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잘 자.” 나영 씨는 매일 밤 남자친구와 전화 통화를 한 뒤 잠자리에 듭니다. 그런데 오늘은 왠지 기분이 찜찜합니다. 전화를 끊기 전 남자친구의 목소리가 좋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제 저녁 남자친구의 늦은 귀가를 나무랐기 때문일까요? 나영 씨는 고개를 좌우로 흔듭니다. 단지 피곤했기 때문일 거라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이내 드는 불안한 생각들. 혹시 남자친구가 뭔가를 숨기는 걸까요? 마음이 식은 건 아니겠죠.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이내 극단으로 치달아 버립니다. 남자친구는 어쩌면, 내일 이별을 고할지도 모릅니다.

우리 주변에는 나영씨처럼 아주 사소한 계기로도 극단적인 생각을 멈추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단순히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종종 ‘최악의 결과’를 예상하고, 심할 경우 확신의 단계로 넘어갑니다. 자신이 가정한 최악의 상황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고 스스로 믿어 버리는 것이지요.

대인관계뿐만이 아닙니다. 이전에 해 보지 않은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 회사에서 큰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처럼 나영 씨와 같은 사람에게 일상의 크고 작은 사건들은 언제든 최악을 연상케 하는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인지심리학에서는 이를 ‘파국화’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이는 합리정서행동치료(rational emotive behavioral therapy, REBT)의 창시자 ‘알버트 앨리스(Albert Ellis)’가 소개한 개념으로, 부정적 사건이 비합리적으로 과장되어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인지 왜곡 현상입니다. ‘재앙화’ 또는 ‘부정적 과장’이라고도 표현합니다.

파국화 인지가 나타나면 어떤 경험을 하던 자기 자신과 환경에 대해 최악을 가정하고, 그 최악의 상황이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분장애나 불안장애를 겪는 환자에게서 주로 나타나며, 이런 질병이 없더라도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을 때 경험할 수 있는 사고 유형입니다. 

‘네이처 뉴로사이언스(Nature Neuroscience)’지의 2015년 3월호에 실린 한 연구는 불안감이 큰 사람일수록 불확실하거나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주장합니다. UC버클리와 옥스퍼드 대학교의 연구진은 불안 수준이 낮은 사람부터 극도로 높은 사람까지 총 31명의 성인을 선정해 실험을 진행했는데요. 

참가자들에게는 두 개의 선택지가 주어졌으며, 선택지 중 하나는 경미한 수준의 전기 충격이 가해지도록 설계됐습니다. 참가자들은 충격을 피하기 위해 충격이 자주 가해지는 모양을 추적, 다음 선택에 반영했는데요. 그 결과, 불안 수준이 높은 사람일수록 환경적 단서를 읽어 내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의 뇌는 사건의 결과를 예측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미래 사건에 대한 현재의 예측을 조정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발표를 앞둔 상황이라면, “지난번에 잘했으니, 이번에도 잘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이는 자신감 향상의 열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불안감을 자주 느끼는 사람들은 이러한 사고의 과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현재의 결과가 좋더라도 미래의 유사한 사건에 대해 예측과 기대를 조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불안감은 이처럼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했을 때 합리적인 선택을 방해하고, 상황을 잘못 인식하도록 만들며, 심할 경우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결국, 불안감을 낮춤으로써 현재 상황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내리는 게 중요한데요,미국 LA의 심리학자 보니 주커(Bonnie Zucker) 박사는 그 해결책으로, 다음의 세 가지 방법을 제시합니다.

 

① “불안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스스로에게 말해 주세요.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불안함을 느끼는 것은 사람이라면 당연한 일입니다. 발표를 앞두고, 중요한 시험 전에, 고층에서 난간 너머를 바라볼 때 누구나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이 들지요. 불안도가 낮은 사람은 이를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입니다. 반면 불안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그 감정을 부정적인 생각과 예측들로 발전시킵니다. 그러니 갑작스러운 불안이 찾아오면 “이건 당연한 일이야”라고 되뇐 뒤 그 생각에서 벗어나려 노력하세요. 그리고 스스로를 결코 자책하지 마세요.

 

② 피하지 않아도 될 상황까지 회피하지 마세요.

무너지기 직전의 책장 아래에서, 돌진해 오는 차량과 맞닥뜨렸을 때, 이를 피하고 “다행이다”라고 느끼는 것은 마찬가지로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불안감을 유발하는 모든 상황에서 달아나려 한다면? 사람들 앞에서의 간단한 자기소개조차 무서워 피할 방법만 궁리한다면? 이처럼 사소한 상황까지 모두 회피할 경우 그런 자신을 수치스러워하고, 그 수치감이 쌓이면 자기 비난으로 넘어갑니다. 피하지 않아도 될 상황은 피하지 않으려 노력해 보세요.

 

③ 즉각적인 안도감에 집착하지 마세요.

가스레인지의 불을 켜둔 것 같아서 몇 번씩 부엌으로 돌아가고, 홀로 집에 있는 자녀가 걱정돼 수십 번씩 가정용 CCTV를 보는 행위는 불안을 가중시킵니다. 적절한 수준이라면 괜찮지만, 횟수가 지나치게 빈번하다면 이는 문제입니다. 부엌의 가스레인지를 지금 당장 확인하고 싶다면 우선 단 30초 만이라도 버텨 보세요. 이후 조금씩 시간을 늘려가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불안은 종종 다른 감정까지 잠식해 버리곤 합니다.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행복이나 기쁨, 즐거움 등 다채로운 감정을 불안이라는 흑색 물감으로 뒤덮어 버리지요. 마치 ‘이별’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사로잡힌 나영 씨처럼요. 어쩌면 나영씨는 다음 날 부정적인 생각들 때문에 온종일 괴로웠을지도 모릅니다. 정작 남자친구는 나영 씨와의 달콤한 연애에 행복해하고 있는데도요. 

혹시 여러분도 나영 씨처럼 이유 없는 불안감 때문에 삶의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있지는 않나요? 그렇다면 알려드린 세 가지 방법을 통해 불안에서 조금씩 멀어지는 연습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우경수 원장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대구카톨릭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대구카톨릭대학교병원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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