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 독이 되는 관계가 우리의 인생을 지배하는 과정

2) 어떤 사람이 독성관계에서 희생되는가? (2)

 

➁ 상대방의 감정과 나의 감정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

공감, 상대방의 감정이나 상대방의 경험을 나의 것처럼 경험하는 능력이죠. 그리고 현대사회에 와서는 어떤 인성의 척도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저 사람은 공감 능력이 너무 없어. 나르시시스트야.”

“나는 너무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을 많이 해요. 제가 요즘 말하는 소시오패스의 반대말인 엠패스인가 봐요.”

이런 식으로 말이지요.

 

사실 아직까지 공감 능력을 객관화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공감을 너무 많이 해서 고통을 받는 사람이 실제로 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누구나 우리의 내적 세계에서 스스로를 타인에 대해서 너무 관대하고, 너무 공감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정신의학적으로 진단 가능한 진짜 자기애성 성격장애 환자들마저 말이지요.

사실 ‘내가 너무 남에게 많이 공감한다’라고 느끼며 괴로워하는 사람들은 사실은 자아의 경계, 즉 감정의 어디까지가 나의 감정이고, 어디서부터가 타인의 감정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힘든 사람들입니다.

예를 들면, 누군가에게 ‘너 오늘 기분이 안 좋아 보이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해 봅시다. 어떤 사람들은 ‘어? 오늘 기분 좋은데, 왜 그렇게 생각하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어? 나 오늘 기분이 안 좋나? 내 기분이 안 좋아서 표정에 드러났는데 내가 내 감정을 눈치를 못 챈 건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다른 사람이 발하는 신호를 어디까지 ‘나에 대한 진실’로 받아들이는 가에 대한 일종의 경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그런데, 이 경계가 너무 타인 쪽으로 치우처져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보통 자기주장이 약하고, 타인에게 휘둘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감정적인 문제에 부딪혔을 때 상대방이 “너는 너무 공감 능력이 없는 것 같아.”라고 말하면 이런 사람들은 이제까지 내가 가지고 있는 감정이나 생각이 옳건 그르건 간에 “나 너무 공감 능력이 없나? 어떡하지?”라며 걱정하기 시작합니다. 

사실은 이건 나에 대한 객관적인 진실이 아니라 타인의 의견인데 말이죠. 그리고 실제로는 공감 능력이 굉장히 떨어지는 사람일수록, 타인이 나에게 공감을 못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왜냐하면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일수록 ‘자신의 감정만이’ 공감을 받아 마땅하다고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독성 관계의 주도자들이 희생자들을 가장 많이 평가절하하는 부분이 아이러니하게도 이 공감 능력입니다.

넌 공감 능력을 좀 길러야 해. (그러니 니 감정이 어떻든 간에 일단 생각을 멈추고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내 감정을 받아들여.)”

이렇게 나의 감정과 타인의 감정의 사이에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사람들이 주도자들의 조종에 넘어가기 쉽습니다. 주도자들은 대부분 나에게 부당한 일을 하거나 내 경계를 침범해 놓고 나를 평가절하하는데 가장 많이 평가절하는 부분이 바로 태도, 인성 등 나의 본질적이고 주관적인 부분들입니다. 왜냐하면,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어야 상대방이 반론할 수가 없거든요. 그리고 나와 타인의 감정 사이에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분들은 너무나 쉽게 상대방의 평가절하에 넘어갑니다. 그리고 주도자들은 집요하게 그 틈을 파고듭니다.

“야, 어제 때린 건 미안해. 하지만 너 그런 태도 보이다가는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는 더 심하게 맞았을 거야.”

“어제 봉급 안 줘서 미안해요. 하지만 회사 전체를 위한다고 생각하고 이번에만 좀 참아 주세요. 우리 같이 살아야 되잖아요? 그렇게 공감 능력이 없어서야 되겠어요?”

“제가 대리님 뒷담화를 했다고요? 제가 한 게 맞긴 한데, 저한테 그런 말을 하게 만든 대리님 인성에도 문제가 있다는 생각 안 드세요?”

 

구분해야 합니다. 나의 감정과 상대방의 감정을요. 상대방이 나에 대해서 나의 예상과 다른 충격적인 말을 했을 때, 너무 떨 필요 없어요. 상대방의 말이 틀렸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상대방이 나의 인성, 태도, 공감 능력에 대해서 비판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것을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성숙한 사람일수록 상대방의 주관적이고 본질적인 부분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합니다. 만일 그 사람이 나에게 한 말이 정말로 나를 생각했다면 그런 매너로 나의 자존을 뭉개 가면서 말할 리 없습니다. 당신을 진정으로 생각해서 당신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은 반드시 당신의 본질이 아닌 행위를 지적합니다. 

누군가 나의 성격, 행동, 가족, 출신, 인종 등 나의 본질적인 부분에 대해 그것도 거친 언어와 행동로 지적한다면, 아무리 그 사람이 자신의 의도가 그게 아님을 포장한들 그것은 모욕 그 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지속적으로 나의 인성이나 태도를 문제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독성 관계의 주도자일 가능성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당신의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권 순 재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당신의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분당서울대병원 전임의
(전) 메디플렉스 세종병원 정신건강의학과장 치매전문센터장
저서 <약한 게 아니라 아팠던 것이다>, <이제 독성관계는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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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글입니다. 가슴을 뛰게 하네요. "
    "말씀처럼 가까운 데서 행복을 찾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
    "늘 감사하게 잘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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