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정리의 여왕’ 곤도 마리에가 불러온 ‘미니멀라이프’ 열풍은 한때 전 세계를 강타했습니다. 안 쓰는 물건을 과감히 버리고, 불필요한 소비를 하지 않고, 정돈된 공간과 삶을 즐기는 것. 곤도 마리에로 시작된 정리 신드롬은 미니멀라이프의 철학을 입고, 하나의 자아실현 수단으로서 인기를 끌었지요. 미니멀라이프를 시작했다는 SNS 인증 사진과 이후 놀라운 변화를 경험했다는 후기 글들이 인터넷에 넘쳐났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반대 개념인 ‘맥시멀라이프’가 등장했는데요. 미니멀라이프 실천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자신의 취향으로 가득 찬 공간을 선호하는 이들이 나타난 것이죠. 맥시멀라이프를 추구하는 이들은 “도저히 버릴 물건이 없다”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애정과 추억이 듬뿍 담긴 물건 가운데 ‘버려질 대상’을 선택하는 과정 자체가 고통스럽다는 겁니다.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두 가지의 삶의 방식 가운데 무엇이 더 좋고 나쁘고를 떠나, 미니멀라이프에 대한 관심이 여전히 뜨겁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미니멀라이프를 검색만 해 봐도 미니멀라이프를 추구하지만 계속 실패한다는 고민 글, 미니멀라이프 인테리어 정보, 미니멀라이프 실천 ‘꿀팁’ 등이 다수 나옵니다. ‘정리’라는 것 자체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도대체 왜 이리 어려운 걸까요? 그저 안 쓰는 물건을 버리는 것인데도요.

이는 일정 부분, ‘보유 효과(endowment effect)’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보유 효과란, 어떤 대상을 소유하고 있거나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대상에 대한 애착이 생겨 객관적인 가치 이상을 부여하는 심리 현상을 말합니다. 다른 용어로 ‘소유 효과’라고도 합니다. 기업들의 ‘제품 불만족 시 100% 환불 보장’ 마케팅은 이러한 보유 효과에서 나온 자신감입니다. 고객들이 일단 제품을 받아서 사용하고 나면, 제품에 대한 가치평가가 높아져 실제 환불을 요구하는 사례가 생각보다 적기 때문입니다. 

인지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과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Richard Thaler)가 미국의 코넬대학교 경제학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험은 보유 효과의 영향력을 극명하게 보여 줍니다. 카너먼과 세일러는 학생들을 무작위로 두 개의 그룹으로 나눈 뒤, 한 그룹에만 대학 로고가 그려진 머그잔을 지급했습니다. 

잠시 뒤 일종의 경매를 열어 컵을 소유한 그룹에는 ‘얼마에 팔 의향’이 있는지, 컵이 없는 그룹에는 ‘얼마에 살 의향’이 있는지 물어봤다고 합니다. 그 결과 제시한 가격의 평균은 각각 5.25달러와 2.75달러로, 약 두 배의 차이가 났습니다. 컵을 소유한 집단이 그렇지 못한 집단보다 컵의 가치를 이토록 높게 평가했다는 것은, 한 번 소유한 물건을 포기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 줍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물건 앞에 서면, 정리할 수 없는 수많은 이유를 만들어 내고는 합니다. 비싼 가격으로 구입했는데 아까워서, 언젠가 다시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도 추억이 있는 물건이라서…. 지난 일 년 간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말이지요. 대신 온갖 이유를 붙여 물건을 제자리에 놔둔 뒤 미니멀라이프에 실패했다고 말하곤 합니다. 

 

물건을 소유하면 소유할수록 보유 효과는 더욱 커지기 마련입니다. 이는 다시 물건에 대한 집착을 만들고 더 강한 보유 효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합니다. 마음이 온통 물질에 집중된다면 나의 에너지를 필요한 곳에 분배하기 어렵습니다. 삶의 진정한 의미는 점점 흐려지고, 물질이 주는 만족감에 초점이 맞춰지게 되지요. 하지만 그 만족감은 대개 누군가 더 좋은 물건을 가졌거나 신상품이 나와서 등의 이유로 쉽게 사라지는 것이라서 오래 지속되지 않습니다. 

미니멀라이프의 진정한 실패는 바로 여기서 시작됩니다. 사실 미니멀리즘의 목표는 단순히 불필요한 물건을 버리는 게 아닙니다. 쓸데없는 걱정 줄이기, 소비 줄이기, 에너지 소모적인 모임 줄이기처럼 삶에서 불필요한 것들에 낭비하는 비용과 시간, 에너지를 줄여 가치 있고 중요한 것에 더욱 투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물건에 대한 집착부터 버리지 못하면 삶을 비워내는 것 또한 실패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미국의 뇌 신경 전문가 애덤 개절리(Adam Gazzaley)와 심리학자 래리 로젠(Larry Rosen)은 우리의 집중력이 ‘증강(Enhancement)과 ‘억제(Suppression)’를 통해 향상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증강은 중요한 신호를 확대하는 기능, 억제는 불필요한 정보를 억제하는 기능을 뜻합니다. 어수선하고 무질서한 환경에 놓였을 때 나의 에너지를 중요한 것에 쏟아붓고, 불필요한 것에 쏠리는 주의력은 가능한 억제하는 것이지요. 이를 미니멀리즘에 적용해 본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최소화함으로써 정말로 필요한 곳에 더욱 많은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가 됩니다.

잡다한 것들에 둘러싸여 삶의 중심이 흔들리는 것 같다면, 잠시 멈춰서 주변을 살펴보세요. 집안의 창고와 서랍장, 다이어리의 일정표, 혹은 휴대전화의 메모장을요. 값비싼 물건을 소유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으려는 소비 습관은 공허함을 채우지 못합니다. 불필요한 모임과 일정은 에너지를 고갈시키고요. 그러니 이렇게 자문해 보는 건 어떨까요? ‘나의 삶이 진정 가치 있는 것들로 꾸려져 있는가?’, ‘나의 에너지를 소비할 만큼 의미 있는 것인가?’라고요.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전형진 원장

 

* 코넬대 실험 참고자료

https://www.promotionproducts.com.au/blog/promotional-mug-endowment-effect/

https://www.zembula.com/blog/creating-ownership-endowment-effect/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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