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심금숙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요즘처럼 박탈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적이 없는 것 같다. 박탈감(剝奪感)은 사전적 정의로 재물이나 권리, 자격 따위가 빼앗겼다는 느낌이나 기분을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호소하는 박탈감은 실제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뭔가를 빼앗긴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은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나타나는 박탈감, 즉 상대적 박탈감으로 자신은 실제로 잃은 것은 없지만 다른 대상이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거나 가지게 되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자신이 무엇을 잃은 듯한 기분을 느끼는 것이다. 최근 가상화폐 시장에서 큰 돈을 번 사람이나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수십억의 재산이 증가한 사람을 보며 느끼는 상실감은 바로 상대적 박탈감이다. 내가 2년간 열심히 직장생활을 해서 받은 월급을 적금 부어서 수천만 원의 재산이 그동안 늘었다 해도, 가상화폐에 수백만 원 투자한 사람이 같은 기간에 훨씬 많은 수익을 올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는 박탈감을 느낀다.  

상대적 박탈감과 대비되는 감정은 상대적 만족감으로 역시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자신이 뭔가 더 가진 듯한 느낌과 기분이라고 할 수 있다. 만족감은 지금보다 무언가 더 바라는 것이 없는 상태로 심리적 행복감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긍정적 감정이다. 그렇지만 상대적 만족감은 타인과 비교를 통한 일시적 감정인 경우가 많아서, 비교 대상이 바뀌는 순간 상대적 박탈감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무주택자인 직장 동료를 보며 그나마 수년 전에 사둔 아파트 한 채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싶지만, 강남 아파트 가격 상승 기사나 강남 아파트 소유자인 친구를 만나게 되면 또 박탈감에 시달리게 된다. 타인과 비교하는 경향이 강한 사람일수록 이와 같은 상대적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탈 수밖에 없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상대적 만족감과 박탈감을 오갈 수 있다. 하지만, 남과 비교를 많이 하는 사람들의 경우 내적 공허감과 인정 욕구가 크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상대적 박탈감에 빠져서 지내는 경우가 많다.

최근 국민적인 박탈감을 불러일으킨 여러 사건들을 생각해 보자. 청와대 1급 비서관으로 20대 청년의 발탁, 모 국회의원 자녀가 회사 퇴직금으로 수십억을 받은 사실, 예능 프로그램에서 공개된 일부 연예인들의 넓고 호화로운 고가 주택, 아동 전문 유튜버가 유튜브 수익으로 빌딩을 샀다는 기사, 그리고 IT 개발자들의 파격적인 연봉 인상 뉴스 등이다. 불법적인 방법으로 누군가 특혜를 누리고 부를 축적한 것에 대해서 함께 분노하고 ‘국민적인 박탈감을 불러일으켰다’고 말하면서 처벌이나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누군가 노력으로 이룬 결실이나 대가에 대해서도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며 씁쓸한 박탈감을 느낀다. 그 대상이 나와 가깝게 지내왔거나 나보다 더 잘난 게 없다고, 즉 만만하다고 생각했을수록 느껴지는 박탈감은 강렬하고 고통은 쓰라리다.

그렇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진정한 상대적 박탈감은 나와 상관없는 누군가 성공하거나 아름다운 부인을 얻는 것을 보고 느끼는 감정이 아니다. 우리는 영국 왕실의 화려한 결혼식과 왕실 생활을 보고 부러워하지, 박탈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것은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의 일인 것이다. 하지만, 어릴 적 평범했던 친구가 재벌가에 시집이라도 가게 된다면 우리는 부러운 감정 외에도 그 친구의 결혼 생활과 내 것을 비교할 수밖에 없게 된다. 만약,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 내 삶에 큰 욕망이었고, 여러가지 노력에도 내가 꿈꾸는 결혼이 좌절되었다면 박탈감은 보다 강렬해지고, 억울한 마음과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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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박탈감을 느끼는 상황은 크게 두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다. 누군가 별다른 노력도 없이 큰 대가나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될 때, 그리고 누군가 타고난 생애 조건이 나보다 좋아서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느껴질 때다. 부동산 가격 폭등 또는 IT 계열 종사자의 높은 연봉에서 느껴지는 박탈감이 전자의 경우에 해당하고, 타고난 재능이나 외모, 그리고 부모의 경제력 등 노력 없이 그냥 주어진 것들에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호소하는 경우가 후자에 속한다. 대개의 경우 두,가지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우리를 더 박탈감에 시달리게 만드는데, 외모가 뛰어난 친구가 스펙 좋은 남성과 결혼을 한다거나 부유한 집안 출신의 지인이 구매한 강남 아파트 가격이 최근 폭등하는 것 같은 경우들이다. 

박탈감이라는 감정에 빠진 사람은 ‘내가 뭘 잘못했는데?’, ‘도대체 왜 이래야 하는데?’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는 선의의 피해자가 되어서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억울하고 화가 나며 이러한 부당한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괴롭다. 자신에게 박탈감을 안겨 준 친구나 타인은 흡사 달리기 경주에서 부정 출발한 선수, 아니면 시험 전 족보를 의도적으로 나에게 감춘 친구와 같이 이기적인 가해자가 된다. 피해자인 나는 이들과 세상에 대한 분노로, 소위 기득권층이나 가진 자들에 대한 이유 없는 비난과 공격을 멈추지 않는 프로 악플러가 되기도 하고, ‘OOO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라는 명목하에 집단적인 편집증(paranoia)을 보이기도 한다. 수년 전에 한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이 매일 커피를 사 들고 학원에 오는 다른 공시생에게 남긴 메모가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공시생 메모] 매일 커피 사 들고 오시는 건 사치 아닐까요? 같은 공시 수험생끼리 상대적으로 박탈감이 느껴져서요. 자제 좀 부탁드려요.”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 공시생의 ‘상대적 박탈감’과 타인에 대한 요구가 황당하다고 느껴질 것이다. 공시생의 쪼그라든 마음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내가 박탈감을 느낀다고 해서 내가 피해자인 것은 아니며, 타인이 가해자인 것도 아니다. 만일 요즘 박탈감에 빠져서 예전과 달리 마음에 가시가 돋고 있다면, 홍상수의 영화 『생활의 발견 』에 나오는 대사 ‘OO야. 우리 사람 되기는 힘들어. 그렇다고 우리 괴물은 되지 말자’를 스스로에게 되뇌어 볼 일이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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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탈감 사례 1-A> 

‘내가 바보였던 건가?’

‘언제까지 이 짓을 하고 살아야 하나.’

고교 동창생 M을 오랜만에 다시 만난 후부터 이런 생각이 더 자주 강하게 들고 있다.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생각이 이전에도 가끔 들곤 했지만, 그래도 나름 괜찮은 연봉의 기업을 다닌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하루에도 여러 번 들고 있다.

M은 고등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로 예쁘장한 외모와 붙임성 있는 성격으로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관심을 받았었지만, 성적은 하위권에 공부머리는 좋지 않던 아이였다. 집이 같은 방향이라 버스를 같이 타며 친해졌지만 늘 전교권의 성적을 유지했던 나와 달리 공부하는 것에 비해서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 M을 나는 늘 얕잡아보는 마음이 있었다.  학창 시절 나의 똑똑함과 지적 능력이 세상에 빛을 발하면 뭐라도 될 줄 알았는데……. 

서울의 대학에 진학하고 이렇게 잊고 지냈던 친구 M을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은 인터넷에 소개된 나의 사진과 프로필을 보고 M이 연락을 해 왔기 때문이다. 거의 20년 만에 전화기 너머로 친구의 목소리를 들으니 놀랍고 반가운 마음에 냉큼 주말에 약속을 잡았던 것인데, 지금 생각해 보면 차라리 ‘주말에 M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하는 마음이다.

주말 카페에서 만난 M은 30대 후반의 나이에도 여전히 화사한 미소와 우아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20대 후반 대학원에서 논문 압박에 시달릴 때, M이 결혼을 했다는 얘기를 부모님을 통해서 얼핏 듣기도 한 것 같지만, 남편이 미국의 명문대학 출신에 IT스타트업 임원이고 현재 강남에 살고 있다는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내 마음 한 켠은 서늘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공부도 신통하지 않았고, 제대로 된 대학도 못 간 애가 괜찮은 남자를 참 쉽게 만나는구나.’ 하는 생각에 최근 수년 동안 수십 번의 맞선 상황에서 느낀 씁쓸함과 부당함이 다시 느껴졌다.

지난주에 결혼정보회사 가입 상담을 받으러 갔다는 말은 친구에게 차마 하지 못했고, 구속 없이 자유롭게 사는 것이 나에게 맞는 것 같다는 진짜일까 싶은 말을 하고 이유도 알 수 없이 크게 웃어 재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자식은 뜻대로 되지 않았겠지. 엄마 닮아서 공부를 못했을 거야’ 하는 내심의 기대가 있었는데, 외동딸이 이번에 예고 다니다가 한예종에 조기 입학했다고 굳이 묻지도 않았는데 대학 이름까지 밝히는 친구를 보니, 더 이상 표정 관리가 쉽지 않게 되었다. ‘오늘 커피를 너무 많이 마신 탓일까. 왜 이렇게 어지러운거지?’

친구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내가 대학원 다니며 논문 쓰고 지도교수 뒤치다꺼리하며 지낸 수년의 시간들은 헛짓거리를 한 것인가?’ 하는 생각부터 별다른 노력도 없이 잘 사는 친구를 보니, 내가 이삼십 대 아둥바둥 살아온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었나’ 싶고, 동시에 ‘30대 초중반에 학교 연구실을 나와서 회사에 취업하지 말고 좀 더 버텼다면 교수가 될 수도 있었을까’ 하는 후회와 아쉬움으로 며칠을 힘들게 보내고 있다. 내가 한 고생을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 이 세상이 원망스러운 만큼, 오늘 마감해야 하는 기획서는 더 하기가 싫고 ‘이게 뭔 소용인가’ 싶다.
 

☞ 생각해 볼 점들

1. 친구 M만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박탈감에 빠지지 않고 괜찮게 지낼 수 있었을까?

2. 내가 느끼는 박탈감은 나의 문제인가, 친구 M이 의도한 것인가, 아니면 세상의 문제인가?

3. 나는 친구 M과 앞으로 어떻게 지내는 것이 좋을까?

4. 이 박탈감으로부터 편안해지기 위해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 연재 내용은 대부분 『내가 박탈감에 빠진 날: 박탈감에 빠진 누군가를 위한 책』 이라는 제목으로 2022년 교보문고 퍼플을 통해서 이미 자가출판 되었음을 밝혀 둡니다.

 

삼성마음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심금숙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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