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독이 되는 관계가 우리의 인생을 지배하는 과정

3) 독이 되는 관계에는 반드시 공범이 있다(2)

정신의학신문|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어째서 협력자들은 점차 주도자의 희생자에 대한 부당한 대우와 폭력을 방조하는 걸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관계의 고통은 신체적인 면보다 정신적인 면이 더 큽니다. 물론 물리적인 폭력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독이 되는 관계의 희생자가 고통받는 부분은 자신의 인생을 타인이 주도하고 있다는 느낌,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 없다는 고립감 등 정신적인 고통이 훨씬 더 큽니다. 그리고 타인의 정신적 고통에 대한 인간의 감수성은 신체적 고통에 대한 감수성보다 훨씬 더 미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점차 주변 사람들은 희생자의 고통에 공감을 하지 못하고 희생자를 아무 문제 없는데도 혼자 유난 떠는 사람, 즉 ‘예민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한가지의 이유가 더 있습니다. 어떤 협력자들은 자신이 다음 희생자가 될까봐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중고등학교의 집단 따돌림의 현장에서 많이 나타나는 일입니다. 집단 따돌림을 당한 희생자를 도와주면 도와준 사람도 주도자에 의해 따돌림을 당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원칙보다는 공포가 훨씬 더 강한 감정이기에 이들은 협력자가 당하는 일에 눈을 감고 묵인합니다. 그리고 타인의 고통에 눈을 감는 일은 생각보다 쉬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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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제 독성관계의 주도자와 협력자들은 완벽한 공범이 되어 독성관계를 주도합니다. 주도자의 입장에 편승하고, 주도자와 같은 심리상태를 만듭니다. 결국 독성관계는 한 가족 집단 안에서 희생자를 압박하는 어떤 정치체제와 같은 특성을 가지게 됩니다. 주도자를 필두로 협력자들이 완성하는 한 명을 희생해서 모두가 행복하고 평화로운 정치체제를 만들게 되는 거죠. 가족의 명예를 지킨다는 명목 하에 가족 내에서 일어나는 일을 외부로 발설하지 못하게 압박하고, 희생자를 그럴만한 대우를 받아 마땅한 사람으로 몰아갑니다. 그리고 희생자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이 체제를 유지하려고 하죠.

그리고 이 가운데에서 희생자는 조직을 위한 부품. 인간 이하의 인간으로 소모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사연자 분의 사례에서 이런 말이 나오죠.

“제 일인데 아무도 제 의견을 물어보지 않아요.”

왜냐하면 그 집에서 사연자분은 실질적으로 인간의 권리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결혼할 때부터 남편의 식구들은 원래 결혼을 안시키려고 했는데 ‘봐줘서’ 결혼을 하는 것이다. 라는 마음의 빚을 지웠죠. 그리고 이후에는 주말마다 찾아오고 자신들을 모시라고 압박을 하면서도 아무런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고맙다라는 말은 내가 상대방에게 어떤 은혜를 베풀었을 때 하는 말이기 때문에 그 마음의 빚마저 가지기 싫다는 거였죠. 빚은 언젠가 갚아야 한다는 마음의 압박감을 주기 때문이죠.

문제는 이 체제 안에서 희생하고 있는 사람이 사연자 한 명이라는 점입니다. 인간은 어떠한 방식이 자신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지 않거나 오히려 정신적 고통을 회피할 수 있게 된다면 보통 옳고 그름을 떠나 그 방식을 옹호하게 돼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 시아주버니, 동서 세 명은 이제 암묵적으로 결탁한 것입니다. 이 체제를 유지하기로. 그럼으로써 자신의 갈등을 해결하고, 심지어는 빚을 진 의식조차 갖지 않으려고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 최소한 사연자의 앞에서는 위 세 사람은 함께 주도자가 됩니다. 사연자분이 누구와 함께 살지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사연자분 개인의 의견인데, 의견을 내지 않도록 압박하고, 조종하고. 혹시 반대할까봐 미리 ‘반대한다면 너는 정이 없고 비인간적인 사람이야’라는 식으로 결정권을 막아버리는 거죠.

그리고 이제 희생자는 심각한 정신의 오염을 겪게 됩니다. 자신의 권리인 것이 당연한 일에도 자신감을 갖지 못하게 되고, 어쩔 수 없이 드는 분노의 감정이 정당한지 의심하게 됩니다. 사연자분은 이 완성된 독성관계 안에서 아무 의견도 낼 수도, 인간으로서의 권리도 인정받지 못하고 그렇게 살아가야할 운명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종종 독성관계에 대해서 다루고 중재하다보면 협력자들의 반대와 저항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의 피해자들을 가해자로부터 격리시키려고 할 때 반 친구들이나 선생님들까지 심리적으로 주도자의 편에 서서 한 목소리로 피해자도 ‘그럴만해서 그랬다.’ 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희생자를 자살에 이르게 할만큼 고통에 몰아넣은 회사 내에서의 독성관계에 대해서도 주변 사람들은 문제가 매스컴에 공표되어 만천하에 드러나기 전까지 오히려 희생자를 폄하하고 주도자를 감싸거나 최소한 모른 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미 이들은 독성관계라는 시스템의 구성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성관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독성관계 내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집단 밖으로 나가서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하지만 협력자들은 이것마저 방해합니다.

독이 되는 관계에는 반드시 공범이 있다(3)에서 계속

당신의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권 순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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