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심금숙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앞에서 내가 느끼는 박탈감의 크기는 타인에 대한 나의 우월감과 경쟁심, 그리고 그것에 대한 나의 욕망과 노력 정도에 비례한다고 말하였다. 그렇지만, 우리는 재능, 외모, 부모의 경제력 등 노력 없이 주어지는 것들에 대해서도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고 하였다. 필자가 이전에 제안한 공식대로라면 노력을 아예 한 것이 없으면, 아니 노력을 할 수 없는 부분에서는 박탈감을 거의 느끼지 않아야 하는데, 왜 우리는 박탈감을 느끼고 많은 사람들이 이로 인해서 힘들어하는 것일까?

외모와 부모의 경제력, 이 두가지를 한 번 생각해 보자. 나의 외모와 부모의 경제력은 타인과 다르고, 사회적으로 우열(優劣)이 존재한다. 뛰어난 외모에 대한 기준은 시대에 따라서 변천되어 왔지만, 외모에 대한 차별과 우열은 현실에서 늘 있어 왔다. 학교나 가정에서 ‘외모에 따라서 사람을 차별하면 안 된다’고 교육을 받았을지는 모르지만, 심리학적으로도 우리는 외모가 뛰어난 사람에게 더 친절하고 다정하며, 그들의 성과를 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래서 뛰어난 외모를 가진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직장 내 연봉도 높고 업무 평가도 더 잘 받는다. 즉, 외모가 뛰어나면 세상이 더 호의적이고, 사회적으로 성공할 확률이 더 높은 것이다. 부모의 경제력의 경우도 자본주의 이래 어디서나 늘 우열이 있어 왔는데, 경제력이 높은 부모를 둔 사람의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나은 교육을 받고 더 좋은 직업을 선택할 기회를 누려 왔다.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그런데 유달리 요즘 외모나 부모의 경제력에 대해서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뭘까? 그 이유는 두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첫째는 두 가지 요인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이 이전에 비해서 너무 커졌기 때문이다. 즉, 개인의 노력으로 이 두 가지 요인에서 우위에 있는 사람들을 뛰어넘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외모에 대한 가치 평가가 노골적인 요즘, 외모는 재능이고 ‘얼굴, 외모 천재’들은 각종 SNS와 매체를 통해서 활약하고 있으며, 실제로 상당한 경제적 수익을 거두고 있다. 모델이나 아나운서처럼 외모 자체가 진입 장벽이 되는 직업군도 있지만, 많은 직업군에서 준수한 외모를 이미 개인 홍보와 마케팅의 하나로 활용하고 있다. TV나 유튜브에 등장하는 의사, 변호사 등 다양한 전문직 종사자들을 떠올려 보면 외모가 전방위적으로 성공의 중요한 한 요인으로 자리잡았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집안 환경에서도 학업 능력이 우수한 경우 대학을 나와서 괜찮은 직장을 어렵지 않게 가질 수 있었다. 직업적 안정성도 커서 열심히 월급을 모으고 재테크도 어느 정도 하면 중산층으로 편입되어 노력에 대한 성취감과 보상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좋은 대학을 우수한 학점으로 졸업했다고 해서 중산층으로서의 안정된 삶이 보장되지 않는다. 시대는 이미 바뀌어서, 시험을 잘 보는 학업 능력만으로는 예전과 같은 사회적 보상이나 성공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오히려 부모의 든든한 경제적 지원하에서,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과외 활동을 경험하고, 사회적 네트워크를 구축한 친구들이 더 많은 직업 선택과 성공의 기회를 누리고 있다. 반면에, 이러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청년들은, 주어진 환경에서 아무리 힘들게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는 덫에 걸린 기분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외모나 부모의 경제력에 박탈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두 번째 이유는 현대사회의 개인주의, 자기중심적 세계관과 관련된다. 세상의 중심은 ‘나’이고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경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이고,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이는 심리적인 측면에서 그러한 면도 있지만, 과학적인 관점에서 우리는 각자 그냥 존재하며 세상의 중심도 아니고 일반적인 자연법칙, 특히 생물학적인 법칙에 지배를 받은 한 개체일 따름이다. 하지만 비교적 최근의 많은 자기계발서나 심리서는 내 마음의 변화로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 아니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는 메시지를 계속 던져 왔다.  ‘뭔가를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는 상당히 신비주의 종교 같은 말도 있었고, ‘생각대로 된다’, ‘마음먹은 대로 인생을 결정하라’와 같은 내면의 사고 그 자체와 의지를 강조하는 책들이 많았다. 하지만, 삶은 생각대로 될 수 없고,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특별하지 않다. ‘나’를 특별하게 생각하면 나는 열등할 수가 없다, 즉 열등감을 느껴서도 안 되고 인정해서도 안 된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라는 최근의 유행어는 자신의 열등함을 인정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러한 심리가 깔려 있다. 이러한 특별한 ‘나’에게, 현실의 비루한 외모와 볼품없는 부모의 경제력은 현실의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것으로, 결국 ‘마땅히 그래야 하는 상태’와 비교해서 박탈된 상태로 나에게 박탈감을 안겨 주는 것이다.

 

  • 연재 내용은 대부분 『내가 박탈감에 빠진 날: 박탈감에 빠진 누군가를 위한 책』 이라는 제목으로 2022년 교보문고 퍼플을 통해서 이미 자가출판 되었음을 밝혀 둡니다.

 

삼성마음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심금숙 원장

심금숙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삼성마음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박사
KAIST CLINIC 연구부교수, 초빙교수
저서 <내가 박탈감에 빠진 날 : 박탈감에 빠진 누군가를 위한 책>
  • 애독자 응원 한 마디
  • "제가 찾고 있던 내용이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유익한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실질적인 도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