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심금숙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사례 4-B: 결혼할 수 있을까?

경수는 그렇게 다른 중견기업에 정규직으로 채용되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월급이 적다고 생각되지 않았는데, 학자금 대출 상환에 월세까지 내고 나면 늘 여유가 없었다. 5년 일한 뒤에는 전세로 옮길 계획이었는데, 그 사이 전세값, 집값이 또 많이 올라서 당분간 월세 집에 머무르면서 학자금 대출을 청산하는 것으로 마음을 바꿨다. 그러던 중 대학 동기 경호로부터 올 봄에 결혼한다는 청첩장을 받았고, 직접 전화로 꼭 참석해 달라고 해맑게 간청해서 ‘그러겠다’고 말한 것이 경수의 잘못이었을까.

결혼식장인 S호텔은 하객들로 북적였다. 경호는 강남 8학군 출신에 젠틀한 친구로 경제적 여유가 있을 것으로 짐작은 했지만, 말로만 듣던 S호텔에서 결혼식을 하는 걸 보니 ‘정말 부자였구나.’ 싶었다. 경호는 학부 졸업 후 로스쿨 입시를 일 년 준비하고 서울의 모 로스쿨에 현재 재학 중이었고, 신부는 치의학 전문대학원을 다니는 예비 치과의사로 둘은 친구 소개로 만났다고 한다. 경수는 경호의 바로 앞 학번이어서 전공 필수 수업마다 같은 조로 과제를 할 때가 많았고, 같이 과제를 하면서 친해지게 되었다. 졸업 전에 경호는 부친이 클라이언트로 있는 로펌에서 인턴을 마쳤고, 부친의 회사 영국 현지 법인에서 인턴 생활을 수개월 하기도 했다. 경수는 미처 알지도 못하는 다양한 루트로 스펙을 쌓는 경호가 부럽곤 했는데, 오늘 결혼식장에서 신랑과 신부를 보니, 새삼 ‘그들은 나와 다르구나.’ 싶었다. 

친구들 얘기로는 서울의 신축 아파트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한다고 하는데, 불현듯 취업 준비 중 짧게 끝난 마지막 연애가 씁쓸하게 떠올랐다. ‘그녀는 내 반지하 월세방을 보고 실망해서 날 떠난 걸까?’ 하는 의문과 ‘나는 결혼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날 저녁 친구들과 헤어지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언덕 너머에는 예전처럼 고층 아파트들이 수많은 불빛을 반짝이며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내가 저런 집에 살 수 있는 날이 올까?’ 아파트 불빛이 오늘 따라 수십 광년 떨어져서 닿을 수 없는 별빛처럼 찬란하게 느껴졌다.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지금 우리에게 거주지와 주거 형태는 이제 그냥 사는 지역이나 사는 집이 아니다. 부모의 경제력의 격차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 바로 사는 동네와 주거 형태로, 광고 문구처럼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 주는’보다 정확하게는 ‘당신 부모의 경제력이 어떤지 말해 주는’ 계급의 상징이 되었다. 약 20년 전부터 대기업 건설사들이 시공하는 아파트에 명칭, 기호, 디자인 등이 생기는 ‘브랜드화’가 이루어졌고, 아파트 광고들은 화장품 광고처럼 ‘소중하고 특별한 나’가 되고 싶은 욕망과 상류층 사회에 대한 동경을 자극하는 이미지들로 채워졌다. 이제는 ‘OO캐슬’처럼 단순한 브랜드명만으로는 소수의 선택받은 사람만 살 수 있는 곳이라는 차별화가 되지 않는지, 국적 불명의 언어들을 뒤섞은 난해한 이름들이 경쟁적으로 아파트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주거의 차별화, 고급화와 함께 부동산 시장은 양극화되어 강남권 vs. 비강남권, 서울 vs. 지방 등 가격의 격차는 커졌고, 부동산 시장의 양극화는 부유한 사람들의 자산 증가로 이어져서 경제적 양극화를 가속시키고, 이는 또 교육을 포함한 사회 전반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양상이다.

몇 년 전 강남 아파트 가격이 평당 1억 원에 거래되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25평형을 기준으로 생각해 보면 매매가 25억으로, 직장인 평균 연봉(대략 4,000만 원)의 62.5배로 평균적인 소득 수준의 맞벌이 부부가 소득 전부를 약 30년간 저축해야 마련할 수 있는 금액이다. 결국, 부모의 경제적 지원 없이 개인이나 신혼부부가 그곳에 살기란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거의 불가능하고, 임차인일지라도 값비싼 전세금이나 수백만 원 하는 월세를 감당할 능력이 되지 않으면 그곳에 살 수 없다. 그래서, 직업을 묻는 것(‘무슨 일을 하는지’)보다 집주소 (‘어디에 사는지’)를 묻는 것이 그 사람과 부모의 경제력을 파악하는 보다 사적인 질문이 되어 버렸다.

학벌주의 사회에서 무슨 대학 출신인지를 물었다면, 세습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무슨 동네 출신인지, 무슨 동네에 사는지를 묻는다. 그나마, 대학은 뒤늦게라도 공부해서 입학하거나 옮겨 볼 수라도 있지만, 강남의 고급 거주지는 로또가 당첨되어도 내가 사는 곳이 되기는 힘들어졌다.

 

부자들이 사는 동네와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는 예전에도 있었지만, 지금처럼 사회경제적 계층에 따라서 선명하게 공간이 구획화되고, 비슷한 계층끼리만 어울려서 살지는 않았다. 경제적 계층에 따른 거주지의 분리는 초중고 학교의 계층별 분리로 이어지고, 부유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지역의 학군은 면학 분위기나 부모들의 교육 참여도, 그리고 과외활동의 수준에서 격차를 보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그 시절 또래들과의 관계를 통한 지적 자극과 내면의 성장을 생각해 보면, 부모로부터 무형의 자산들을 물려받은 학생들이 많은 중산층이 사는 지역의 학교를 다니는 것은 표면적인 학교 교육 그 이상의 이점이 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좋은 학군은 또 부동산 가격의 상승을 견인해서 거주지의 양극화는 더 심화된다.

이렇게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부동산 시장의 양극화는 선후관계를 판단하기 힘들 정도로 서로 밀접하게 상호작용을 하는데, 비정규직 vs. 정규직, 대기업 vs. 중소기업과 같은 직업 세계에서의 양극화는 경제적 양극화를 낳고, 경제적 양극화는 부동산과 거주지의 양극화로 이어진다. 부동산의 양극화는 최근 강남 아파트 가격의 폭등과 같이 경제적 양극화를 가속시키고, 이는 또 교육과 사회의 양극화로 이어진다. 

한국 교육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대한민국 국민 다수가 동의하지만,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처럼, 양극화 역시 다 문제라고 느끼지만 전망은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다. 충족감은 금방 시들어서 인간은 늘 끝없이 욕망하고, 욕망이라는 전차는 벼랑 끝에서 모두 죽을지언정 나만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 연재 내용은 대부분 『내가 박탈감에 빠진 날: 박탈감에 빠진 누군가를 위한 책』 이라는 제목으로 2022년 교보문고 퍼플을 통해서 이미 자가출판 되었음을 밝혀 둡니다.

 

삼성마음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심금숙 원장
 

심금숙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삼성마음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박사
KAIST CLINIC 연구부교수, 초빙교수
저서 <내가 박탈감에 빠진 날 : 박탈감에 빠진 누군가를 위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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