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장녀니까….” 나도 혹시 K장녀?

정신의학신문 | 이슬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실 영문학을 전공하고 싶었어요. 영어 공부가 재미있었고, 문학이 좋았으니까요.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 때였던가? 엄마가 저를 조용히 부르시더니, 말씀하셨죠. ‘간호학과에 가는 게 어떻겠느냐.’고요. 간호학과는 취직도 잘되고 월급도 꽤 많다면서 동생이 세 명이나 있는데 집에 보탬이 좀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선영 씨는 지나간 일을 떠올리다가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수십 년도 더 지난 과거의 일인데도 자신의 뜻대로 진로를 선택하지 못했던 일이 그녀의 가슴에 응어리로 남았습니다. 

이제 40대 중반인 선영 씨는 동생이 셋이나 있는 맏딸입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철이 채 들기도 전에 동생들을 돌보는 일을 떠맡아야 했고, 동생들에게 양보하는 일은 일상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와도 집에서 마음 편히 쉬기란 힘들었어요. 어린 동생들이 온 집안을 들쑤시면서 정신없이 구는 통에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보다는 늘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동생들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했지요.

입시를 앞두고는 마음이 더 무거워졌습니다. 자신이 관심 있고 좋아하는 분야는 영어영문학이었지만, 취직과 높은 급여가 보장된다는 이유로 그녀의 어머니는 간호학과에 갈 것을 종용했고, 선영 씨는 그런 어머니의 권유를 모른 척할 수 없었습니다. 동생이 여럿 달린 집안의 장녀였으니까요. 선영 씨는 결국 간호학과에 진학했지만, 대학 시절 내내 적응하기가 힘들었어요. 간호학과 공부는 적성에 맞지도 않을뿐더러 해부 실습을 하는 날에는 결국 구토를 하는 대참사가 일어났지요.

 

대학 졸업 후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게 됐지만 항상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걸친 듯 불편했지요. 힘들게 일해서 번 월급의 상당 부분을 떼어 꼬박꼬박 집으로 부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젊을 적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하게 되었는데, 그때도 모아 둔 돈에서 꽤 큰돈을 친정에 주고 왔어요. 어린 동생들 때문에 아직 돈 들어갈 일이 많은 친정이 눈에 밟혔기 때문이에요. 친정 부모님은 손사래를 치시면서 “괜찮다.”고 하면서도 다른 한 손으로는 그 돈을 꼭 쥐며 “고맙다.”고 말하셨지요.

그러나 결혼을 해서도 친정 일에 신경이 곤두서는 일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한창 아이들을 키우느라 육아에 지쳐 있을 때조차 친정어머니는 전화를 걸어 지금 당신이 얼마나 힘든지 하소연하곤 했어요. “너희 아빠는 어쩜 그리 나이가 먹어도 욱하는 성질이 변하지를 않는지….”로 시작해서 잘나가는 사촌 동생들과 비교하면서 은근슬쩍 해외여행 이야기를 꺼냈지요. 또 ‘대학병원을 예약해 달라.’, ‘동생들한테 신경 좀 써라.’라며 요구는 끝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선영 씨가 그런 친정과 관련해 소위 ‘현타’가 오게 된 사건이 있었어요. 바로 남동생의 결혼이었습니다. 친정 부모님은 없는 살림에도 재산의 거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소들을 몽땅 팔아서 남동생 부부의 신혼집을 마련해 줬던 거예요. 1970년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불과 10여 년 전 이야기지요. 선영 씨는 남동생과 자신을 대하는 그런 부모님의 이중적인 태도에 허탈감이 밀려왔습니다. 

 

단지 딸이라는 이유로, 맏이라는 이유로 자신은 그동안 집안의 기둥과도 같은 역할을 묵묵히 해 왔습니다. 늘 집안에, 부모님께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과 책임감에 짓눌려서 자신의 꿈마저 저버린 삶을 살아왔어요. 

선영 씨는 문득 젊은 시절의 어느 하루, 한순간이 떠올랐습니다. 병원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녹초가 되어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하는 길이었어요. 백화점 쇼윈도에 걸린 신상 원피스가 눈에 들어와서 가던 길을 멈추고 그 옷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습니다. 색상도 꼭 마음에 드는 노란색 원피스였지만, 선영 씨는 한참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 옷을 사고 싶었지만, 그 순간 고향에 있는 가족들이 떠올라서 선뜻 살 수가 없었던 거예요. 

이 이야기를 끝으로 선영 씨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여러분은 혹시 ‘K장녀’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나요? ‘K팝, K영화, K방역, K패션’처럼 K, 즉 Korea의 첫 글자인 K에 형제자매 중에서도 맏딸을 붙여서 일컫는 말인데요, 한국인만의 뛰어난 특성을 상징하는 다른 K가 붙는 말들과 달리, 이 ‘K장녀’라는 말은 좀 슬프게 다가옵니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선영 씨와 같은 K장녀들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어요. 맘카페나 SNS에 올라오는 수많은 고민 글에서도 등장하는 단골 소재입니다. 맏이라는 특성에 여성이라는 성 역할까지 덧칠해지면서 집안에서 부여받는 역할과 책임이 결코 만만치 않은 것이지요. 물론, 굳이 장녀가 아니어도 가정에서 과도한 책임감이나 역할을 부여받은 ‘착한 자녀’들도 해당된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러한 역할이 관례적으로 장녀들에게 지워졌던 것이 사실이에요. K장녀들에게는 몇 가지 특징적인 면이 있습니다.

 

“넌 장녀니까….” 나도 혹시 K장녀? 

 

  1. 가정 내 돌봄의 역할이 지워진다

어릴 때는 어머니를 도와 어린 동생들을 돌보고, 장성해서는 나이 든 부모님의 건강과 아픈 가족들, 도움이 필요한 가족들을 챙기고 돌보는 일들을 도맡게 된다.  

 

2. 정서적인, 때로는 경제적인 디딤돌이 된다

가족 구성원 간에 갈등이 생기거나 부모님 사이에 불화가 있을 경우, 갈등을 해결하는 중재자 역할을 맡거나 감정이 상한 부모님의 마음을 풀어 주는 역할까지 K장녀의 몫으로 남겨진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경제적 활동을 하게 된다면 가정에서 경제적 디딤돌의 역할까지 떠맡게 된다.

 

3. 희생과 양보를 스스로도 당연시한다

‘부모님은 늘 바쁘고 고단하니까….’, ‘동생들은 아직 어리니까….’, ‘내가 맏딸이니까….’, ‘집안 사정이 어려우니까….’ 이렇게 스스로도 자신의 역할에 무거운 책임을 지우면서 어느새 희생과 양보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4. 수많은 책임과 수고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보상이나 인정, 위로 따위는 없다

그렇다면, 이런 장녀에게 부모님 이하 가족들은 고마움과 인정, 작은 보상으로나마 갚아 줄 것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안타깝게도 “No!”다. 역할과 책임, 의무만 주어지고 그 어떤 대가도 주어지지 않는다면, 당신은 아마도 K장녀가 맞을 것이다.

 

이렇게 가족들 간에 하나하나 따지다 보니, 어쩐지 또다시 죄책감이 스멀스멀 고개를 듭니다. ‘남도 아닌 그래도 가족인데….’라는 ‘착한 마음’이 언제나 그렇듯 작동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K장녀가 이토록 억울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과거 가부장적인 시대에는 이러한 역할이 장남과 딸에게 골고루 지워졌습니다. 장남은 부모 봉양이라는 책임이 지워지는 대신 집안에서 대접을 받고, 경제적인 지원이 뒤따랐습니다. 그리고 부모 봉양의 많은 역할들은 며느리가 대신 짊어지기도 했습니다. 딸들은 결혼 전까지는 ‘살림 밑천’이라면서 역시 나름의 역할이 부과되었어요. 그러나 ‘출가외인’이 되면서 친정 일에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지요.

그러나 시대는 달라져서 이제는 딸들도 사회적인 위상이 높아지고, 경제적 능력도 갖추게 되면서 결혼을 해도 아들보다 더 살뜰히 친정 부모님을 챙기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느 순간 “딸 없는 엄마는 불쌍해.”라든가, “딸들이 비행기 태워 주는 시대야.”라는 말들이 어머니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게 되었어요. 

그런데 이상한 점은, 여전히 많은 어머니들이 아들에게만 보약을 챙겨 주고, 아들에게만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아들은 존재 자체만으로 든든하다고 이야기한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K장녀들은 가정에서, 부모님께 아낌없는 나무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했건만, 돌아오는 것은 다른 형제들과의 차별 대우뿐이라면 오히려 상처받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입니다. ‘그동안 무얼 위해 내가 이렇게까지 한 거지….’라며 허탈감이 들 수밖에 없겠지요.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개인심리학을 창시한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는 형제 관계와 가족 내 위치가 성격 형성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둔 심리학자였습니다. 아들러에 따르면, 첫째 아이는 태어날 때 다른 형제들보다 더 많은 관심 속에 자라난다고 합니다. 

그러나 동생이 태어나면서 갑자기 부모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고 느끼고 큰 혼란을 겪게 된다고 해요. 이후로는 툭하면 '동생에게 양보하라.'거나 '동생을 보살피라.'는 전에 없었던 압박까지 받게 됩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첫아이가 택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인데요, 하나는 부모의 뜻에 순응해 '착한 아이'로서 인정을 받아 부모의 사랑을 받으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퇴행', 즉 다시 아기 때로 돌아가 부모의 관심을 되돌리려는 시도입니다. 그리고 아동기를 거치면서 맏이들은 동생을 돌보는 데 관여하게 되고, 점차 책임감을 갖게 됩니다. 또한 부모의 기대에 부응해 인정받고 사랑을 획득하는 쪽으로 발달해 간다고 합니다.

사실 가족이기에 꼭 부모가 아니어도 가족 구성원들 간에 서로 돕고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을 해 나가는 게 맞아요. 아이들은 그렇게 발달과제를 완수하고 책임감을 키우면서 성장하는 것이니까요. 문제는, 아이로서 그리고 자녀로서 감당하기 힘든 과도한 책임과 역할, 심리적 부담감을 떠안게 되는 데 있습니다. 이처럼 무거운 짐은 한 개인을 ‘나답게’ 사는 것에서 점점 멀어지게 합니다. 자신의 욕망이나 행복을 추구하는 갈림길에 섰을 때조차 자꾸 주저하게 만들지요.

사실 더 큰 문제는 시간이 흘러서 자녀가 부모님께 이런 아픔을 고백하며 서운함을 토로했을 때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부모님의 태도입니다. 이런 경우 자녀는 부모로부터 두 번 상처받게 될 수도 있지요. ‘지금껏 길러 줬으면 맏딸로서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게 아니냐.’는 거지요. 혹은 ‘너는 원래 착했다.’면서 지금까지 해 왔던 임무를 앞으로도 성실히 해 나가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제는 K장녀도 지쳤어요. 무거운 장녀의 짐을 좀 내려놓고 싶어진 거죠. 어떻게 하면 이제 그만 K장녀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이제 그만 무거운 K장녀의 짐을 내려놓으세요!

 

  1. 이제는 나를 돌보고, 나의 마음과 바람에 귀 기울여 주세요

그동안 가족들을 돌보고 가족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면, 이제는 나 자신을 돌보고 나의 마음을 토닥여 주세요.

 

2. 힘들면 힘들다고, 서운하면 서운하다고, 하기 싫으면 하기 싫다고 이야기하세요

맏딸도 그 시절 어린아이였을 뿐입니다. 그때 많이 힘들었다고, 부모님께 서운하다고, 이제는 그런 과도한 부담감을 좀 내려놓고 싶다고 가족들에게 선포하세요. 

 

3. 나도 좀 기대고 싶다고, 도와달라고 말해 보세요 

가끔은 나도 가족들에게 기대고 싶다고, 힘들 때는 나에게 힘이 좀 되어 달라고 부탁해 보세요. 가정에 문제나 해결해야 할 일이 생겼다면, 가족들과 상의하고 각자의 역할을 분담해 보세요.

 

4. 이제 그만 죄책감에서 벗어나세요

그동안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그만큼 했으면 충분해요. 이제 좀 자유로워진다고 해서 죄송할 것도, 후회할 것도 없습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가족들이 당신을 힘들게 한다면, 당분간 가족들과 거리를 좀 두어도 됩니다. 이제 그만 K장녀의 짐을 내려놓고, 당신의 삶에 집중해도 괜찮아요. 당신은 부모가 아니니까요. 

 

당산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슬기 원장

이슬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당산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서울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전) 대전,서울지방병무청 병역판정의사
(전) 서울 중랑구 정신건강증진센터 상담의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