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두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하기 쉽습니다. 전쟁의 참혹함을 경험한 사람들은 먼 나라의 다른 인종의 사람들을 보면서도 자신이 겪었던 일들이 떠올라 안쓰러워 돕고 싶어집니다. 아이가 있는 사람들은 육아의 어려움에 대해, 결혼을 앞둔 사람들은 낯설고 복잡한 과정에 대해 공통된 경험이 있습니다. 나이가 달라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면 통하는 것이 생깁니다. 젊은 사장님과 노련한 경영자는 “재정 관리와 인재 관리 중에 뭐가 더 어려운 것 같나요?”라는 질문에 대해 서로 다른 답을 말하더라도 서로 공감하고 나눌 정보도 많을 것입니다.

같은 세대는 자연스럽게 경험을 공유하게 됩니다. 시대의 특정 사건을 함께 겪기도 했고 취직, 결혼, 출산, 은퇴 등 생애주기에 따른 고민거리가 비슷하니까요. 성별, 인종, 국적, 출신 지역, 직업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공통점이 많을수록 서로를 이해하기 쉽습니다. 의사소통이 편해집니다. 의사들끼리 학술발표가 아님에도 의학용어로 이야기하는 것은 잘난 척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더 편하고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공통점이 줄어들수록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는 데 에너지가 많이 소모됩니다. 같은 나라 말인데도 외국어처럼 들립니다.

 

자신이 경험했던 일이라도 시간이 오래되면 잊히기도 합니다. 자신도 어릴 때 얌전히 기다리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아이들에게 당연한 것마냥 가만히도 못 있느냐며 타박을 합니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은 원래 쉽지가 않습니다.

사실 같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도 서로를 이해하려면 에너지가 많이 듭니다. 심리학 실험에서 피험자에게 난폭운전에 대해 상상해 보게 합니다. 운전자를 자신이라고 상상하게 하면 응급실에 가는 등 피치 못할 상황 때문에 과속하는 것을 떠올립니다. 반대로 타인을 떠올리게 하면 성질 급한 운전자를 떠올립니다. 자신을 생각할 때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쉽게 떠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로남불’이 쉽게 발생하는 것이겠죠.

타인의 행동을 평가하는 동일한 실험을 하는데, 머리를 조금만 바쁘게 만들면 상황을 고려하기 어려워집니다. 쉬운 산수 문제를 푸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됩니다. 타인의 행동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상황을 고려하는 것이 원래 이렇게 어려운 일인데 내가 겪어 보지 않은 일이라면 더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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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에 사는 사람이 한때 도둑이나 매춘부였다면 일단 꺼려지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레미제라블을 볼 때 장발장과 팡틴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치 내가 직접 겪은 것처럼 그들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잠깐 지나치는 사람에 대해서까지 그 사람만의 상황을 고려하기는 어렵지만 자주 대하는 관계에 대해서는 조금씩이라도 이해해 보려 힘을 써 보는 것이 나에게도 득이 될 수 있습니다. 

피곤하고 힘들 때는 어려운 일은 피하고 싶습니다. 아마 그래서 지칠 때는 친한 친구나 가족과 익숙한 집에 있는 것이 비싸고 낯선 여행지보다 나을지도 모릅니다. 에너지가 바닥이 났는데 낯선 사람을 판단하고 대응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익숙한 것만 편하다고 가족한테만 말을 하고 집 밖에 나가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편하다고 어려운 의학용어로만 설명할 수 있는 의사는 환자를 낫게 하는 데 애를 먹게 됩니다. 불편하다고 피하면 내가 누릴 수 있는 성장과 즐거움의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힘든 것을 피하려다 내 인생이 더 위험해집니다.

 

조카나 자녀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썼던 노력이 젊은 직원과의 관계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젊은 고객들의 수요를 파악할 때도 도움이 됩니다. 아내나 남편의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했던 경험이 다른 상황에서 쓰일 수 있습니다. 나이, 성별과 같은 커다란 구분을 넘어 한 사람의 독특함을 이해하는 것은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같은 연령, 같은 성별인데도 사람들은 각자 타고난 성향과 살아온 경험을 통해 매우 다른 생각을 하니까요.

다양한 사람들을 열린 마음으로 만나 보는 것이 가장 좋은 훈련이 될 것입니다. 심리학책을 볼 수도 있지만 소설이나 영화에서 인물의 묘사를 보며 다양한 각도에서 타인을 느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유전자와 성장 경험이 동일한데 상황에 따라 주인공이 어떻게 다르게 행동하는지 관찰하는 것은 재미도 있거니와 나와 남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마치 먼 나라에서 전혀 다른 경험을 가진 이방인을 만나서 신기해하는 마음으로 내 가까이에 나이, 성별, 성장 경험이 다른 사람들을 대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나라의 간단한 역사와 언어를 여행안내서에서 참고하면 더 즐겁게 여행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정두영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본 칼럼은 한국거래소 소식지 KRX ON에 ‘유익한 공동체를 위해 필요한 것들 - 세대, 성별 갈등을 넘어’라는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정두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저서 <마음은 단단하게 인생은 유연하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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