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인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저는 올해 3월에 가족 같은 친구를 먼저 떠나보냈습니다. 가족끼리도 친하게 지내는 친구였습니다. 생일도 같아 서로 챙기기도 했습니다.

올해 친구는 본인의 의지로 먼저 제 곁을 떠났습니다. 분명 친구 소식을 알기 3일 전에 통화를 했고, 코로나와 지금 제가 일 때문에 멀리 떨어져 있어 화상 통화를 하며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새벽 친구가 자신이 이기적이었다며 미안하다는 카톡을 마지막으로 연락이 끊겼습니다.

그전에도 잠깐 연락이 안 될 때가 있었기에 기다리기로 했는데, 2일 후 친구의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때 드는 생각은 저 때문인 것 같더라고요. 그날 연락을 못 받은 것과 막연하게 왜 기다리기만 했을까, 내가 만약 그때 연락을 받았더라면 조금은 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너무나도 크게 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저도 그만하고싶다, 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이제 못 본다는 사실에 미친 듯이 울고 자책하고, 제 자신을 꾸짖고, 그러다 보니 점점 자존감은 낮아지고 죄책감만 늘어 갑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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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변) 사연자님, 남겨 주신 글 읽어 보았습니다. 올해 3월, 갑작스럽게 친구가 세상을 떠나게 되었군요. 관계가 가족과도 같은 가까운 사이였다고 하시니, 친구의 자살은 더욱더 충격적으로 와닿았을 것입니다. 사연자님이 차마 글에 직접 쓰지 못한 ‘자살’이라는 단어를 적어서 사연자님께서 마음이 불편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살이라는 단어는 특히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참 마음을 옥죄게 만드는 단어가 아닐까 합니다. 게다가 여전히 현실적으로 가까운 이의 죽음이 받아들여지지 않기에, 자살 단어에 대한 고통감이 크게 느껴져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 일이 정말 현실로 일어났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는 각자의 속도가 전부 다릅니다. 

 가까운 이의 자살은 삶에 폭탄이 떨어진 것과도 같다고 합니다. 일상의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지고 산산조각 나는 경험입니다. 폭탄으로 폐허가 된 현장에 덩그러니 남겨져, 잔해를 수습하고 다시 시작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일 년 정도면 괜찮아질지, 5년이면 치유되는지, 20년이면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 그 누구도 애도가 끝나는 시기를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런 막막함이야말로 자살로 인해 남겨진 사람들의 가장 큰 고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제 이 고통이 끝날지 모른다는 것이지요. 

 

 어쩌면 친구분의 죽음은 기간의 정함이 없이, 평생 동안 떠오르면서 문득 일상을 압도할 수도 있습니다. 그게 잘못된 일이나 비정상은 아닙니다. 오히려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사연자님의 친구분은 이 세상에 물리적인 존재로서 살아 있지는 않지만, 심리적인 존재로서 여전히 여러 사람의 마음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이 친구의 존재를 어떤 식으로 기억하면서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해 가는 과정을 겪으실 겁니다. 고민하는 과정에서 두 분의 ‘관계’도 계속 달라질 것입니다. 자살 전까지 사연자님과 그 친구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중요한 관계였을 겁니다. 그리고 자살 이후, 이제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을’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사연자님의 삶 속에서 계속해서 영향을 ‘줄 수’ 있는 존재로서, 어떤 형태로든 그 친구는 존재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계속 영향을 받고 있고, 기억하고 회상하면서 생생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참 아이러니하지요. 다시 직접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가장 가까이에서 고통스럽게 그 친구를 만나고 있는 중이기도 합니다. 떠난 사람이 내 마음 안에서는 살아가도록, 자리를 기꺼이 편안히 내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먼저, 현재 느끼는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을 잘 관찰하고 수용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어차피 없앨 수는 없는 감정입니다. 

 특히 지금 사연자님이 겪는 죄책감이 엄청나게 무겁고 괴로우실 것입니다. 죄책감은 매우 자연스러운 애도 반응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사연자님께 죄책감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남겨진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살 직전과 직후의 시간에 멈춰 시뮬레이션을 돌려 볼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그랬더라면...’이라는 가정은 자살 유족들이 가장 빈번하고도 오래도록 머무는 생각입니다. 그 생각을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상상으로라도 살려내고 싶은 처절한 마음이 있는 것일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이렇게 ‘만약’을 가정하는 생각은 끝이 없고, 계속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 냅니다. 사연자님, 연락을 받았더라도, 기다리지 않고 먼저 연락했더라도, 친구의 죽음을 막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 가정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자살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친 많은 이유가 있지만, 당사자를 제외하고는 결코 누구도 자살의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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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을 다르게 바꾸기는 참 어렵습니다만, 언젠가는 애써 주문을 외우듯, 이렇게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 ‘내가 최선을 다해 개입하고, 자살을 암시하는 신호를 알아차렸다 한들,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더라도, 그 친구에게는 그보다는 훨씬 더 중요한 다른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살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 ‘나나 주변인의 특정 행동 여부 하나만으로 떠밀리듯 자살을 선택한 것은 아닐 것이다.’

- ‘타인이 아무리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결코 닿을 수 없는, 그 친구만의 고통스러운 영역이 있었을 것이다.’ 

- ‘그러니 죽음의 책임을 혼자서 전부 다 가져가 짊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하자.’

 

 사연자님이 여전히 충격과 죄책감이 큰 데다가, 삶의 의욕도 떨어지고 있기에, 염려가 됩니다. 지금 사연자님의 하루하루 일과는 어떤가요? 하루에 얼마나 자주 그 친구가 떠오르며, 친구를 잃은 고통에 대해 누구에게 얼마나 털어놓으셨나요? 먹고, 자고, 씻는 일상적인 활동과 일이나 학업 등 해야 할 일들을 예전과 비슷하게 수행하고 있는지, 아니면 어떤 활동들은 전혀 못하고 있는지를 알고 싶습니다. 사연자님이 겪는 아픔이 너무 지나치면 일상 기능이 무너지기 때문에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식욕, 수면, 집중, 감정 상태 등을 전반적으로 체크하면서 필요하다면 전문가와 상담을 받으셨으면 합니다.

 직접 상담이 어려우시다면 자살 유족들을 위해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인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에서 운영하는 <따뜻한 작별>(http://warmdays.co.kr/)이라는 공간에 가 보시길 권합니다. 유족들을 위한 자조모임이 운영되고 있으며, 애도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주지 주변의 정신건강센터 정보도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치유와 회복’ 메뉴에서 애도 과정, 애도 반응에 대한 개념도 자세히 나옵니다. 그리고 현재 상태에 대해 사별슬픔검사, 지속비애검사를 무료로 실시해 볼 수 있습니다. ‘정보검색’ 메뉴에서는 상실과 관련된 책/영화/다큐멘터리 정보도 확인할 수 있고, 자료 신청을 하시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유족을 위한 도움서’를 제공받을 수도 있습니다.

사설기관이 아니라, 우리나라 시민을 위해 운영되는 국가 사업이기 때문에,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으셨으면 하는 마음에 자세히 소개를 드렸습니다. 특히 사연자님께는 자조모임을 권하고 싶습니다. 사연자님이 가족이나 친구분의 가족과 나누는 일도 필요하겠지만, 각자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소통이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보다는 유사한 경험을 겪은 타인들과의 관계에서 충분히 사연자님의 이야기를 표현할 기회를 가져 보셨으면 합니다.

 

 사연자님이 진심으로 그 친구의 상실을 아파하면서, 그 친구분도 다른 세상에서 위로와 공감을 전달받으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사연자님이 책임을 느끼고 스스로를 비난하는 일을 그 친구가 원하지는 않았으리라고 믿습니다.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괜찮습니다. 사연자님의 속도대로 그 친구를 삶에서 온전하게 기억하여 함께 살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사연자님을 더는 몰아세우지 마시고 꼭 보살피셨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SOS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을 위한 책에 나온 <유족 권리장전>을 소개하며, 글을 맺습니다. 사연자님도 꼭 소리 내어 읽거나, 출력하여 자주 읽어 보길 바랍니다. 

1. 나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권리가 있다.

2. 나는 자살로 인한 죽음에 대하여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권리가 있다.

3. 나는 내 느낌과 감정을 남이 받아들이기 힘들어 할지라도 다른 사람들의 권리를 침해하지만 않는다면 이를 표현할 권리가 있다.

4. 나는 내 질문에 대하여 권위자나 다른 가족들로부터 정직한 대답을 들을 권리가 있다.

5.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의 슬픔을 덜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속지 않을 권리가 있다.

6. 나는 희망감을 유지할 권리가 있다.

7. 나는 평화와 존엄성을 유지할 권리가 있다.

8. 나는 자살로 떠난 사람에 대하여 그가 죽기 직전 또는 죽을 당시의 상황과 관계없이 좋은 감정을 가질 권리가 있다.

9. 나는 나의 독자적인 인격을 유지하고 자살로 인해 판단되지 않을 권리가 있다.

10. 나는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살펴보고 수용하는 단계로 갈 수 있도록 나를 도와줄 상담자와 지원그룹을 찾을 권리가 있다.

11. 나는 새로운 시작을 할 권리가 있다. 나는 살 권리가 있다.

 

참고문헌

- SOS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을 위한 책, Jeffery Jackson 저.

- 우리는 모두 자살 사별자입니다, 고선규 저.

 

당신의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김인수 원장

김인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당신의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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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때 선생님 글을 만났더라면 좀더 빨리 우울감에서 헤어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글 내용이 너무 좋아 응원합니다. 사소한 관계의 행복이 회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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