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14일. 

첫 ‘서울숲’. 

일전에 페스티벌 때문에 서울숲에 온 기억이 있다. 서울숲이 꽤 큰 모양인지 그 시끄러운 북새통에도 근처 주민들은 그러려니,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하거나 숲을 찾아 데이트를 하는 연인이 보였다. 

이번에 찾은 서울숲은 정말 ‘산책’을 하기 위해 찾은 곳이라 처음이라는 감정이 들었다. 처음으로 제대로 서울숲을 찾은 기분. 그래, 서울 한복판에 포부도 당당하게 ‘서울’울 붙인 숲이 어떤지 구경이나 해보자는 심산이었다. 

처음 걷게 된 곳은 잣나무 아래 오솔길이었다. 잣나무가 떨어뜨린 잎과 솔방울이 잔뜩 쌓여, 바닥이 폭신폭신했다. 믿기 어렵겠지만, 꽤나 폭신거렸다. 잣나무의 잎과 솔방울이 썩는데 2-3년이 걸린다 하니, 주르륵 심겨진 잣나무의 모든 잎과 솔방울 2-3년치를 한꺼번에 밟는 셈이다. 꽤나 몸이 가벼워지는 산책의 시작이었다. 폭신거리는 잣나무. 이 형용구는 몸으로 그 신기함을 체감한 이상, 당분간 잊지 못할 것 같다. 

 

잣나무길, 솔방울이 잔뜩 있지만 부드럽게 밟힌다.
잣나무길, 솔방울이 잔뜩 있지만 부드럽게 밟힌다.

작은 지병이 있어 류마티스 병동을 다닌다. 걸어서 들어가 의자에 앉고 걸어서 문을 닫는 나 같은 환자는 정말 가벼운 환자라고 볼 수 있다. 류마티스 병동은 당연히 1층에 있고, 그들이 모든 검사를 1층에서 볼 수 있도록 배치해 두었다. 숱한 대학병원의 외래가 그러하듯, 기다림이 참 길다. 그렇다 보니 내 한참 앞 환자부터 한참 뒤 환자까지 같이 기다리는 일이 잦다. 그들은 모두 어딘가 절고, 휘고, 몸살하고 있다. 

관절이 아픈 사람은 우울증이 함께 올 확률이 높다. 내 몸을 지긋지긋한 통증 때문에 내 마음껏 거동하지 못하니 점점 거동의 범위가 줄어들고, 자아감이 떨어지고, 우울증이 찾아오는 것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 짧고 작은 성취감을 선물하는 것이다. 류마티스 병동 한 켠에 잣나무를 빼곡히 심어 두고, 산책길 삼아 두면 어떨까. <잣나무 산책로> 쉬폰 케이크를 밟는 듯한 폭신한 바닥을 선물하는 것이다. 병원이 꼭 그래야 할 의무는 없지만, 그럴 수 있는 능력은 있다. 

 

갤러리 정원
갤러리 정원

반쯤 지하로 내려가게 된다. 지금도 물이 있다면…, 하는 상상을 하게 하는 공간이다.

예전에는 정수조였다가, 이제는 그 모양 그대로를 살려서 서울숲 ‘갤러리 정원’이라고 꾸며둔 장소가 있다. 정원으로 만든다고 어설프게 덧바르고, 개조하지 않아 더 아름답고 묘하게 기분이 차분해진다. 그곳에서 하늘을 바라보면, 거기에서도 살겠다고 풀잎들이 자라 있다. 담쟁이는 먼 훗날 벽을 허물어버릴 정도로 힘이 센 아이지만, 멋지게 그 곳을 채울 뿐이다. 담쟁이의 발이 그 벽을 지탱하며 꽤나 단단히 붙어있는데, (절대 떼어보지 않길 바란다.) 종종 벽지에 붙은 공중뿌리들을 떼어내면 벽지의 일부가 뜯기고 갈색 자국을 남긴다. 만약 그대로 두면 벽지를 파고들어 콘크리트 벽까지 붙어있는다. 가끔은 그들의 생명력이 소름 끼치게 강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 따위는 너무 나약하다고 느껴질 만큼. 

 

보들거리는 램즈이어와 백묘국
보들거리는 램즈이어와 백묘국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면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면 

 

정원의 중앙에는 램즈이어도, 꽃이 핀 휴케라도 심겨 있었다. 그리고 우리집에서는 매번 죽어버리는, 도대체 왜 그러는지 아직 모르겠는 백묘국도 한자리 하고 있었다. 갤러리정원은 아래에서 위를 바라봐도, 위에서 아래를 바라봐도, 정말 아름다웠다. 아마 이 아름다움의 8할은 덩굴식물들이 하지 않나 싶었다.

 

붉은 꽃을 피운 휴케라
붉은 꽃을 피운 휴케라

 

위에서 바라본 갤러리정원
위에서 바라본 갤러리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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