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 독이 되는 관계가 우리의 인생을 지배하는 과정

3) 독이 되는 관계에는 반드시 공범이 있다 (3)

 

만일 여러분이 가족, 회사, 학교 등 어떤 집단 내에서 따돌림이나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고 있는데, 주변 사람들이 아래와 같은 방법으로 당신의 움직임이나 주장을 막는다면, 여러분은 그 사람을 독성관계의 협력자로 생각해도 좋습니다.

 

➀ 공동체적 가치에 대해서 강조하기

가족 구성원은 가족의 도구가 아닙니다. 오히려 가족이라는 시스템이 가족 구성원의 행복을 위한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한마디로 당신의 행복은 가족이 존재하는 목적 그 자체입니다. 하지만 협력자들은 반대로 이야기합니다. 

협력자들은 독성관계를 가족간의 정이나 도리, 문화로 포장합니다. 그리고 희생자가 지금 그대로 있는 것을 대의나 도덕적인 행위로, 이에 반하는 것은 패륜이나 부도덕으로 단정합니다. 그래서 독성관계에서 벗어나려는 행동을 가정이나 학교나 회사의 공동체적 가치를 훼손한 것처럼 여기고 마음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개인의 행복과 권리를 빼앗아가면서까지 지켜야할 공동의 가치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 집단에서 한명만 권리를 희생하는 관계는 예의를 가장한 학대입니다. 한 집단에서 한 명만 일방적으로 이득과 편안함을 보는 것은 전통을 가장한 갈취입니다. 이러한 전통과 문화를 허용하는 공동체가 있다면 이것은 그 집단, 즉 이 경우에는 가족이 존재가치를 잃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신은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고, 유능한 집단의 일원이 되는게 아니라 자신만의 가치를 달성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➁ 주도자와 희생자의 공동의 것을 인질로 삼기

부부간의 독성관계라면 부부사이의 자식들을 희생자를 협박하는 도구로 사용합니다. 양육의 문제나 아이들이 받게 될 상처를 들먹이며 희생자가 자녀의 미래를 망치는 주범인양 비난합니다. 때로는 자신의 자녀들에게 희생자의 행동을 보고하는 스파이로 만들어버리기도 합니다. 배우자가 스스로를 자신의 행복을 위해 자녀를 버린 무책임한 죄인처럼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죠.

주도자와 희생자가 공동으로 사업을 하거나 전체 재산 중 공동재산의 비율이 높을 때에는 이것을 볼모로 삼습니다. 가족간에 공동사업을 하거나 가족의 재산이 하데 섞여 있는 경우 발생합니다. 그리고 협력자들은 지금까지 해온 것이 아까움을, 모두의 사업이 희생자의 미래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강조하며 실리적으로 생각할 것을 조언합니다.

하지만, 만일 당신이 독성관계를 맺고 있을 경우 주도자는 결코 희생자에게 그 동안의 수고를 치하하며 이익을 새로 분배하거나 사업의 일부를 떼어주지 않습니다. 희생자의 헌신은 당연한 것이고 마땅히 누려야할 자신의 권리인데 당연한 것에 돈을 지불하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이들이 당신의 수고와 헌신을 오랫동안 몰라줬다면, 앞으로 알아줄 가능성도 희박합니다. 이들이 설명하는 자신의 의도보다는 이들의 말과 행동의 결과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들이 당신을 더 이상 어린애 취급하고, 기만하며 당신의 인생을 자신들을 위해 소모하도록 놔두어선 안 됩니다. 성인이 된 사람의 결정을 대신 내려주는 것은 결코 사랑이 아닙니다.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➂ 넌더리 나게 하기(ad nauseam)

이것은 정신의학적 용어보다는 선전 선동의 기법 중 하나입니다. ‘넌더리나게 하기’란 기술은 지루하고, 싫증남, 피곤할 정도로 한 가지 발상이나 견해를 끈질기게 반복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독성관계에서 협력자들은 희생자가 독성관계에서 벗어날 때마다 끊임없이 희생자들의 입을 막고 같은 의견을 반복합니다. ‘정 없이 그래서는 안 된다.’,‘며느리가 그래서는 안 된다.’ 이유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넌더리 나게 하기의 수법을 쓰는 사람들의 목적 자체가 희생자의 발언을 제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희생자가 자신의 입장에 대해서 말을 하면 어쩔 수 없이 이에 대해서 토론을 해야 되고 의견을 조종합니다. 하지만 이미 독성관계라는 시스템의 일부가 된 협력자들은 희생자와 대화할 마음이 없습니다. 그저 그 자리에 머무르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이건 그들에게 있어서 편안하고, 그동안 먹히는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회사에서 또는 학교에서 내가 겪고 있는 부당함을 이야기하는데, 중재자를 가장한 제삼의 인물이 나의 의견을 ‘알았어. 네 말 잘 알았어. 근데...’라는 식으로 막아버리고 한 번만 말을 해도 알아들을 자신의 의견을 끊임없이 주입한다면, 이 사람이 실질적으로 원하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당신의 입을 막는 것.

그리고 당신이 여기에 질려 의견을 내는 것을 포기하는 기색이 보이면 이들은 만족하고 물러납니다. 그리고 이들은 말합니다.

“이제 됐지? 이제 이 얘긴 끝난 거다?”

희생자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는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➃ 잘못된 방향으로 보편화하기

‘모든 가족은 다 그래. 다들 어느 정도 갈등이 있고 다투면서 해결하는 거지.’

‘야 우리 때 아버지한테 안 맞은 자식이 어디있어? 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거지?’

‘욕하는 것도 남편이 부인한테 애정이 있으니까 하는 거예요. 애정 표현을 저렇게밖에 못하는 게 유감스럽긴 하지만.’

이들은 독이 되는 관계에서 주도자가 희생자에게 주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와 폭력을 정상적인 관계에서도 주고받는 갈등이나 상처로 치부합니다. 

하지만, 협력자들의 주장에는 한 가지 중요한 것이 빠져 있습니다. 어째서 상처받는 것이 여러분이 되어야 하는가? 독성관계는 늙고, 병드는 것처럼 인간이면 누구나 겪는 보편적인 괴로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폭언을 안 한다고 해서 숨이 끊어지는 것도 아니고,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고 해서 병에 걸리는 사람도 없습니다. 게다가 주변 사람은 아무도 그렇게 당하지 않는데 어째서 당신만 당하고 괴로워 해야 하나요? 그렇지 않을 백만 가지 방법이 있었는데 어째서 당신에게 이유 없는 괴롭힘을 가하는지? 이것이 당신이 부당함을 느끼고, 분노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희생자들이 원하는 것은 단지 그 괴로움과 폭력을 끝내는 것입니다. 

 

협력자들의 일견 대인배같고 달관해 보이는 보편화는 그 어떠한 답도 제시해주지 않는습니다. 버티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것이니 오직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라고 설득할 뿐이지요. 이것은 당신을 구해주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그물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마취제와 같은 것입니다. 마취가 풀리면 당신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이렇게 주도자뿐만 아니라 협력자들마저도 희생자가 당하는 폭력과 부당한 대우를 교묘한 방법으로 옹호하게 됩니다. 또한 주도자와 협력자들의 수는 다수가 되고 희생자는 항상 소수로 몰리기 때문에 독성관계는 이제 ‘군중심리’의 특성을 띄게 됩니다. 이제 희생자는 자신마저도 ‘모든 사람이 이렇게 말을 하니 사실은 내가 당하는 이러한 대우가 옳은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군중심리’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프랑스의 사회학자 ‘구스타프 르 봉’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군중은 마치 잠든 사람처럼 이성의 활동이 잠시 멈추어 있기 때문에 조금만 성찰하면 무산될 허무한 심상들이 세차게 난무하도록 허용한다.’

 

모두가 말하는 것은 반드시 옳은 것일까요? 만일 모든 사람이 나에게 어떠한 권리의 박탈을 원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내줘야 할까요? 

아닐 겁니다. 아무리 모든 사람이 나에게 원하더라도 내가 들어줄 수 없는 것이 있고,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옳은 것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어쩌면 당신의 의견 표현을 참도록 하고, 당신을 그 자리에 머무르도록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타인의 상처에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고 자신이 그다음 희생자가 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주도자에게 강하게 영향받은 ‘독성관계의 협력자’ 일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권 순 재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당신의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분당서울대병원 전임의
(전) 메디플렉스 세종병원 정신건강의학과장 치매전문센터장
저서 <약한 게 아니라 아팠던 것이다>, <이제 독성관계는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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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글입니다. 가슴을 뛰게 하네요. "
    "말씀처럼 가까운 데서 행복을 찾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
    "늘 감사하게 잘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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