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나 기분이 좀 우울한데 정상인 걸까?’

‘야, 그 정도면 정상이야, 다들 그래.’

우울과 불안은 누구나 느끼는 감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울하다고 해서, 불안하다고 해서 무조건 치료가 필요하고 비정상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어느 정도로 우울해야 하는 걸까요? 어디부터 딱 잘라서 마음을 정상이나 비정상으로 가를 수 있는 것일까요?

마음에 문제가 있다는 것, 정신에 문제가 있다는 것, 비정상이라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는 것일까요?

사진: 정신의학신문 youtube 영상 캡처
사진: 정신의학신문 youtube 영상 캡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 비정상이라는 것을 정의하려면 먼저 무엇이 정상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정신장애를 이야기할 때 무엇을 정상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정상(normal)이란 특정 기준(norm)의 범위에 포함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고, 비정상 혹은 이상 (abnormal)이란 그 기준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어떤 명확한 수치나 형태로 그려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상태를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그 정상의 기준(norm)을 정의하는 것 또한 다소 모호하고 다면적인 특성이 있습니다. 

 

[기준(norm) 정의의 종류]

1. 통계적 기준에 의한 평균 기준

대상의 특정한 측정 값이 전체 인구의 평균적 분포와 비교하였을 때 어느 정도 범위에 속하는지에 따라서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혈압은 120/80이 넘으면 이상이 있다고 정의합니다. 지능검사 결과는 100을 평균으로 표준편차를 15로 하는 정규분포로 환산되는데, 85점 이상일 경우에 정상지능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다시 말해, 지금의 상태가 다른 사람들의 보편적 상태와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의 차이를 보이는가로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2. 사회적 가치 기준

한 사회에서 이상적이라고 간주하는, 정상이라고 간주하는 가치(value)를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사회, 문화에 따라 가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에 동성애는 비정상이었지만 정신의학에서 현재 동성애는 정상 상태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이야기하는 모든 기준을 충족해야지만 정상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반박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WHO에서는 ‘건강’을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만족한 안녕(well-being)의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라고 정의했는데, 모든 사람이 항상 이러한 상태를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기준에 다소 미치지 못한다고 전부 건강하지 않다, 비정상이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3. 개인적 정상 기준

한 개인이 오랫동안 유지한 일정한 평균 상태에서 크게 벗어난다면, 그 개인에게 있어 이는 비정상 상태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IQ가 아주 높은 사람이 갑자기 지적 기능이 감퇴한 경우 IQ 검사에서는 여전히 정상 수준으로 나올 수 있지만, 그 개인에게는 비정상 상태일 수 있습니다. 평소 매우 쾌활하고 외향적인 사람이 갑자기 말수가 줄고 인간관계가 줄어들면 그 수준이 평균에서 크게 차이가 없다 하더라도 비정상으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4. 관찰자에 의한 기준

개인의 정서 상태를 외부에서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사람이 정상과 비정상을 평가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아 동질적인 성격장애의 경우 본인 스스로는 문제가 없고 불편함도 없다고 느낄 수 있지만, 외부 관찰자가 보았을 때는 비정상인 모습들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어떤 원인이 알려져 있는 의학적 상태는 질환(disease)이라고 하며, 그렇지 않을 때는 장애(disorder)라고 기술합니다. 현대 정신의학에서 다루는 대부분의 정신과적 상태는 아직 그 원인과 병인이 완전히 밝혀진 것이 많지 않습니다. 따라서 정신과적 상태는 ‘장애(disorder)’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이때의 장애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장애인, 장애등급 등에 해당하는 disability와 다른 단어임을 유의해야 합니다. 결손이 있다는 뜻의 disability가 아니라, 어떤 의학적 상태에 의해 개인적 고통과 사회적·직업적 기능 저하가 유발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정신장애는 대부분 범주적 분류(categorical classification)를 이용하여 진단합니다. 범주적 분류라는 것은 어떤 범주에 해당되느나/해당되지 않느냐로 증상과 상태를 분류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망상이 있다/없다로 나눌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범주적 분류와 대조적으로 다른 의학적 질병은 차원적 분류(dimensional classification)가 진단에 이용되기도 합니다. 차원적 분류는 특정 상태가 질병과 연관되는 '정도'를 나타낼 수 있는 분류법입니다. 예를 들어, 체온은 36.5도가 정상이지만 정상에서 멀어질 수록 점점 비정상으로 가게 됩니다. 우울 평가 척도인 Hamilton depression scale 같은 경우 매겨진 점수가 높을 수록 우울증일 가능성이 더욱 높습니다.

현재 정신장애는 대부분 범주적 분류를 기초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는 정신장애를 최초로 분류한 에밀 크레펠린(Emile Krepelin)의 기술이 그러하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우울증을 진단할 때는 심한 우울감이 있다/없다, 정신운동지체가 있다/없다, 식욕 저하, 체중 감소가 있다/없다, 수면 감소 혹은 증가가 있다/없다 등과 같은 증상 범주들을 종합하여 결과적으로 우울장애/우울장애 아님을 진단합니다.

따라서 어떠한 범주에 해당하는 것, 즉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기준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앞서 정상의 기준이 매우 복잡하고 때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짚었듯 정신장애를 기술하고 분류하는 기준의 정확성 또한 논란의 여지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진단 체계는 질환의 생물학적 원인과 정신적 기전, 질환 간의 유사성과 연관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진단의 재현성과 검증력이 낮고 예측 정확도가 낮다는 지적을 많이 받아 오고 있습니다.

이를 반영하여 DSM에서는 새로운 진단 체계의 도입 필요성을 꾸준히 검토하고 있으며 DSM-V의 부록에서는 성격장애의 진단 방법으로 새롭게 제안하기도 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정신장애는 해당 정신 상태 때문에 주관적 고통과 사회적  ·직업적 기능 저하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각각의 장애들을 기술하고 분류하는 기준들에 대해서는 꾸준히 논의와 개정이 거듭되고 있습니다. 이는 근본적으로 정신, 마음의 특성상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기술 방법과 진단 방법은 수많은 정신의학 전문가들이 오랜 시간 많은 환자분들을 관찰하고 치료하며 서로 충분한 합의를 거쳐 도출한 전세계적 기준이기 때문에 상당히 신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김총기 원장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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