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인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회생활의 연차가 쌓일수록 한 번쯤 고민하게 되는 것이 소통의 기술입니다. 상대의 감정을 존중하면서 나의 의사를 명확히 밝히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요. 소통이란 기분, 감정, 생각을 주고받는 것으로, ‘잘’ 표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잘 표현한다’는 것은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고, 또 그 방법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주로 생각보다 정서를 표현할 때 어려움을 겪습니다. 생각은 언어로 떠오르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혹은 정제의 과정을 거쳐 전달하면 됩니다. 하지만 추상적인 ‘감정’은 실재적인 ‘언어’로 바꿔 표현해야 합니다. 즉, 감정 표현이 어렵다면 감정을 언어로 치환하는 법부터 배우면 됩니다. 이를 정서의 ‘명명화(labeling)’라고 합니다. 나의 정서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죠.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이름을 붙이려면 먼저 정서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미국심리학회(APA)에 실린 한 연구는 이러한 정서 인식의 방법을 설명합니다. 연구진은 학부생 601명이 참여한 4개의 실험을 통해 ‘정서의 인식(mood monitoring)’과 ‘정서의 명명화(mood labeling)’를 규정했는데요. 정서의 인식이란, 감정의 변화가 감지될 때 그 감정이 무엇인지 지켜보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감지된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 정서의 명명화입니다.

정서의 명명화 점수가 높게 나타난 피실험자는 사회적 지지를 적극적으로 구하고, 이에 만족하며,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적극적인 지지를 자주 구할수록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게 될 확률이 높아지고, 정서적 명명화를 잘하므로 감사 표현도 쉽게 하며, 결과적으로 피드백을 해준 사람 또한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무엇보다 정서의 명명화를 잘하는 사람은 자신과 타인의 정서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정서의 명명화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낮은 자존감과 신경질적인 성향(neurotic tendencies)을 지녔으며, 자신의 기분에만 집중할 뿐만 아니라 그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정서 인식의 명확성이 낮은 사람일수록 자신이 경험하는 정서를 이해하기 위해 오랜 시간 집중해 보지만, 오히려 매우 복잡하게 지각하는 탓에 그 정서에 매몰되는 지점까지 이르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내가 지금 느끼는 정서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명명화할 수 있을 때 자신의 정서에 적절하게 반응할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잘 표현할 수 있습니다. 연구진은 이를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다음의 표를 제시합니다.

정서의 명명화가 어렵다면 나의 감정을 ‘구분’해 보는 것입니다. 현재 나의 감정이 표의 4개 면 가운데 어디에 속하는지 분류해 보세요. 각 면에 들어가는 감정의 예시를 많이 알수록 도움이 됩니다. 

대표적으로 1사분면은 ‘짜릿’ ‘통쾌’ ‘환상적인’ ‘기쁨’의 감정을, 2사분면은 ‘분개’ ‘두려움’ ‘모욕적인’ ‘고통스러운’의 감정을 나타냅니다. 3사분면은 ‘만족스러운’ ‘감사’ ‘편안한’ ‘포근한’과 같은 감정이며, 4사분면은 ‘의기소침’ ‘지루한’ ‘처량한’ ‘외로운’ 등의 감정을 설명해 줍니다.

물론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각 사분면에 속한 감정의 정도나 경계가 다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명확히 구분되지 않더라도, 넓은 범주에서 자신의 감정을 분류해 보는 게 중요합니다. 또한 감정은 하나의 속성으로 대표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기쁘지만 슬프고, 화가 나지만 미안하고, 애틋하지만 동시에 증오하는 것처럼 정반대의 범주에 속할 때도 있지요. 이를 애써 규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복잡한 성격의 감정이라는 것을 그대로 인정할 수 있으면 됩니다.

 

도저히 모르겠을 때는 위의 표를 떠올리며 감정을 나열해 보세요. “기분이 좀 가라앉는 것 같아. 좋지 않아”라고요. 세련된 문구를 사용하는 것보다 감정을 표현하려는 그 노력 자체에 의의가 있습니다. ‘나의 감정을 말하겠다’는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현재의 상태를 전달하면 되는 것이지요. “잘 설명하지 못했을까 봐 걱정되네요”라고 말하고 싶은 지금의 저처럼이요.

 

당신의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김인수 원장

김인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당신의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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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때 선생님 글을 만났더라면 좀더 빨리 우울감에서 헤어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글 내용이 너무 좋아 응원합니다. 사소한 관계의 행복이 회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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