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파의 푸른 부분을 칼로 썰면 손가락이 들어가는 ‘파 반지’가 만들어지곤 한다. 이런 모양의 잎이 빽빽하게 달린 나무가 있다면, 상상해 볼 수 있을까? 여기 아주 신기하게 생긴 식물이 있다. 

바로크 벤자민이라는 나무는 단 번에 내 두 눈을 사로잡았다. 아담한 크기에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모양의 잎이 그 특징이라면 특징이었다. 한눈에 키우고 싶었다. 한뼘쯤 되었을까? 처음 집에 들였을 때 바로크 벤자민은 화분 길이까지 20~25cm 정도의 아담한 식물이었다. 적당한 화분에 심어 주고 오매불망 가지와 잎이 가득가득, 쭉쭉 자라 주기를 바랐다. 
 

빠글빠글한 파 반지가 가득하다. 바로크 벤자민.
빠글빠글한 파 반지가 가득하다. 바로크 벤자민.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은 인생이든, 식물이든 마찬가지인 듯 싶다. 적당히 매달려 있던 야들야들한 나무의 잎이 어느 날, 바스락거리더니 손바닥이 스치니 사르르륵 잎이 떨어지는 것 아니겠는가? 벌거숭이가 된 가지를 붙들고 나는 그렇게도 원망스럽고 당황스러워 무엇이 문제의 원인인지는 중요하지도 않았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한참 후 고민을 시작했다. 죽은 것인가? 나무는 쉽게 죽지 않는다. 그렇다면 잎이 모두 떨어진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우리 집에 적응 중인가? 그렇다면 어떤 환경이 더 알맞은가? 

그제야 바로크 벤자민이 어떤 환경에서 잘 자라는지에 대하여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선 나는 바로크 벤자민이 ‘고무나무’라는 데서 힌트를 얻었다. 거의 모든 고무나무는 물을 좋아한다. 적당량의 물을 말리듯 바짝 말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주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고무나무의 특징 중 다른 하나는 강한 해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식물등 바로 옆으로 자리 잡아 줬다. 

“자, 이제 어때?”

이제 바로크 벤자민이 몸으로 대답할 차례다. 민둥 벌거숭이가 된 바로크 벤자민의 가지에서 초록의 둥그런 잎들이 송글송글 맺혔다. 정말 신기했다. 누가 동그랗게 말아 놓은 것도 아닌데, 절로 말려 있는 잎이 나오다니… 휴, 한숨 돌렸다. 

 

생태라는 것은 이렇게 자연스럽고도 신기한 것이다. 바로크 벤자민이 어느 날, 쭉쭉 펴지던 잎을 동그랗게 돌려 말면서, “나 오늘부터 동그란 잎을 가질 거야.”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잎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비교적 자주 주는 물과, 강한 해 아래 더 짱짱하고 틈새 없이 가득한 잎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사람 도 비슷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멀쩡하던 마음을 어느 날부터 “오늘부터 불안할거야.”라고 마음먹지 않듯이, 대개의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기질과 환경에서 불안, 우울, 조증 등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일 것이다. 그 사람에게 강한 해가 불안을 유발할지도, 어쩌면 비교적 자주 주는 물이 우울을 유발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한 사람의 어떤 조건일 뿐. 식물과 다르게 사람은 얼마든지 변화가 가능하다. 사람은 존재만으로 변화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 환경이 변화할 수도 있고, 사람이 변화할 수도 있다. 물론 둘 다 변화할 수도 있다. 얼마든지. 내가 직접 겪어 보고 한 글자, 한 단어 적는 것이니 믿어 봐도 좋다. 인생은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마음먹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고 풀린다는 것이 아니다. 그 두개는 전혀 다르다. 변화는 느리게라도 찾아온다. 따라서 불안한 나는 불안하여 흔들리는 만큼 변화할 수 있다는 뜻도 된다. 

당신에게 강한 해가 필요하다면 그늘 없는 너른 들판으로 가서 서면 된다. 당신에게 물이 필요하다면, 물가에 가서 서면 된다. 식물은 이렇게 살아남는다. 당신도 그렇게 살아남을 수 있다. 나도 그럴 수 있다. 

당신에게 웃음을 주는 작은 것들을 기억하고, 그 방향으로 걷자.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속도도 리듬감 있게 걷자. 지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니까. 그래도 불안할 당신을 위해 계속해 본다. 바로크 벤자민을 보고 ‘파 반지’라는 별명을 붙이고, 땡볕에 키우기 힘들 것 같아 식물등을 선물한, 물을 잊지 않으려는 나 같은 사람도 있다. 자세히 보고 힘닿는 정성껏 보살펴 보자. 당신의 불안은 그 나름의 특징이 있을 것이다.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말 한마디씩이 필요할 수도 있고(그건 당신 스스로도 할 수 있다), 인생 최대 행복한 기억이 필요할 수도 있다(이것도 당신 스스로에게 어떻게 만들어 주느냐에 달려 있다).
 

바로크 벤자민. 강한 해를 받으면 잎이 잘 말리고, 그 수가 많아진다.
바로크 벤자민. 강한 해를 받으면 잎이 잘 말리고, 그 수가 많아진다.

 

몇 년이 지난 걸까. 함께 지낸 시간 동안 나는 그래도 바지런히 물을 줬나 보다. 그득한 잎을 달고 어느새 키가 껑충 커서, 이제는 잘 쓰지 않는 브랜드의 화분에 담겨 있는 걸 보니. 그러나 여전히 식물등은 바로크 벤자민 차지이고, 나는 잊지 않고 바짝 물을 말리지 않도록 노력한다.

치사할 만큼 내가 내 비위를 맞춰야 할 때가 있다. 아플 때가 더 그렇다. 왼쪽 어깨가 아프면 왼쪽으로 눕지 않아야 하고, 불안한 마음이 들면 불안하지 않은 상황을 만들어 줘야 한다. 치사해도 별 수 없다. 불안도 아픔이다. 우리는 이것부터 인정해야 모든 것을 시작할 수 있다. 불안이 한낱 순간의 약한 마음의 감정이라고 여기고 만다면, 당신은 민둥가지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자세히 살펴보고, 인정하고, 맞춰 줘야 한다. 무엇이 필요한지 도무지 모르겠다면, 당신은 당신의 마음과 대화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뿐이다. 이제 시작하면 된다.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이 힘든지. 당신을 힘들게 하는 것, 당신을 웃게 하는 것들을 알아채고 배워 가면 된다. 식물을 배워 가듯이. 그러다 어느 날이 되면, 공기처럼 한 공간에 한 순간에 함께하고 있어, 쑤욱 자라 있는 당신의 마음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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