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심금숙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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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례 3-A: 내 친구는 강남 스타일

“어머, 너 여기서 아르바이트 하니? 나 오늘 음악 동아리 악기 연습하고 친구들하고 같이 커피 마시러 온 거야. 우리 집이 이 근처라서.” A가 특유의 친절한 미소로 먼저 인사를 건냈지만, 나는 어색하게 웃어 보이고 하던 테이블 정리를 마무리하였다.

A는 다섯 명밖에 안 되는 과 동기 여학생들 중 하나로, 대학 입학 후 서울 생활에 낯설어하던 나에게 먼저 따뜻하게 다가와서 초반에 친해졌던 여학생이다. 하지만, 수업 끝나고 몇 번 같이 밥 먹고 대화를 나누면서 느꼈던 이질감은 곧 불편함으로 바뀌어서 나는 점차 A와 같이 다니지 않게 되었다. 같은 신입생이었지만, A가 입는 옷과 구두, 작은 화장품이나 파우치, 그리고 소품들은 모두 OO 브랜드 제품들로 내가 쓰는 물건들이 새삼 초라하게 느껴졌고, 무엇보다도 A는 점심을 먹거나 커피를 마실 때 가격을 거의 신경 쓰지 않아서 같이 다니기가 심히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학기 중에 하고 있던 과외 알바 외에, 방학에 또 뭘 해 볼까 고민하다가 우연히 발견하고 시작한 주말 단기 커피숍 알바도 이제 다음 주면 끝이다. 일을 시작할 때의 호기심은 어디 가고 이제는 ‘과외를 하나 더 구하면 구했지, 앞으로 다시는 커피숍 같은 데서는 일하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있다. ‘커피프린스 1호점’과 같은 달달한 로맨스를 기대했던 것은 아니지만, 젊은 고객들이나 매니저가 나를 함부로 대한다고 느껴질 때마다 자존심이 많이 상했기 때문이다. 오늘따라 유달리 미세먼지가 심해서 그런지 카페에 다른 손님은 없었고, 카운터에서 A가 친구들에게 하는 이야기를 멀찍이 서 그냥 듣게 되었다. 

“나 이번에 방학하자마자 엄마랑 같이 미국에 10박 일정으로 여행 갔다 왔잖아? 아빠 미국 연수 갔을 때 2년 정도 살았던 동네도 초등학교 이후 처음 갔는데 많이 바뀌었더라고. 내 미국 친구가 그 동네에 지금도 살고 있어서 그 집에서 하룻밤 자고, 귀국하기 전에 우리 오빠도 잠깐 만났어. 오빠는 대학원 생활이 좀 바쁜지 올해는 집에 못 온다는데, 나보고 전공 공부 평소에 잘해 놓으라고 잔소리하는 건 여전하고. 에휴.”

“OO 교수님이 우리 아빠랑 대학 동기잖아? 작년 겨울에 가족들끼리 같이 여행 갔을 때도, 교수님이 비슷한 얘기하시긴 하더라. 학기 끝나면 전공 책 다시 들여다볼 시간 없다고. 맞어! 학부 수업 들을 때 연습문제를 다 풀 줄 알아야 일반 물리에서 좋은 학점을 기대할 수 있다고 했는데, 나 이번에 일반 물리 학점이 제일 걱정돼. 아, 그러고 보니 OO교 수님 아들 ∇∇가 우리 오빠랑 이번에 같은 대학 들어갔는데, 미국 가기 전에 연락 한번 해 볼 걸 그랬나? 걔 초등학교 때 나랑 같이 영어 과외했었는데 말야.”

“나 다음 달 생일인데, 엄마한테 OOO 작가 그림 사 달라고 할려고. 엄마는 ∆∆∆작가 그림 좋아하시는데, 나는 OOO 작가 그림이 경쾌하고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더라고. 이번에 전시회 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카운터에서 일회용 컵을 정리하며 A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저건 자신감일까? 자기 자랑일까? 아니면 순진함일까?’ 궁금해졌다가, ‘저게 말로만 듣던 강남 스타일인가’ 싶었다. 여름방학 시작과 동시에 다음 학기 등록금과 생활비 그리고 기숙사비 걱정을 하고 있는 내가 지금 느끼는 이 불편한 감정이 ‘부러움인지 질투인지 박탈감인지’ 알기 힘든 가운데, ‘그들은 나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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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뭐 하시니?

양극화 (兩極化)의 시대다. 양극화란 ‘서로 다른 계층이나 집단이 점점 더 달라지고 멀어진다’는 뜻으로, 경제적 · 사회적 양극화는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인 문제로 보인다.

로버트 D. 퍼트넘(Robert D. Putnam)이 수년 전에 발표한 『우리 아이들(Our Kids, the American Dream in Crisis)』은 최근 수십 년 사이 미국에서 심해지고 있는 양극화와 가난하고 불안정한 가정 환경에서 자라나는 미국 아이들이 경험하는 끔찍한 삶의 고난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 저자가 성장기를 보낸 1950년과 1960년대 오하이오 포트 클린턴에서는 다양한 사회적 계층의 아이들이 함께 학교를 다니며 어울려 놀았고, 개인적인 노력을 통해서 부모 세대보다 경제적 · 사회적 성취를 이루는 계층 상승의 꿈, 즉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수십 년 전부터 사회 경제적 계층에 따라 거주지의 분리가 일어났고, 부모의 교육 수준이나 경제력에 따라서 자녀들에게 제공되는 기회의 격차는 심화되어, 계층의 대물림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가 보여 주는 미국 내 변화들이, 놀랍게도 한국에서도 비슷하게 재현되고 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끊어진 계층 이동의 사다리’, ‘개천 용은 옛말’, 금수저 흙수저로 상징되는 ‘수저 계급론(개인의 노력보다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부에 따라 인간의 계급이 나뉜다는 신조어)’ 등 이러한 현실에 대한 담론과 문제의식, 그리고 자조(自嘲)가 넘쳐나고 있다. 부모의 사회적 계층을 결정짓는 요소들로 교육 수준, 직업, 경제력, 인적 자원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현재 청년들이 말하는 ‘수저 계급론’이나 ‘N포 세대’라는 자조 안에는 부모의 경제력 수준에 따른 박탈감과 좌절감이 담겨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공고하던 학벌주의(學閥主義, 개인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출신 학교의 지위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현상)가 약해지고, 부모의 경제력이 나의 노력보다 장차 나의 사회 경제적 수준을 결정하는 세습 자본주의 사회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1970~1980년대 우리나라가 고성장 개발도상국일 때는 부모가 가지고 있는 자산이 거의 없을지라도 대학교를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구한 후 개인적인 ‘경제적 고성장’을 이룬 스토리가 흔했다. 그때는 또 지금처럼 사교육비 지출이 많지 않았고, 대학 졸업을 위한 주거비나 학비가 지금처럼 큰 부담이 아니어서, 대학을 졸업하는 것은 지출된 비용과 비교할 필요가 없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확실한 ‘경제적 가치’를 가지고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 후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물결과 함께 본격적인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면서 괜찮은 일자리는 확연히 줄어든 반면, 대학 졸업과 취업을 위한 비용, 즉 사교육비, 주거비, 등록금, 생활비 부담은 크게 늘어서 대학 교육의 경제적 가치는 불확실해졌다. 그래서 대학보다 공무원 시험 합격을 선택하고, 소위 명문 대학보다 경제적 안정이나 보상이 확실한 전공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부모의 학력과 경제력이 클수록 자녀가 성공할 확률이 높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오래된 사실인데, 이에 대해서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은 그의 책 『아웃라이어(Outlier)』에서 IQ와 성공의 상관관계를 말하면서 흥미 있게 이야기한 바 있다.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IQ 115 이상이면 성공을 위해서, 130 이상이면 노벨상을 받을 정도로 훌륭한 과학자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한다. 책에서도 소개된 터마이트 (Termites, IQ 140 이상인 약 1,500명의 어린 영재 집단 코호트) 중 사회적 성공을 이룬 소수의 영재들은 지극히 평범한 경력으로 끝난 다수의 영재들과 가정환경 측면에서 달랐다고 하며, 결국 특별한 지능보다 사회적 상황에서 누구에게, 언제, 어떻게 말해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지 아는 ‘실용 지능(practical intelligence)’이 성공에 중요하고, 이는 대부분 가족에게서 배운다고 하였다. 

『아웃라이어(Outlier)』에도 소개된 사회학자 아네트 라루(Annette Lareau)의 연구에 따르면, 중산층의 부유한 부모는 적극적으로 자녀들의 재능을 키워 주고, 자녀들이 어른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협상하게 하는 등 ‘권한’에 대한 감각을 길러주는 ‘집중 양육(concerted cultivation)’을 하는 반면, 가난한 부모는 자녀들이 알아서 성장하도록 내버려 두는 ‘자연적 성장을 통한 성취(accomplishment of natural growth)’를 택한다고 한다.

또, 가난한 부모들이 권위 앞에서 수동적이고 겁을 먹는 것처럼 자녀들도 기관 내 권위 있는 어른에게 거리를 두고 위축된 태도를 보이거나 복종 또는 반항한다고 하였다. 아네트 라루의 연구는 『불평등한 어린 시절,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불평등의 대물림(Unequal Childhood – Class, Race, and Family Life)』이라는 책으로 이미 출판되었는데, 아네트 라루는 이 책에서 미국 사회는 이미 계층화되었고, 각 계층의 경제력이나 직업 등의 자원은 후세로 세습된다고 주장하였다. 부모의 사회 경제적 수준과 가정환경이 자녀의 성공에 중요하게 영향을 준다는 연구들은 넘쳐 나며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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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러한 부모의 조건들이 세습되고 계급화되고 있다는 생각은 최근 수십 년 사이에 커지고 있다. 과거 ‘하면 된다 (Just Do It)’라는 파이팅이 넘치는 책상 위 문구는 ‘되면 한다’는 마인드로 변화되었고, 부모의 조건, 특히 경제력은 나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다는 무기력감에 빠진 청년들이 확실히 많아졌다. 그들은 ‘S대학 졸업장도 필요 없고 우리 부모가 강남 건물주였으면 좋겠다’, ‘바꿀 수 있다면 가정환경을 바꾸고 싶다’, ‘의사가 되는 것보다 우리 부모가 의사였으면 좋겠다’와 같이 부모의 사회 경제적 조건에 대한 박탈감을 숨김 없이 드러내서 그들의 부모 세대들을 당황시키기도 한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1970~1980년대 산업화, 군사독재 시대 때와 비교해서 현대인의 삶은 더 다양하고 복잡해졌고, 변화의 속도가 빨라서 쉽게 예측 불가능해졌다. 또한, 인터넷 등을 통한 자기 표현과 소비의 시대이기도 하다. 교육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교육의 종류도 다양하고 많아져서, 부모가 경제력이 충분하면 조기 유학이나 국제학교 입학을 고려하기도 하고, 사립초등학교에 아이를 보내기도 한다. 예체능이나 교과목 사교육의 범위도 다양해서,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서 아이에게 제공할 수 있는 학교 밖 경험의 기회는 천양지차(天壤之差)로 다르다. 부모의 사회적 네트워크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경험의 기회들도 있는데, 이러한 경험에서 배제된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들만의 리그’인 것이다. 

교육의 기회 외에도 경제적 풍요로 누릴 수 있는 ‘편리하고 좋은 것’들이 요즘은 너무 많아졌다. 고가의 가전 제품은 끝없는 기술 혁신을 보여 주고 있고, 고급 커뮤니티와 호텔식 서비스를 제공하는 신축의 고급 아파트들, 고가의 건강검진, 고가의 여행상품, 고가의 식당들, 명품 브랜드 의류들, 고가의 차들, 고가의 가구들, 고가의 공연들, 고가의 예술품들, 고가의 취미생활, 고가의……. 이 끝없는 고가의 제품들과 경험의 기회들은 기술 발달과 더불어 다양해지기도 했지만, 과거 인터넷 미디어가 출현하기 전에는 일반인이 알지도 못했던 것들이 대중들에게 세세하게 알려지면서 일상에 만족하던 사람들까지 박탈감에 빠지게 만든 면이 있다. 소위 엘리트들의 학교 생활, 전문직 종사자의 경험담, 고급 아파트의 내부 등 해당 지인이 아니면 전혀 알 수 없었던 많은 정보들과 은밀한 내용들이 유튜브 등으로 전파되면서, 일반 대중들은 이제 대한민국 상위 1%가 누리는 것들과 자신을 비교하고 ‘나는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현대인의 삶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쉽게 예측 불가능해진 만큼, 성공 방정식도 고차원적이 되었다. 과거 판검사가 되거나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하거나 유학파 박사가 되는 식의 일차원적인 성공의 공식이 이제는, 고차원적으로 바뀌어서 시험을 잘 보는 학습 능력 외에도 풍부한 인적 네트워크, 사회적 소통 능력과 공감 능력, 호감 가는 외모, 외국어 능력, 실패를 감당할 수 있는 도전 정신까지 ‘모두’ 요구한다.

‘엄친아 (엄마 친구 아들)’와 ‘엄친딸 (엄마 친구 딸)’이라는 신조어는 능력이나 외모, 성격, 집안 등 모든 면에서 완벽한, 모두 갖춘 사람을 질투를 섞어 부르는 말로, 하나라도 부족하면 여기에 낄 수가 없는 것이다. 부모가 사회적 자산을 갖춘 경우 자녀들은 가정에서 부모를 롤모델로 이러한 자산을 자연스럽게 체득할 수 있지만, 부모가 그렇지 않은 경우 자녀들은 가정 밖에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힘겹게 이를 습득해야 한다. 부모가 이중언어자(bilingual)인 경우, 사회적 네트워킹 능력이 뛰어나서 폭넓은 인맥을 갖춘 경우, 타인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우수한 경우, 자녀에게 이와 같은 무형의 자산이 자연스럽게 전달될 것이라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부모의 경제력은 곡예사의 그물망처럼 자녀들이 두려움 없이 꿈을 향해 도전하고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안전망’ 역할을 해 주게 된다.

물론, 부모 세대의 사회적, 경제적 자산의 대물림 현상은 후천적 환경 때문만이 아니다. IQ나 성격에서 유전적 요인으로 설명되는 부분이 대략 50% 정도이고, 외모의 경우 그 이상이 유전적으로 결정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세대간 대물림 현상은 누군가에게는 ‘자연적인’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계 때문에 부모가 모두 늦게까지 집을 비워서 혼자 빈 집에서 식사를 챙겨 먹고, 자신이 외롭다는 것도 알지 못한 채 방치되어 지내고 있는 수많은 가난한 아이들에게 우리 시대의 양극화는 그저 다양한 기회와 가능성의 박탈일 따름이다.

 

  • 연재 내용은 대부분 『내가 박탈감에 빠진 날: 박탈감에 빠진 누군가를 위한 책』 이라는 제목으로 2022년 교보문고 퍼플을 통해서 이미 자가출판 되었음을 밝혀 둡니다.

 

삼성마음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심금숙 원장

심금숙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삼성마음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박사
KAIST CLINIC 연구부교수, 초빙교수
저서 <내가 박탈감에 빠진 날 : 박탈감에 빠진 누군가를 위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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