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4개월 전 이별을 하고 지금도 헤어진 연인을 잊지 못해 혼자 속앓이하다 우연히 마음우체국이라는 칼럼을 보고 제 힘든 마음도 툭 털어놓고자 용기내어 글을 적어 봅니다.

유독 이번 이별은 저에게 있어서 정말 힘들고 괴로운 시기를 보내는 것 같아요. 그 사람이 풍선처럼 머릿속에 둥둥 떠다녀서 어쩔 땐 머리가 다 아프고 힘겨워요. 때로는 너무 답답해서 울어도 보고 글로도 써 보고 하는데, 괜찮아질 만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것마냥 그러니 답답합니다.

잘 지내다가도 갑자기 부정적인 상상을 하기 시작하면 두렵고 불안하고 그래요. 그 사람이 저에게 다정하게 대해 줬던 행동들, 모습들이 다른 사람을 만나서 똑같이 해줄 수도 있다는 생각과 일어나지도 않은 상상이 저를 정말 많이 힘들게 해요.

그리고 그 사람이 새로운 애인이 생기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상상도 하니 제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요. 더 심해지면 정신과에 가서 심리상담을 받아 볼까 합니다.그 전에 제가 이러는 이유 좀 알려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정말 벗어나고 싶어요. 도와주세요.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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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4개월 전에 연인과 이별하신 후 여전히 힘든 일상을 보내고 있으시네요. 이전에 맺었던 관계와는 무엇이 달랐기에 이렇게 아픔이 오래가는 걸까요? 사연자님께서 어떤 것들을 상대방과 공유했던 것인지, 원치 않는 이별이었던 것인지, 주고받은 감정선이 얼마나 깊었던 것인지 궁금합니다. 글에는 나와 있지 않아서 두 분이 맺었던 관계의 수준을 모르겠습니다.

따라서 사연자님이 왜 지금까지도 이별로 힘든지 그 이유를 사연글에서 찾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추측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만큼 사연자님에겐 중요했고 의미 있었던 관계이니 상실의 여파가 클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사연자님이 겪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수용하면 좋을지에 초점을 두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별은 친밀한 관계를 상실하는 경험입니다. 상실 경험은 애도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람마다 애도의 타이밍과 지속 기간, 방식이 모두 다릅니다. 누군가가 실제로 죽음으로써 영원히 잃어버리는 것만이 상실이 아니라, 관계의 종결도 상실이고, 개인이 어떤 지위나 역할을 잃어버릴 때도 상실에 따른 충격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지금 사연자님이 4개월 동안 겪은 과정에 대해서 먼저 ‘비정상적인 것’으로 규정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사연자님의 시간과 심리적 에너지를 많이 투입했던 관계일수록 관계가 깨졌을 때, 이를 수습하고 소화하는 시간은 오래 걸릴 수 있습니다. 4개월이라는 시간이 애도에 적정한 수준인지는 감히 타인이 판단할 수 없습니다. 두 분의 관계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연자님께서 부정적인 상상을 하는 시간보다도, 지난 관계를 제대로 ‘정리’하는 데 좀 더 집중해 보셨으면 합니다.

이를테면 두 사람이 왜 이끌렸고, 서로에게 무엇을 기대했고, 어떤 것들을 채울 수 있었지만, 한계는 무엇이었는지, 최선을 다했는지, 후회되는 일들은 무엇인지, 다른 관계에서 반복될 문제인지 등을 ‘명료화’하는 겁니다. 부정적인 정서에 머무르고 깊이 느끼는 것도 애도의 중요한 영역이지만, 객관적으로 두 분의 관계를 성찰하는 것 또한 중요한 애도 과정입니다. 상실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이성적으로 납득하는 것도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별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충격적인 일로 해석할수록, 현실을 부정하게 됩니다. 두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해 객관적으로 성찰할 때,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게 됩니다. 이별이 아주 자연스러운 결과였음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습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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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사연자님은 상대방이 새로운 다른 연인을 만나는 상상을 하면서 괴로움이 더욱 커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상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통제감’입니다. 이미 부서진 관계를 어떻게든 상상을 통해서라도 이어 나가려는 안간힘이자 노력인 것입니다. 이는 관계가 끝났다는 현실을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다시 돌이킬 수 없고, 완전히 타인이 되어 개입할 수 없는 관계임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상으로 그 사람을 붙잡고 있습니다. 충분히 그러실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누구도 24시간 내내 애도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는 없습니다. 사연자님에게는 지켜야 하는 일상생활이 있습니다. 일상생활이 일시적으로 무너질 수는 있지만, 이로 인해 직업, 학업, 다른 대인관계 영역에서 문제가 생기는 정도가 장기간 지속된다면, 다른 조치가 필요합니다.

즉, 이별 사건에 지나치게 몰입하지 않도록 ‘환기’하는 시간을 가지셔야 합니다. 애도하는 요일과 시간을 정하세요. 불쑥 떠올라서 하염없이 생각하는 패턴에 변화를 주어야 합니다. 문득 떠오른다면 ‘지금은 그 감정에 머물지 말고, 할 일 마치고 이따 밤 9시에 그 사람에게 편지 쓰기를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자.’ 이런 식으로 이별 관련 사고와 거리두는 연습을 시작하십시오. 그리고 현재 사연자님 삶에서 중요한 목표들을 다시 정리해 노트에 적어 보세요. 하고 싶었던 일, 해야 하는 일들을 목록화해서 이루기 쉬운 것들을 하면서 일상을 ‘활동’으로 채워 나가 보세요. 

 

지금은 생각의 양이 너무 많아진 상태입니다. 씻고, 만나고, 일하거나 사람을 만나는 일상생활을 아예 못할 정도로 부정적인 생각에 압도되어 있다면, 정신과에 방문하셔서 빨리 도움을 받는 것이 좋아요.

만일 그런 정도가 아니라면 부정적인 생각의 고리를 끊을 수 있게, 애도 작업하는 시간을 별도로 정해 두고, 일상에서 ‘활동’을 많이 늘려야 합니다. 산책하기, 쓰레기 버리기, 목욕하기, 물건 정리하기 등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일들을 많이 하세요. 부정적인 생각은 과거나 미래에 대한 내용밖에 없습니다. 대개 후회나 불안이라는 감정이 파생됩니다. 그래서 생각을 너무 많이 하게 되면 지금의 현실을 놓치게 됩니다. 신체활동은 ‘감각’을 활용하기 때문에 지금-여기의 ‘현실 감각’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이별에 대한 생각이 차차 줄어들도록 허용하는 것도 애도입니다. 그 사람 생각으로 일상을 가득 채우지 않고, 다른 일들로 빈자리를 채워 나가는 것이니까요. 물리적으로 이별했더라도 심리적인 이별은 뒤늦게 찾아오는 과정이죠. 이제는 심리적인 이별, 애도의 과정을 향해 가셔야 할 겁니다. 다시 만날 가능성이 없다면요.

 

상실 경험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그리고 ‘상실에 어떤 의미를 어떻게 부여해야 할까’라는 과제도 모두에게 주어집니다. 과제를 안 하거나 대충 처리하면 어떻게 될까요? 피할 수 없는 삶의 경험인 ‘상실’을 늘 고통스러운 것으로 각인하고, 상실이 올 것을 미리 두려워하고 도망치게 됩니다. 헤어짐이 두려워 관계에 뛰어들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상실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은 그래서 필요한 겁니다. 상실을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으로 수용하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사연자님께서 겪은 상실은 타인의 어떠한 말로도 위안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드리고 싶은 말씀은, 상실이 결코 모든 걸 무너뜨리고 영원히 잃어버리는 체험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상은 잃더라도 사연자님께 어떤 ‘의미’가 반드시 남습니다. 건물이 무너지면 폐허가 되지만, 그게 끝이 아니죠. 잔해에서 무언가를 찾을 수 있고, 폐허로 인해 새로운 풍경들이 펼쳐집니다. 게다가 미래에 어떤 건물이 세워질 ‘가능성’이 다시 새로 생기는 겁니다. 

사연자님께서 겪는 아픔은 비정상적이거나 부적절하지 않고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그걸 꼭 기억하시고, 상실이 남긴 의미들을 찾으면서 천천히 일상을 회복하시길 응원하겠습니다.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호선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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