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장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아내가 아기를 낳고 이제 반년이 훌쩍 지나가게 되었다. 약 반년 이상을 키우면서 수 없이 많은 국민 육아템들의 도움을 받고, 감탄을 금치 못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특히 튤립 버튼을 누르면 튤립 머리(?)가 반짝거리면서 4~5곡 정도의 동요가 나오는 사운드 북은 아기뿐만 아니라 어른까지도 흥얼거리게 되는 중독성 있는 장난감이다. 아기랑 놀아 주러 오신 어머니가 밤에 주무시기 전 동요를 흥얼거렸다고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꽃잎 색깔에 따라 다른 노래들이 담겨 있는데, 아기랑 놀아 주던 중에 ‘멋쟁이 토마토’라는 노래 가사를 듣고 흥미로운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가사를 들어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울퉁불퉁 멋진 몸매에, 빨간 옷을 입고, 새콤달콤 향기 풍기는, 멋쟁이 토마토. 나는야 주스 될 거야(꿀꺽) 나는야 케첩 될 거야(찍) 나는야 춤을 출 거야(헤이) 뽐내는 토마토(토마토!)’ 

 토마토가 못생긴 야채(과일)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매끈하고 이쁘게 생겼다고 느껴 본 적도 없기는 했다. 그렇지만 노래 속 토마토는 울퉁불퉁한 본인의 모습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빨간 옷을 입은 채로 나중에 어떻게 쓰일지 기대하며 주스가 되기도 하고 케첩이 되기도 한다. 그러고 마지막 토마토는 특별한 꿈을 말하지 않고 그냥 춤을 출 거라고 말하면서 ‘헤이’라는 추임새까지 붙인다.

 

 노래에서 토마토 1, 2는 마치 초등학생 때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은 아이처럼 케첩이 되고 주스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와중에 토마토 3은 뭐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보다는 그냥 춤을 출 거라고 하는데 맥락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면서 ‘왜 춤을 춘다고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근무가 없는 날 코로나로 인한 여러 가지 제약이 많은 상황에서 아기 앞에서 재롱을 떨면서 여러 번 이 노래를 따라 부르다 보니 그냥 그 자체로도 기분이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과 함께 가사에 대한 의문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꼭 많은 토마토들이 그런 것처럼 주스, 케첩, 혹은 카프레제 샐러드를 꿈꿀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 그냥 춤을 추면서 즐겨도 토마토의 삶이 나쁘거나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추임새도 가장 신나는 ‘헤이’이지 않은가.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요즘 젊은 세대인 MZ 세대들도 초등학교 시절에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라는 어른들의 덕담을 듣고 자랐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필자가 자라던 세대에는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물론 좋은 덕담이고 악의가 없는 이야기지만 이 ‘훌륭함’에 나를 맞추려고 학창 시절 무단히 노력했던 날들, 그리고 부모님과 사회의 기대에 맞게 살아가기 위해 힘들어하고 자책하던 환자들이 생각이 났다.

 본과 1학년이 되었을 때 부담스러웠던 학비 때문에 장학금을 따고자 부단히 노력했던 적이 있었다. 1학년 1학기 성적이 괜찮았기에, 2학기에는 으레 본과 1학년이 참가해야 하는 학과 활동을 모른 척하였고, 동기들이나 선배들에게 원망(?)이 뒤에서 들리더라도 공부에 몰입했었다. 그러나 받은 성적은 1학기에 비해 한참 떨어지는 성적이었다. 당시 받아들인 성적에 실망하고 마음이 힘들었던 적이 있었다. ‘더 공부를 열심히 해야 되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이상 하는 것은 남들보다 하루에 몇 시간을 더 갖고 있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그냥 본과 생활도 즐기면서 공부를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고 생각했었다.

 본과 2학년 때부터는 시험 기간을 제외하고는 동아리 활동, 학교 근처 다양한 가게의 사장님, 직원들과 친해져서 여행도 같이 다니기 시작했었다. 정말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시기였고, 이전에 중고등학교나 대학교 생활 때보다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때의 경험은 지금 정신과 의사로서의 삶을 사는 데 있어서도 좋은 양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방송에서 한 연예인이 지나가던 아이에게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 라고 이야기할 때 다른 연예인이 ‘뭘 훌륭한 사람이 돼! 그냥 아무나 돼!’라고 이야기 한 장면이 머릿속에 유독 오래 남아 있다. 주스나 케첩이 되기 위해서 애를 쓸 필요도 있겠지만, 때로는 ‘춤’을 추면서 있느 그대로 산다면 또 행복하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장승용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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