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두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저의 첫 책 『마음은 단단하게 인생은 유연하게』가 지난주 세상에 나왔습니다. 유튜브 강연이 동시에 공개되면서 금세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기존의 책들이 우울, 불안 등의 하나의 주제를 깊게 파고들었다면, 저는 인간이 느끼는 다양하고 복잡하게 얽힌 어려움들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책을 구성했습니다. 제 연구 주제가 정신건강의 증진이기 때문입니다. 심각한 환자보다는 병원에 갈까, 말까를 고민하는 단계의 학생, 교직원을 주로 만나게 됩니다. 화재도 소화기로 조기 진압을 하는 것이 효율적이듯이 정신질환의 조기 개입과 예방이 제가 다루는 분야입니다.

작년에 유니스트는 학생 수의 약 10분의 1이 교내 일대일 서비스를 이용했습니다. 그룹 치료나 비대면 콘텐츠를 합하면 더 큰 숫자가 될 것입니다. 매사추세츠 공대(MIT)는 매년 학생의 21%가 정신건강 서비스를 제공받는다고 합니다. 어려운 공부와 연구를 하느라 도움이 많이 필요할 것입니다. 아마 제 책이 나오자마자 주목을 받게 된 것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상에서 어려운 문제들을 많이 다뤄야 하는 것도 한몫한 것 같습니다. 어떤 요소가 우리 사회를 이렇게 힘든 곳으로 만들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흥미로운 점은 인기의 시작점이 된 15분짜리 유튜브 교양 강연(세바시)의 썸네일 이미지입니다. 문자 제목은 제가 보낸 것과 책 제목이 합쳐져서 ‘인생이 편해지는 심리적 유연성의 힘’인데, 그림에는 ‘서울대 나와도 인생이 힘든 이유’로 되어 있습니다. 아마 사람들의 주목을 끌어 조회수를 올릴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약력에도 과학고, 카이스트, 서울의대를 적어 보냈지만 카이스트는 빠진 대신 과학고 조기 졸업, 서울의대가 적혀 있습니다. 대중들이 가장 욕망하는 것으로 재포장된 것 같습니다. 단톡방에서 동문들에게 해명을 하는 일이 생깁니다. 반대로 서울대 졸업생이 책 소개를 보고 관심을 가졌는데 나중에 ‘서울대’를 이용하는 저 제목을 보고는 속이 상했다는 이야기도 듣게 됩니다. 

15분 내내 인생의 역경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고, 그것을 유연하게 헤쳐 나가자 이야기했지만, 여전히 일부 댓글은 ‘서울대’에 주목합니다. “세계 순위가 낮은 서울대가 아닌 하버드, MIT면 달랐을 것이다.”, “서울대라도 나왔으니 그나마 나은 것이니 힘들다는 소리를 하면 안 된다.” 출판사는 어디나 일부 악플이 달린다고 합니다. 정신건강 전문가인 제가 모를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문화가 어떻게 작용하고 있을까요? 우리나라를 살기 좋은 환경이 되지 못하게 만들고 있을 것입니다.

삶의 가치와 우선순위를 제대로 찾아가며 살아가도록 돕는 환경인지 생각해 봅시다. 이것은 어른이 되었다고 갑자기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청소년기부터 시작해서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수정하며 단단하게 만들어 가야 합니다. 독립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문화나 교육은 어떤가요? 본질이 쉽게 무시됩니다. 과정보다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얻어진 학벌과 같은 타이틀로 사람을 규정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신건강도 문제지만, 사회의 효율이나 퍼포먼스도 떨어집니다. 프로축구 선수들을 생각해 봅시다. 실력이 좋고 함께 우승이라는 목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선수의 몸값이 비쌉니다. 현재 실력에 앞으로의 잠재력까지 고려되어 평가를 받습니다. 어느 대학 출신, 명문 구단 출신이라는 것은 바로 다음 단계로 나아갈 때 일부 평가를 받지만 그 뒤에는 별 영향이 없습니다. 혼자 하는 테스트만 잘해 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팀으로 성과를 내는 것까지 모두 실력으로 평가됩니다. 토익, 토플만으로 통번역을 잘할 사람을 뽑을 수 없는 것과 비슷합니다.

 

남이 나를 알아주는 것은 중요합니다. 존경을 받고 싶은 욕구는 사회적으로도 건강하게 작용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유니스트 신입생들은 추석에 친척들이 어느 대학에 들어갔는지 물어볼 때 난감해 합니다. 길게 설명해도 잘 몰라서 자괴감이 든다고 합니다. 만약 이 친척들 중에 위에서 언급한 댓글과 같은 공격적인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떨까요? 더 나아가 자신이 세운 다른 목표를 위해 열심히 고민하고 있는 청년들에게 이런 문화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산업과 사회가 발전하며 더 좋은 기회를 찾아 이직과 스카웃도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이에 따라 학벌에 따른 차별도 점점 약해지는 것 같습니다. 좋은 성적이나 학벌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열심히 노력하는 과정에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다만 잠시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해서 헛수고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알아야 합니다. 그 노력은 다음번 시도에 도움이 되는 탄탄한 바탕이 되어 줄 수 있습니다. 이 본질적 가치를 이해하고 ‘업신여기는 무례한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사람들이 줄어든다면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덜 받을 수 있겠죠.

인생의 초반에 한 번의 결과로 차별이 지속된다면 차별을 받는 사람에게도 문제지만, 이득을 보는 사람에게도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이득을 당연하게 여기다 큰 손해를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궁극적인 가치를 추구할 때 일시적 실패와 성공에 뒤따르는 과도한 좌절과 교만을 막을 수 있습니다.

 

정두영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 저자의 책 『마음은 단단하게 인생은 유연하게』를 서점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 본 칼럼의 일부는 경상일보 2022년 8월 19일 15면 ‘[정두영의 마음건강(30)]베스트셀러가 되는 과정-학벌(간판)의 본질’이라는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정두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저서 <마음은 단단하게 인생은 유연하게> 출간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