸다. 그로 인해 해가 뜨면 침대에서 나와 약을 챙겨 먹을 수 있게 되었고, 그런 날들이 쌓여 나는 나의 하루를 그들과 함께하는 것을 즐거이 하게 되었다. 

나에게 가장 아끼는 식물이 무엇이냐 물으면 칼라데아가 답으로 나오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내가 칼라데아를 지켜보며 느꼈던 감동과 위로는 생생히 기억한다는 사실이다. 모든 식물이 그러하겠지만, 역동적인 칼라데아의 움직임, 출퇴근 모습을 지금도 신기해하며, 은은하게 그들을 응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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