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어느 초원에 캥거루 가족이 살았습니다. 하루는 아빠 캥거루가 가족을 위해 먹이를 구하러 나갔다가 그만 사냥꾼들에게 붙잡혀 갔습니다. 아빠 캥거루가 돌아오지 않자 엄마 캥거루는 초조해졌습니다. 며칠이 지나도 아빠 캥거루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 난 줄 알고 걱정하던 엄마 캥거루는 마음을 바꿔 먹었습니다. 남편이 떠난 거라고 여긴 것이죠.

  ‘젊고 예쁜 캥거루와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간 거야. 이렇게 배신을 당할 줄이야…….’

  남편이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한 엄마 캥거루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아빠는 우리를 버리고 떠났단다. 하지만 내가 아빠 몫까지 다 해 줄 테니 염려 마라.”

  이후 엄마 캥거루는 아들을 보살피는 데 모든 힘을 쏟았습니다. 아빠 없이 자라는 버릇없는 캥거루라는 말을 듣지 않도록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보고 챙겼습니다. 조금만 걱정스러운 일이 있으면 달려가 아들을 대신해 자신이 나서서 일을 해결했습니다. 친구들과 다툼이 생겼을 때도 어김없이 나타나 아들을 보호하면서 방패막이가 돼 주었죠. 그렇지만 아무리 전사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아들을 돌봐도 아들의 모든 것을 대신해 줄 수는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아예 아들을 내 아랫배에 있는 주머니에 넣어서 키우는 게 좋겠어.’

  엄마 캥거루는 아들을 위하는 마음의 독립을 준비해야 할 아들을 자신의 아랫배 주머니에 넣고 다녔습니다. 그렇게 아들 캥거루는 엄마 배 속 주머니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장성한 어른 캥거루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주머니 안에서 나올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죠. 엄마 캥거루 역시 다 큰 아들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먹이고 입히는 게 여간 힘들고 부담스럽지 않았지만, 아빠 몫까지 두 배를 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의무감에 이를 악물고 참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아들 캥거루는 친구들이 장가가고 시집 가고 살림을 차려 새끼 낳는 걸 보면서도 스스로 먹이 하나 구해 먹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엄마 캥거루만 있으면 모든 게 해결되었으니 애써 뭔가를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엄마 캥거루는 장성한 아들을 배 속에 싣고 매일 싱싱한 풀과 시원한 물을 찾아다니느라 점점 지쳐 갔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엄마 아랫배 주머니 속에 앉아 나보다 더 팔자 좋은 아들이 있을까 생각하며 만족스러워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엄마 캥거루가 병이 나고 말았습니다. 창자가 빠지는 무서운 병에 걸린 것입니다. 엄마 캥거루는 서서히 죽어 갔습니다. 엄마 캥거루가 죽어 가는 동안에도 아들은 엄마 배 속 주머니에서 나올 줄을 몰랐습니다. 엄마 캥거루는 아들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다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들 캥거루는 슬피 울었습니다. 그런데도 죽은 엄마 배 속 주머니에서 나오지 않았죠. 엄마 배 속 밖의 세상을 알지 못했으니까요. 며칠 뒤 아들 캥거루 역시 굶어 죽고 말았습니다. 죽은 엄마 캥거루 아랫배 주머니 속에 웅크린 채 말입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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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캥거루족이 점점 늘고 있다고 합니다. 성인이 되어 자립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자신의 힘으로 살아갈 생각은 하지 않고 부모에게 기대어 사는 젊은이를 캥거루족이라고 합니다. 자의식이 부족해 자립할 생각이 없는 사람도 있겠지만, 주로 경제적인 측면에서 취직하거나 창업을 해서 힘들게 돈을 벌며 사는 것보다는 부모에 의존해 손쉽게 살아가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겁니다. 물론 학교를 졸업해도 취업이 힘들고 경제가 좋지 않아 마땅히 일할 곳을 찾기 어려운 점도 있겠지만, 이 모든 역경을 헤쳐 나가면서 독립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려는 정신과 의지가 약한 탓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몸은 이미 어른이고 공부도 할 만큼 했음에도 여전히 캥거루처럼 엄마 뱃속 주머니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죠. 

  캥거루는 태반이 발달하지 않아 갓 낳은 새끼 크기가 1~2센티미터에 불과할 정도로 미성숙한 상태에서 태어납니다. 따라서 새끼는 출생 직후 혼자 힘으로 어미 배에 있는 육아낭으로 기어들어가 생활해야 합니다. 육아낭 속에 있는 젖꼭지에 달라붙어 6개월부터 1년까지 성장한 뒤에야 비로소 독립하는 것이죠. 이처럼 캥거루의 가장 큰 특징은 어미 아랫배 앞에 있는 육아낭입니다. 이는 종족 보존을 위해 마련된 생명 유지 장치입니다. 다 자란 캥거루가 나가기 싫다고 해서 마냥 머물러도 되는 장소가 결코 아니라는 겁니다. 성장한 캥거루는 반드시 육아낭에서 나와야만 합니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고 생명 유지 장치의 목적입니다. 그런데 육아낭도 없는 인간 사회에서 이런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겁니다.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 사이에 태어난 MZ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더 독립적이고 자유분방한 생활을 선호합니다. 그런데도 이들 중 상당수는 캥거루족입니다. 2022년 봄 통계개발원에서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MZ세대 인구는 1,629만여 명으로 총인구의 32.5퍼센트를 차지했는데, 이중 부모와 함께 사는 이른바 캥거루족의 비율이 42.5퍼센트로 나타났습니다. 열 명 가운데 네 명이 캥거루족인 셈이죠. 20~30대인 MZ세대만 캥거루족이 있는 게 아닙니다. 40~50대 캥거루족도 상당하다고 합니다. 심지어 60대 이상의 캥거루족도 있습니다. 연애도 결혼도 하지 않은 채 평생 부모에게 기생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닌가 봅니다. 일본, 미국, 유럽 등 세계 각국 사정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은퇴한 노부모의 연금을 빨아먹고 산다고 해서 캥거루족을 빨대족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캥거루족 혹은 빨대족의 증가는 가계로 봐서는 부모 세대의 부담으로 이어지며, 사회로 봐서는 생산성이 저하되고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면서 역동성이 떨어지게 됩니다. 자녀 양육과 교육 등으로 노후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베이비붐 세대 부모들이 다 큰 자녀들의 생활비까지 부담하느라 빈곤층으로 내몰릴 수도 있습니다. 노년층의 빈곤율이 무려 45퍼센트에 이르는 현실은 이것이 단순한 기우가 아님을 여실히 보여 줍니다. 출산율 저하로 인구는 급격히 줄어드는 반면 의학의 발달로 평균 수명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이때 나이 든 부모들이 젊은 자식을 먹여 살려야 하는 세상이 된다는 건 큰 재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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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캥거루족처럼 어른으로서 마땅히 져야 할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는 심리를 심리학자들은 ‘피터팬 증후군(Peter Pan syndrome)’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육체적으로는 이미 성숙했으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정신 상태, 즉 뭔가를 책임지는 상황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 여전히 어린아이의 정신 상태에 머물러 있는 걸 가리킵니다. 1983년 미국의 임상 심리학자 댄 카일리 박사가 처음 사용한 용어입니다. 피터팬은 영국 작가 제임스 매슈 배리 경이 쓴 동화 속 인물입니다. 몸은 다 컸지만, 마음은 성숙하지 않아 순진하고 현실 도피적인 캐릭터죠. 책임감이 없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거는 기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합니다.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부담스럽기 짝이 없는 생각 따위는 아예 하지를 않습니다.

  피터팬 증후군의 대표적인 방어기제는 부정, 퇴행, 합리화 등입니다. 부정(Denial)은 유쾌하지도 보고 싶지도 않은 현실을 거부하거나 무시하는 겁니다. 공무원 시험이나 자격증 시험 준비를 한다고 학원에 들락거리지만, 친구들과 놀기 바쁩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제대로 공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퇴행(Regression)은 스트레스나 불안을 느낄 경우, 어린아이가 되는 겁니다. 뭘 해도 되는 일이 없을 때 아무 대책 없이 손을 놔버린다든가 방에 처박혀 나오지 않는다든가 엎드려 울기만 한다든가 하는 것이죠. 합리화(Rationalization)는 힘든 일이 생기면 자기만의 논리로 정당화하는 겁니다. 빈둥거린다는 소리가 듣기 싫어 여기저기 이력서를 내놓고는 곧 취직이 될 거니까 하찮은 시간제 아르바이트는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속으로는 합격하리라 기대하지 않으면서도 말입니다.

 

  우화 속으로 다시 들어가 보겠습니다. 엄마 캥거루의 심정이 이해는 됩니다. 믿었던 남편에게 배신당했다고 느꼈으니 자식밖에 없다고 생각했겠죠. 그래서 새끼 캥거루에게 깊은 애착을 갖고 온갖 정성을 다해 키웁니다. 시간이 되면 독립해서 따로 살아가도록 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안쓰러운 마음에 다 자란 아들을 육아낭 속에 넣어 애지중지 돌봤습니다. 시간이 가면서 결국 엄마 캥거루는 육아낭 속에 든 어른 캥거루를 돌보는 일이 버거워 병이 나서 죽고 말았습니다. 제힘으로 살아갈 능력을 잃어버린 피터팬 같은 아들 캥거루 역시 어울리지도 않는 육아낭 속에서 슬피 울다 굶어 죽었습니다. 이 모자의 비극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요? 독립심 없는 아들도 문제지만, 아들을 그렇게 키운 엄마 잘못이 더 큽니다.

  제 자식이 애틋하고 사랑스럽지 않은 부모가 어디에 있을까요? 하지만 그럴수록 아이를 자립할 수 있는 아이로 키워야 합니다. 아이에게 독립심을 길러줘야 합니다. 고기를 잡아다 먹이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직접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줘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린 자녀를 자동차로 매일 등하교시켜 주고 숙제를 대신해 주며 어떤 친구를 사귈지까지 결정해 주는 부모가 있습니다. 대학생이 된 자녀의 수강 신청과 군대 간 아들의 병영생활까지 관여하는 부모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부모는 자녀가 대학 졸업 후 어느 회사에 취업할지, 나중에 결혼 상대자는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도 간섭하고, 결혼한 자녀의 사생활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됩니다. 이런 과잉보호(Overprotection)는 결코 자녀를 잘되게 하는 일이 아닙니다.

  과잉보호는 건강한 사랑이 아닙니다. 자식을 정말 사랑한다면 안전한 둥지를 떠나 자기만의 세계를 향해 자유롭게 훨훨 날아가도록 둥지 밖으로 밀어내야 합니다. 아이가 떼를 쓰더라도 시기가 되면 육아낭 밖으로 나오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밖에 모르는 의존적인 사람으로 자라게 됩니다. 의존증이 심할 경우, 보호받고자 하는 욕구가 지나쳐 자신의 의존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매달리며, 다른 사람이 무리한 요구를 해도 순종적으로 이에 응하는 인격장애인 의존성 성격장애(Dependent Personality Disorder)나 애착 대상, 즉 부모와 분리되는 상황에 대해 과도하게 공포나 불안 등의 반응을 보이는 분리불안장애(Separation Anxiety Disorder)에 이르게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자식을 잘 키우는 부모가 되고 싶으시다면 캥거루 엄마와는 다르게 아이들을 키워야 합니다. 어렸을 때는 물론 세심하게 잘 보살펴야겠지만, 어느 정도 성장하면 육아낭에서 나와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죠. 아이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서 행동하고 자신의 결정에 책임질 수 있게 키워야 합니다. 넘어지면 바로 달려가서 일으켜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털고 일어나 다시 걸어갈 수 있도록 참고 기다려 주는 게 부모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부모님은 끝까지 나를 믿고 지켜봐 주며 격려하고 후원해 주는 존재라는 사실을 아이들이 인식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 좋은 부모 역할은 이것 하나로도 충분합니다.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최강록 원장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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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생님 경험까지 알려주셔서 더 와닿아요.!"
    "조언 자유를 느꼈어요. 실제로 적용해볼게요"
    "늘 따뜻하게 사람을 감싸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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