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규홍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제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두 가지입니다. 최근 제 기분을 크게 상하게 했던 한 사람이 있었어요. 막말을 듣고 바로 사과도 들었습니다. 기분이 나빠서 혼자 펑펑 울었지만, 그 사람이 악의가 있었던 것을 아니었기에 나름대로 그 사람을 비난하는 것을 멈추고, 그래도 괜찮은 사람으로 기억하며, 자꾸만 안 좋은 생각에 머무르지 않도록 감정을 잘 정리하였습니다. 일하는 도중에 갑자기 그 생각이 났는데, 계속해서 더 미워지고 그 미워하는 감정 속으로 자꾸만 들어가는 것 같았어요.

아빠와 싸운 일도 있었는데 그 기억이 계속해서 왜곡되고 과장되면서 아빠를 정말 미워하는 것 같았어요. 이 두 가지 일들은 몇 주가 지난 일인데도 갑자기 떠올라서 생각 속에서 계속 전개돼서 멈출 수가 없었어요. 일하는 중 생각이 진행돼서 너무 화가 나는데 그 감정이 맞는 줄 알았고, 일을 마치고 보니 감정들이 모두 사라져서 이상했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저는 몸이 아프면 기분부터 우울해지고 왜 우울한지를 생각해 보고 나서야 아픈지를 알아차립니다. 배나 목 같은 특정 부위가 아픈 것이 아닌 몸살이나 감기, 머리 등이 아플 때, 우울감부터 들고 나서 아픈 것을 인지합니다. 코로나를 앓았을 때는 일주일 정도 누워만 있어야 했을 때 제 자신이 정말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처럼 무력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아프면 시간이 아깝고, 아프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생각을 해 보니 저는 마음이 자주 복잡해지는 것 같아요. 딸들을 위하지만, 애처로운 척하며 관심받고 싶어하는 아빠에 대한 증오심과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 같이 살고 있는 우울증 치료 중인 어머니를 잘 대해 주고 도와주고 싶지만 버겁고 지치는 마음이 혼란스럽고 불편함으로 제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항상 긴장하며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아빠는 신경질과 소리 지르는 게 잦았고, 저는 눈치를 보고 부모님의 기분을 맞추려 애쓰면서 살아왔습니다. 초등학생 때, 부모님이 서로 자주 폭력을 가하면서 싸워서 몇 시간 동안 두려워서 언니와 함께 방에서 떨곤 했습니다. 엄마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우울증을 앓았고 죽고 싶다는 말이나 아빠에 대한 하소연을 많이 했습니다. 정작 저는 부모님에게 수용받거나 저의 감정과 마음을 표현할 기회가 없었던 것 같아요.

몇 년 전부터 신앙생활을 통해 삶의 활력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보잘것없고 불행한 것 같은 저도 사랑받을 만하고 가치 있는 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신앙생활을 통해 내면의 힘이 많이 생겼습니다. 심리학 강의도 듣고 저의 기분을 인식하는 것을 많이 연습하면서 내가 원래부터 우울한 사람은 아니고, 나도 즐거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고치긴 쉽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노력해 왔던 것 같습니다.

걱정이 있거나 생각에 빠질 때는 아침까지도 잠을 못 자거나 하는 일도 있었지만, 요즘은 잠을 못 자서 밤을 새는 문제도 없어졌습니다. 또, 정리 정돈을 못하는 문제가 있었는데 약간의 규칙을 정하면서 요즘은 힘들지만 조금씩 정리 정돈을 하고 있습니다.  기분이 가라앉을 때는 제가 좋아하는 일인 악기 연주, 책이나 성경 읽기 등을 하면 기분이 좋아지거나 우울한 기분이 차분히 정리되는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총체적인 어려움을 다 가지고 살아왔던 것 같지만, 제가 부족하고 뒤떨어지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고,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하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여전히 여러 사람과 어울리는 것은 쉽지 않네요. 제가 민감한 사람이라는 것은 민감한 기질을 다루는 책을 읽으며 최근에 알게 되었어요. 

저의 두 가지 문제에 대해 제가 어떻게 고칠 수 있을지, 원인은 무엇인지 알려 주셨으면 합니다. 정신의학신문을 통해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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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께서 올려주신 사연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두 가지 질문을 주셨는데요, 직접 뵙지 않고 지면의 글만으로 드리는 상담이다 보니,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음을 미리 양해 부탁 드립니다. 사연 주신 내용을 바탕으로 몇 가지 추측이나 가능성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사연자님께서는 몇 주 전에 겪으신 대인관계적 갈등 상황이 일하는 도중에 갑자기 떠오르고, 그 갈등 장면이나 상대방에게 느꼈던 부정적인 감정이나 미워하는 마음 등이 마치 현재에 재현되는 것과 같은 강렬한 느낌을 받으신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는 도중에도 수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최근에 겪으신 안 좋았던 상황과 관련해서 침습적인 사고가 반복적으로 일어나 일상생활에 곤란을 겪을 정도라면, 문제적인 상황이라고 인식할 수 있겠습니다만, 사연자님께 떠올랐던 생각들이 끊임없이 반복되어 일을 수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거나 일상생활을 해 나가는 데 큰 불편함이 없다면, 크게 걱정할 만한 일은 아닌 듯합니다. 그러나 몇 주 전에 종결된 사건임에도 부정적인 감정이나 화가 나고 미워하는 감정이 불쑥불쑥 든다면, 그 당시 느꼈던 부정적인 감정이 충분히 소화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그때의 정황을 떠올려 보면서 사연자님의 생각과 감정을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가지시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가능성은 평소 사연자님의 불안 수준이 다소 높은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평소 긴장을 잘하거나 불안 수준이 높은 경우라면, 스트레스가 많아지거나 불편한 상황에서 원치 않는 침습적인 사고가 떠오를 수도 있습니다. 사연자님께서는 아버님과 다툰 기억이 계속해서 왜곡되고 과장되면서 정말 아버지를 미워하는 것 같은 감정에 빠지고, 사고를 멈출 수가 없다고 하셨는데요, 이 경우에 내면의 불안 수준이 높은 상태에서 특정한 사건으로 인해 증폭되면서 이러한 증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 사연자님처럼 자신의 생각과 사실을 분리해서 접근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고나 감정이 너무 증폭되면 그것이 실제라고 믿어 버리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그것이 강박적 사고로 굳어질 수도 있습니다. 사연자님께서 아버지를 왜곡적이고 과장되게 생각했다는 ‘사고를 알아차린 것’은 참으로 적절하게 기능하신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생각일 뿐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차리고, 지각하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사고가 떠오를 때 일부러 급하게 멈추려 하거나 억압하려고 하는 것은 그리 좋은 방식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사고에 집착하지 말고, 떠오르는 대로 어느 정도 놔두면서 흘려보내는 것이 바람직한 접근법입니다. 침습적인 사고는 억누르려 하거나 멈추려고 할수록 더 높게 튀어 오르는 스프링처럼 더 강해지거나 오래 지속될 수도 있습니다. 또 그러한 사고가 떠오르는 것 자체로 불안해하다 보면 오히려 더 불안해지실 수 있으니, 어느 정도 생각이 잦아들 때까지 그냥 흘러가도록 두시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이러한 노력에도 계속해서 떠오르는 침습적 사고나 감정으로 불편감이 크시다면, 인지행동치료의 일환으로 불안한 마음과 걱정을 강화하는 사고 과정을 기록하고 검토하면서 어느 부분에서 왜곡된 판단이 들어갔는지를 발견해 나가는 연습을 해 보시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연습을 통해 점차 왜곡된 나의 생각을 교정해 나갈 수 있고, 그에 따라 불안감도 감소될 수 있으니 한 번 시도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사연자님께서는 어린 시절 부모님의 불화나 가정폭력에 노출된 힘든 시간들을 겪어 오셨던 것 같습니다. 또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아 오신 어머니와 신경질적인 아버지의 슬하에서 충분히 감정을 수용받거나 마음을 표현할 기회도 없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통해 삶의 활력을 찾고, 사연자님께서 충분히 소중한 존재임을 깨달으시면서 내면적인 힘을 회복하시는 과정에 있으신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듭니다. 그만큼 사연자님께서는 잠재된 내면적인 힘이 크신 분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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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자님께서 해 주신 또 다른 질문은, 몸이 아프면 기분부터 우울해지고 왜 우울한지 생각해 보고 나서야 아픈지를 알아차린다고 하셨는데, 왜 이런 것인지 궁금하신 것 같습니다. 사연자님을 비롯한 다른 많은 사람들도 몸이 아프면 덩달아 기분도 우울해집니다.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몸이 아플 때 울적한 마음이 드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사연자님께서는 코로나로 인해 많이 아프셨을 때 ‘스스로가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고 하는 부분이 좀 더 마음에 걸립니다. 또 아프면 시간이 아깝고, 아프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도 말씀해 주셨는데요, 사실 아프다는 것은 우리 몸이 많이 무리가 되어서 좀 쉬어 달라는 신호입니다. 이러한 신호를 제때 감지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무리하다가 몸살이 나기도 하는데요, 아마도 어릴 때부터 오랫동안 편안하고 이완된 상태보다는 다소 긴장되고 눈치를 보는 상태로 지내신 시간이 길다 보니 몸이 아파서 이완되는 상태가 오히려 불편하다는 느낌을 받으실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연자님께서는 의식적으로는 스스로가 가치 있는 존재이고,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무의식적으로는 아직도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 봅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자존감을 확립하고 키워 가려는 노력을 계속 이어 가신다면 좋겠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긴장감이 높아지는 부분에 대해서는 매일매일 명상을 하면서 몸과 마음을 이완하는 시간을 꾸준히 가져 보신다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명상은 교감신경의 긴장을 떨어뜨리고,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를 낮추는 효과가 크기 때문에 스트레스 해소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명상의 핵심은 자기 호흡을 지켜보는 것입니다. 우리 몸의 많은 부분은 자율신경계의 통제 아래 있습니다. 내 의지로 컨트롤되지 않는 영역이 많은 것이지요. 그러나 호흡하는 것은 내가 지켜볼 수 있고, 조절할 수 있습니다. 호흡을 살피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의 연결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차릴 수 있고, 호흡이 거칠거나 짧아지면서 화가 났을 때 부드럽고 긴 호흡으로 바꿈으로써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몸이 아플 때는 충분히 쉬어야 할 시간임을 받아들이시고, 아픈 시간을 아까워하기보다 그동안 아플 만큼 애쓴 자신에게 수고했다고 이야기해 주세요. 다시 충전하는 시간을 스스로에게 기꺼이 허락하신다면, 건강이 회복된 후에는 좀 더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일상을 보내실 수 있을 겁니다. 

 

강남푸른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규홍 원장

 

이규홍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의과전문대학원 졸업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수료
METTAA CBT / Schema Therapy Exp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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