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언젠가 만원 지하철에서 한 노인과 젊은 여성이 실랑이 벌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노인이 여성에게 자리를 양보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여성은 자신이 임산부이기 때문에 서서 가기에 힘들 것 같다고 답했다. 노인은 여성이 괘씸했는지, 배도 안 나왔는데 비켜 주기 싫어서 거짓말하는 것 아니냐며 한마디했다. 실제로 여성의 배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임산부의 배처럼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여성의 가방에는 임산부임을 증명하는 임산부 배지가 달려 있었다. 초기 임산부였던 것이다. 결국 상황을 지켜보던 다른 사람이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며 사건은 마무리되었지만, 여성은 사람들 눈치가 보였는지 곧 지하철에서 내렸다. 

지하철에 임산부 전용 자리가 생겼을 때 논란이 일던 것을 기억하는가? 이미 노약자석이 있는데 굳이 임산부 자리를 따로 마련해야 하는지, 꼭 그렇게 임산부 전용 자리라고 표시해야 하는지 등등. 하지만 노약자석은 대부분 노인이 이용한다. 위의 경우처럼 겉에서 보기에 표나지 않는 초기 임산부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다들 피곤한 얼굴로 앉아 있는 지하철에서, 자신은 임산부니 자리를 양보해 달라고 말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임산부석은 임산부가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앉을 수 있도록 비워 놓아야 하는 자리다.

 

우리나라는 인구 ‘데드 크로스’에 접어들었다. ‘데드 크로스(dead cross)’는 본래 주식시장에서 쓰이는 용어인데, 인구 데드 크로스는 사망자가 출생자보다 많아서 인구가 자연 감소하는 현상이다.

통계청 자료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17년,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14.2%를 기록해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5년 후에는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 이상을 넘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 예정이다.

반면, 우리나라 여성 1명 (15~49세)이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는 지난해 0.84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 30개국 가운데 가장 낮은 수치로, 0명대를 기록한 것도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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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나라는 늘어 가는 장년층에 비해, 아이 출생률이 그토록 저조한 것일까?

통계 전문 업체 kstate는 2021년 07월, 20~30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했다. 20대 여성의 81%, 30대 여성의 66%가 ‘현재 상황을 생각하면 아기를 가질 수 없다’고 대답하였다. 업체 측 분석에 따르면 ‘출산과 육아에 대한 책임과 부담을 여성 개인에게 온전히 안기고 있는 것’이 저출산의 주요 요인으로 꼽혔다. 이는 위 임산부 일화와 임산부 전용 자리가 생겼을 때의 논란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임산부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부족한 상황은 곧, 출산과 육아에 대한 배려 부족과 몰이해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종종 길거리나 음식점에서 부른 배를 안고 다니는 임산부를 본다. 배가 부를수록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은 힘에 부쳐 보인다. 동시에 저렇게 부른 배를 안고 어떻게 넘어지지 않을 수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임산부의 걸음은 위태로워 보일 때가 있지만, 한 번도 임산부가 부른 배 때문에 앞쪽으로 쏠려 넘어지는 건 본 적이 없다.

그 이유는 우리 몸에 ‘COM: the trunk’s centre of mass 즉, 몸통의 중심점이 있기 때문이다. California Northstate University 생물 인류학 교수 Whitcome Kay는 인간의 조상인 hominin의 COM이 진화를 거치며 척추 쪽으로 이동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한 임신할 경우 앞으로 쏠려 넘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요추 뼈가 6개에서 5개로 줄어들도록 진화했다. 요추 뼈가 6개일 경우보다 5개일 때 경직도가 줄고, 척추뼈의 굴곡이 더 생겨서 무거운 배를 버티며 직립보행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화 과정은 임신상황에서 더 나은 움직임을 위한 인간의 발달을 보는 듯하다. 더 나은 쪽을 향하는 것은 인간만이 가지는 능력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임신하면 실제로 많은 신체 변화가 생긴다. 심장 박출량이 30~50%까지 증가하고, 혈액량 또한 임신 중 거의 50%까지 증가한다. 호르몬 변화로 인한 피부 색소 침착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골반의 관절과 인대가 느슨해지고 유연해지며, 근육에도 변화가 온다. 아이를 만나기 위해 한 인간의 몸도 이렇게 다사다난한 준비와 변화를 겪는다. 사회의 무게중심 또한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출산휴가, 육아휴직 등의 제도가 있지만 실제로 평등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의문이 든다. 출산 후 복직했더니 자신의 자리가 구석에 덩그러니 있을 뿐, 업무에서 소외되었다거나, 한직으로 빌려났다는 기사가 수두룩하다.

지구는 인구 과포화다. 우리나라의 출산율 하락은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문제적이지 않다. 하지만 출산율이 저조하다는 것은 아이를 낳아 기르기에 안 좋은 세상이라는 것을 방증한다. 아이를 잘 키우기 어려운 세상은 사람이 살기 힘든 세상이라는 뜻이다. 떨어지는 출산율이 걱정된다면, 이름만 그럴듯한 제도나 정책뿐 아니라 실질적인 실천과 인식 개선이 우선되어야 한다.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 등의 북유럽은 맞벌이 가정이 75%에 이른다. 어린이집(유치원) 비용이 가정 월수입의 2% 초과 시 국가에서 지불해주며, 1년의 양육 유급 휴가는 부모가 나누어 쓸 수도 있다. 이러한 사회보장제도는 법으로 보장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부모가 이용하는 공익서비스이기도 하다. 임신 및 출산, 육아에 대한 배려와 이해의 결과는 어찌 되었을까?

북유럽의 1980년대 초반, 1.6명 대로 떨어졌던 출산율은 지금까지 꾸준한 상승을 보인다. 북유럽의 경우 출산 장려 정책을 쓴 적이 없다. 여성이 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는 사회 구조를 갖추면 저출산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예상이 맞아떨어진 덕이다.

한국 사회의 무게중심을 어디로 옮겨야 할지, 어디에 시선을 집중하고 개선에 중심을 두어야 할지, 어떠한 진화가 인간을 인간답게 걸을 수 있도록 만들었는지 곱씹어 생각해 보아도 좋겠다.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전형진 원장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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