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어릴 적에, 어른들은 모르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른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고,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이죠. 그러나 막상 어른이 되어 보니 현실은 달랐습니다. 어른들 세상은 아주 복잡하고, 골치 아픈 일투성이였어요. 어른이 된 후로 감정은 점점 더 메말라 가고, 행복은 저 멀리에 있는 것만 같습니다. 세상이나 사람에 대한 완고한 나름의 틀이 생긴 것인지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도, 새 친구를 사귀는 일도 어렵게만 느껴집니다. 별일 아닌 일에도 소심해지고, 사소한 걱정거리에 혼자 심각해져서 그 생각에만 골몰하기도 해요. 

이러한 사색에 잠겨 있을 때 거실에서 로봇과 우주선을 가지고 번갈아 놀던 아이가 공룡 흉내를 내며 한 발짝씩 제게 다가옵니다. 아이는 심각한 얼굴을 한 저를 향해 싱긋 웃어 보이곤 다시 하던 놀이에 집중합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저는 아이들에게는 사람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는 초능력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혹을 때때로 품습니다. 그만큼 아이들의 순수한 동심은 곁에 있는 사람까지 행복한 기운에 젖어들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혹시 아이들이 이토록 자주 웃고, 즐거울 수 있는 비결이라도 있는 걸까요? 아이들의 특성과 숨겨진 비결을 배운다면, 어른들도 행복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을까요?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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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행복 한 스푼을 더하는 아이들의 10가지 특성 

 

1. 잘 웃고, 잘 울어요

아이들은 잘 웃고, 잘 울고 감정 표현에 꾸밈이 없습니다. 웃음은 잘 알려진 대로 고통을 완화시키는 엔도르핀과 행복을 느끼게 하는 세로토닌을 유발하는데요, 뇌과학자들은 현재 자신이 행복하던 그렇지 않던 간에 웃으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이야기합니다.

 

2. 금세 친구가 돼요

아이들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도 금세 친구가 됩니다. 친구가 되어 함께 놀이하면서 다양한 상호작용을 경험하게 되지요. 반면, 많은 어른들이 낯선 사람을 만나면 일단 서로를 경계하면서 상대를 관찰합니다. 자신과 결이 잘 맞는 사람인지 주도면밀하게 살피며 마음의 문을 잘 열지 않지요. 이렇게 상대를 경계하고 재단하다 보면 새 친구를 사귀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어요. 인간은 상호작용을 하는 동안 행복과 긴장 완화를 느끼게 하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과 도파민이 분비됩니다. 즉, 우리 몸은 사회적인 상호작용을 할 때 행복감을 느끼도록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지요. 

 

3. 친구와 다툰 후에도 조건 없이 용서해 줘요

아이들은 싸워도 금방 화해하고,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조건 없이 용서해 줍니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용서하는 태도가 심혈관 건강에 긍정적으로 기여한다고 밝혀졌습니다. 즉, 용서가 우리의 정신 건강과 신체 건강을 치유해 주는 것인데요, 어른들은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누군가와 감정적으로 다툰 후에 상대방을 진심으로 용서하기까지 복잡한 심정이 들면서 꽤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또 ‘당신이 잘못했네.’, ‘뭐를 잘못했네.’ 하면서 시시비비를 따지기 바쁘지요. 그에 비해 아이들은 조건 없이 친구를 용서해 주고 미워하는 마음을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지 않아요. 서로 화해한 후에는 금세 다시 잘 지내곤 합니다. 이쯤 되면 아이들에게서 너그러운 마음과 흔쾌히 용서하는 태도를 배울 법하겠지요.

 

4. 안전지대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것에 도전해요

아이들은 호기심이 많아서 스스로 안전지대를 벗어나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경험을 통해 성장합니다. 어른들도 예상치 못한 도전을 즐기고,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경험을 통해 한층 성취감과 함께 행복감을 느낄 수 있어요.

 

5. 직관적으로 행동해요

아이들은 직접 경험하며 배우는 것(발견학습)을 즐깁니다. 한 연구에서 두 집단의 사람들에게 포스터를 하나씩 골라 집에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한 집단에는 포스터의 장단점을 분석해서 결정하도록 하고, 다른 집단에는 자신의 감에 맡겨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2주 후, 자신의 직감에 따라 포스터를 선택한 사람들이 포스터를 분석한 뒤 결정한 집단의 사람들보다 더 만족스러워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신중을 기해 저울질한 선택도 장기적인 행복에는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오히려 모든 선택 사항을 한도 끝도 없이 저울질하며 받는 스트레스만 커질 수 있어요.

 

6. 놀이할 때 깊게 몰입해요

몰입(flow)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완전히 집중한 마음 상태를 말합니다. 아이들은 놀이를 할 때 행위 그 자체에 집중하고, 거기서 즐거움을 얻는데요, 행동의 목적이나 성취를 고민하기보다 오롯이 놀이 행위 자체를 즐기는 것이지요. 그런데 처리하거나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은 어른들이 한 가지 일에만 몰입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럴 때는 자주 몰입할 수 있는 방법과 전략을 찾아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하거나 타이머를 정해 놓거나, 작업 환경을 바꾸는 식으로 몰입도를 높이는 거지요. 몰입을 하는 직장인이 일에 대한 만족도가 훨씬 높다는 연구 결과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의 삶에 몰입하는 순간을 점차 늘려 가는 것이 행복감을 증진할 수 있는 좋은 방법 중 하나입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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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감사 표현도 잊지 않아요

아이들은 조그만 일에도 감사할 줄 알고, 감사 표현도 잘합니다. 많은 연구 결과에서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는데요, 감사를 많이 하는 사람들은 좀 더 긍정적이 되고, 행복감도 더 많이 느낄 수 있다고 하네요. 평상시에 감사하는 습관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면, 훈련을 통해 기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감사하는 마음을 마음속에만 담아 두지 않고, 말로나 편지로 곧잘 표현도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상대방에게 표현함으로써 좋은 경험, 특별한 순간들을 인생이라는 앨범에 차곡차곡 쌓을 수 있어요.   

 

8. 감정이 풍부하고, 공감 능력이 뛰어나요

인간의 감정에는 옳고, 그른 것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이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듯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데 거리낌이 없어요.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감정을 분출하고, 때로는 그 감정을 에너지 삼아 창조적인 활동을 하기도 합니다. 또 공감 능력이 뛰어나서 곁에서 좋아하는 친구가 웃으면 함께 웃고, 사랑하는 엄마가 울면 같이 눈물을 흘립니다. 반면, 많은 어른들이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방어기제로 인해 자신의 감정을 숨기거나 억압합니다. 

그러나 감정을 꾹꾹 누르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자신도 모르게 폭발할지도 몰라요. 상황에 적절하게 감정 표현을 하는 연습을 해 보세요.

 

9. 사소한 것에도 즐거워하고, 감동을 받아요

기본적으로 아이들은 리액션이 크고 좋습니다. 감정적인 동요가 별로 없는 성인들과는 다소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어느새 어른다움이 장착된 어른들은 반복되는 일상에서 즐거운 일이나 감동받을 만한 순간을 마주하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반면, 아이들은 아주 소소한 일에도 까르르 웃으며 즐거워하고, 별것 아닌 일에도 크게 감동받곤 합니다. 성인들도 일상의 긍정적인 경험들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열린 마음으로 대한다면 더 많은 즐거움을 느끼고 감동받도록 우리의 마음과 정신이 단련될 수 있어요.

 

10. 내일을 기대하며 잠자리에 들어요

아이들은 항상 잠자리에 들 때 내일은 무슨 장난감을 가지고 무엇을 하며 놀지 기대하며 기분 좋게 꿈나라로 향합니다. 다가올 내일에 대한 두려움이나 걱정보다는 설렘과 기대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지요. 이렇듯 매일매일이 즐겁고 기대되는 아이들의 세상을 들여다보니 어쩐지 기분이 좋아집니다.

 

아이들은 무심코 걸어가다 넘어져도 별로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잠깐 울음을 터트리고 금세 일어나서 또다시 즐겁게 뛰어 놀지요. 

넘어졌을 때 부끄러워하는 것은 어른들입니다. 혹시 누가 보지는 않았는지 주변을 살피면서 재빨리 일어나서 그 자리를 벗어나기 바쁩니다. 그런데 좀 넘어지면 뭐 어떤가요, 부끄러워할 것이 뭐 있을까요. 세상을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넘어집니다. 잠깐 중심을 잃고 주저앉은 것뿐이에요. 옷에 묻은 흙먼지를 훌훌 털어 내고 다시 가던 길을 가면 그만입니다.

 

사실 어른들의 사고는 꽤 복잡하고 고차원적입니다. 그러나 추상적이거나 연역적 사고 체계가 아직 수립되지 않은 형식적 조작기 이전의 아동들은 어른들에 비해 좀 더 직관적이고 단순한 사고 과정을 거칩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어쩌면 생각보다 마음의 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유야 어찌 됐든, 너무 많은 생각과 걱정에 휩싸여 마음에 성난 파도가 일렁이는 일이 잦다면, 생각은 잠시 멈추고 아이들처럼 우리의 직관에 따라 보는 것도 괜찮습니다. 마음이 힘들다고 아우성치는데, 생각의 무게만 더한다고 해서 행복을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그럴 때는 마음의 소리에 응답해서 성난 마음의 파도를 달래 줄 때 파도는 다시 잔잔해지고 마음의 평화와 행복이 찾아올 것입니다.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전형진 원장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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