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인수 정신의학과 전문의

 

은혜 씨는 요즘 직장에서 ‘은따(은근한 따돌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잡다한 업무를 은혜 씨에게 몰아 주고, 잠시 자리를 비우면 팀원들끼리 점심을 먹으러 가기 일쑤입니다. 팀의 리더 격인 제일 선배가 은혜 씨 커피만 사 오지 않은 적도 있었습니다. 얼굴이 붉어져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으니 돌아온 선배의 말은 “은혜 씨 있는 줄 몰랐네?”였지요. 더욱 속상한 점은 이 모든 게 퇴사를 통보한 뒤 시작됐다는 것입니다. 이직 계획을 밝힌 날, 선배의 “배신자”라는 날카로운 말은 여전히 은혜 씨의 가슴에 박혀 있습니다. 은혜 씨는 그저 마지막 출근일을 손꼽아 기다릴 뿐입니다.

 

은혜 씨의 사례는 이직을 준비하는 직장인들이 종종 겪는 일입니다. 퇴사 소식이 알려지자 갑자기 변한 동료의 태도들, 혹은 퇴사를 결심한 이유는 듣지 않고 막무가내로 붙잡는 상사. 이미 직장 내 괴롭힘을 겪고 있었다면 퇴사일까지 기다리는 것이 매우 고통스러울 겁니다. 은근한 괴롭힘이기에 부당함을 지적하며 당장 뛰쳐나오는 것도 마음처럼 쉽지 않겠지요. 

이처럼 퇴사자 관리, 혹은 퇴사 문화는 많은 회사가 놓치는 부분입니다. 떠나려는 사람의 마지막을 좋은 추억으로 장식해주는 대신, 다신 돌아오고 싶지 않은 기억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미약하게나마 남아 있던 미련까지 접게 됐다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입사 후 1년 이내 퇴사율이 50%(2019년 사람인 설문조사)에 육박하는 요즘, 성숙한 퇴사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 또한 조직관리의 중요한 영역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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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넷플릭스’의 독특한 퇴직 문화가 화제였던 적이 있습니다. 넷플릭스를 떠나는 직원들은 반드시 ‘부검 메일(Postmortem e-mail)’을 써야 합니다. 떠나는 이유, 회사에서 배운 것, 회사에 아쉬운 점, 앞으로의 계획을 상세히 기술해야 하죠. 특히 회사에 아쉬운 점은 ‘회사가 이랬다면 떠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가정을 중점으로 작성해야 합니다. 이 모든 내용의 초안을 퇴사하는 직원이 일차적으로 만들면, 상사와 인사 담당자가 논의해 최종본을 완성합니다. 여기에 직원을 떠나보내는 넷플릭스 측의 메시지가 더해져 퇴사자가 속한, 혹은 속했던 팀의 구성원에게 전송됩니다.

이 메일은 떠나는 자가 아닌, 남아 있는 자를 위한 것입니다. 비록 한 명의 구성원을 떠나보내지만 발전의 계기로 삼으려는 건설적인 태도인 것이지요. 아울러 퇴사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은 사측의 편지를 보냄으로써 아름다운 이별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다른 구성원들에게 좋은 조직, 신뢰할 만한 조직이라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줄 뿐만 아니라 퇴사자의 마음을 돌리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부검 메일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퇴사를 번복한 사례가 있었으며, 끝내 떠나더라도 좋은 관계로 남게 된다고 합니다. 혹은 퇴사자를 통해 팀 내의 부조리함이 드러나 문제를 조기에 해결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이런 존중의 자세는 조직 전체의 발전에도 좋은 영향을 미칩니다. 크리스틴 포래스(Christine Porath) 조지타운대 경영학과 교수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와 협업해 전 세계의 직장인 약 2만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요, 그 결과 조직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상사의 태도는 바로 존중이었습니다. 상사가 자신을 존중한다고 생각하는 직원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89% 정도 높은 조직 만족도를 보였으며, 업무에 대한 집중력도 92%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직원들은 단순히 자신의 성과로 인정받는 것을 넘어,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받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존중의 뜻은 ‘높이어 귀중하게 대함’입니다. 회사의 귀중한 재산인 직원 그 자체를 가치 있게 여기고, 그들의 역량을 신뢰하며, 개개인의 특성을 수용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존중의 태도로 상호 신뢰가 구축될 때 진정한 ‘원팀’이 되어 공동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떠나는 자에게까지 예의를 다하는 회사의 태도는 조직의 발전과 결속력 강화의 계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를 갖습니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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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존중하며 떠나보내는 법을 잘 모르겠다면 경영자 코치로 활동하는 레베카 주커(Rebecca Zucker)의 조언을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1. 잠시 시간을 갖고 반응하세요

직원의 갑작스러운 퇴사 통보에 적절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차라리 놀란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며 잠시 시간을 가져 보세요.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은 반응의 속도가 아닌, 퇴사자와 다른 구성원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남길 만한 말실수로 후회하지 않는 것입니다.

 

2.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분별하려 노력하세요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갖는 동안 지금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구분해야 합니다.  『감정의 민첩성(Emotional Agility)』의 저자인 수잔 데이비드(Susan David)는 감정을 명명화하는 게 감정을 다루는 방법의 첫 단계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속상한 감정을 “배신자”라고 비난하거나 비꼬는 식으로 잘못 드러내는 것은 현명한 태도가 아닙니다.

 

3. 퇴사는 직원 개인의 결정임을 기억하세요

직원의 퇴사 통보에 상처받거나 배신감을 느끼는 이유는 이를 자신의 잘못처럼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직원은 당신이 나쁜 상사라서가 아닌, 더 좋은 연봉과 업무 기회, 그 밖의 다양한 이유로 새 출발을 결심한 것입니다.

 

4. 떠나는 이유를 경청하고 지지해 주세요

직원이 퇴사를 결정한 이유와 앞으로의 계획을 귀 기울여 듣고, 밝은 미래를 응원해 주세요. 직원의 퇴사 이유는 조직에 중요한 피드백이 될 수 있으며, 퇴사자는 그 자체로 기업의 홍보대사가 될 뿐만 아니라 추후 우호적인 관계를 통해 파트너십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직원에게 퇴사는 그 회사에서 겪게 되는 마지막 경험입니다. 또한 남은 구성원들은 그 마지막 모습을 바탕으로 자신이 미래에 경험하게 될지도 모를 일들을 유추하게 되지요. 과연 어떤 회사, 어떤 상사로 남고 싶으신가요. 적어도 한 번쯤은 회상하고픈 추억, 그래도 고마웠던 존재로 기억되는 건 어떨까요?

 

당신의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김인수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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