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성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팀 회의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와

  스마트폰을 켜니 카톡 문자 수십 개가 와 있다.

  ‘왜 이렇게 답장 안 해?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나 몰래 휴가 내고 어디 놀러 간 건 아니지?’

  ‘문자 보면 즉시 전화해. 짜증 나게 하지 말고.’

  이 남자 해도 해도 정말 너무 한 거 아냐?

  짜증을 넘어 속에서 열불이 난다.

 

  오랜만에 대학 친구를 만나

  회사 근처에서 저녁을 먹었다.

  남자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누구랑 만나는 거냐며, 사진을 찍어 보내란다.

  여자끼리 만난다는 걸 증명하라는 거다.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자기가 뭔데 시시콜콜 간섭이야?

  남편이나 돼? 웃겨, 정말…….

 

  약속 시간에 조금 늦었다.

  “자기야, 정말 미안해. 차가 워낙 막혀서 늦었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사과하는 내게 그가 쏘아붙인다.

  “다른 남자 만나고 오느라 늦은 거 아냐?”

  “뭐라고?”

  기가 막혀 되묻는 내게 그가 또 염장을 지른다.

  “요즘 나한테 통 관심이 없는 것 같아. 다른 남자 생긴 거 아니냐고?”

  뭐 이런 남자가 다 있어?

  그날 대판 싸운 우리는 식사도 안 하고 헤어졌다.

 

  대수롭지 않게 내뱉은 말 한마디, 아무렇지 않게 취한 행동 하나에도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있다. 예민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기 일쑤다. 그런데 예민함과 민감함을 넘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잘못된 생각과 신념을 따라 왜곡해서 해석함으로써 자신도 괴롭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주는 경우가 있다. 이를 망상장애(Delusional Disorder)라고 한다. 망상장애의 종류는 다양하다. 이 중 배우자 혹은 애인이 부정하다고 믿어 끝없이 의심하는 증상을 질투망상(Delusion of Jealousy)이라고 한다. 전혀 사실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자기가 사랑하는 배우자나 애인이 자신을 배신하고 다른 이성과 성적 관계나 애정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믿는 망상이다. 

  좀 더 심하면 부정망상(Delusion of Infidelity)으로 발전한다. 남편이 아내의 불륜을 의심하는 것을 의처증, 아내가 남편의 불륜을 의심하는 것을 의부증이라고 한다.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 상대방의 정조를 의심하는 망상성 장애의 하나가 부정망상이다. 실제로 사랑과 믿음을 저버린 채 외도를 하거나 불륜을 저지른 경우는 예외다. 당연히 의심받을 만한 행위를 했고, 이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의심을 했기 때문이다. 부정망상은 불륜이나 외도를 한 일이 전혀 없는 상대방을 병적으로 과도하게 의심함으로써 부정한 행위를 한 파렴치한 사람으로 몰아붙이고, 이로 인해 자신은 엄청난 정신적 피해를 겪고 있다고 느끼는 것을 가리킨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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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부부 사이에 상대 배우자 몰래 다른 이성과 계속해서 만나거나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불륜이라고 한다. 문학이나 예술은 물론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도 불륜은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소재다. 가상 세계 못지않게 현실 세계에서도 불륜은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증거가 분명한 불륜은 가정 파탄의 원인이 되고, 그에 따른 법적인 책임도 져야 한다. 부부의 인연을 이어 주던 사랑이라는 이름의 끈이 여지없이 끊어지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결혼하지 않은 연인 간에도 불륜에 해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나를 만나는 중에 다른 이성을 만나 더블데이트를 즐긴다거나 나에게 사랑 고백을 해 놓고 다른 상대를 기웃거리며 소개팅과 맞선 자리에 나가는 것이다. 심지어 프러포즈한 뒤 결혼 이야기가 오가는 와중에 예전에 만나던 이성을 계속 만나거나 관계를 끊지 않고 이어가는 사례도 있다. 결혼하지 않았으니 법적 책임은 없더라도 연인 관계는 파탄이 나거나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전혀 근거가 없고 증거도 없는데, 자꾸 의심하면서 상대방을 감시하고 옥죄려 하면 서로 괴롭고 힘들어진다. 질투가 과하면 의심으로 비화하고, 의심이 지나치면 집착을 넘어 망상으로 발전한다.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는 더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 있고, 상대방의 몸과 마음을 온전히 나만 소유하고 싶은 본능이 있다. 의심은 여기서부터 싹튼다. 그러나 질투와 의심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이런 감정이 생겨날 수는 있지만, 그것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는 말이다. 사랑은 존중과 배려가 포함된 감정이고, 집착은 욕망과 이기심이 포함된 감정이다. 사랑은 상대가 어떻게 해야 더 행복할까를 고민하며 행동하지만, 집착은 상대가 어떻든 간에 자기 자신이 행복하면 그걸로 끝이다.

 

  설사 상대방이 의심스러운 짓을 하거나 충분히 의심할 만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그 의심이 사실이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가 나오면 의심을 거두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부정망상 환자들은 그렇지 않다. 분명한 증거가 나와도 의심을 멈추지 않는다.

  “그거 못 보던 귀걸이인데…… 누가 사준 거야? 남자가 사준 것 맞지?”

  “스마트폰 왜 꺼놨어? 뭐 하느라고 꺼놓은 거야? 대체 누굴 만났느냐고?”

  “주말에 아파서 쉬었다더니 밖에서 널 봤다는 사람이 있더라? 나 몰래 어딜 간 거야?”

  이런 식으로 상대방을 숨 쉴 틈 없이 몰아붙인다. 잠깐이라도 연락이 안 될 경우, 출장이나 여행 등으로 떨어져 있게 될 경우, 자신에게 무관심하거나 무신경하다고 느낄 경우, 질투와 의심의 안경을 쓴 채 연인의 행적을 꼬치꼬치 따져 묻는다. 상대방이 적극적으로 해명하면 할수록 의심이 풀리는 게 아니라 더 커지거나 다른 방향으로 확대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관심을 쏟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믿으면서 아무것도 아닌 일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며 연인을 구속하고 감시하고 의심하는 이런 병적인 집착 증상이 바로 부정망상이다.

  부정망상 환자들은 연인의 부정을 확신하고 있기에 좀 더 확실한 증거를 찾으려고 한다. 심한 경우 상대방 차에 도청 장치 등을 설치하기도 하고, 애인의 가방과 핸드백 등에 위치 추적 장치를 달아 두기도 한다. 연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상대방에게 열등감이 있을 때 또는 자신도 마음속으로 외도나 불륜을 저지르고 싶은 욕구가 있을 때 이런 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들은 연인에 대한 의심과 집착 외에는 아무 이상 없이 정상적인 활동을 하는 까닭에 자신이 환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화를 내거나 타일러도 좀처럼 변화가 없고 저절로 좋아지기도 힘들다. 현대 사회가 갈수록 개인주의가 심해지고 익명성이 강화되며 성 윤리나 의식이 개방적으로 변하면서 부정망상 환자 역시 계속 증가 추세다.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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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행동을 인격장애(Personality Disorder)로 진단할 수도 있다. 인격장애란 성격이나 행동이 보통 사람의 수준을 벗어나 편향된 상태를 보이는 장애다. 현실 사회에서 자신과 사회 모두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정신의학 증상이다. 인격장애의 범주는 상당히 방대한데, 정당한 이유 없이 연인이나 배우자의 정절에 대해 반복적으로 질투하고 의심하는 것은 편집성 인격장애(Paranoid Personality Disorder)로 볼 수 있다. 편집성 인격장애는 타인의 행동을 의심하고, 타인의 의도를 불신하는 것이다. 의처증과 의부증이 이에 해당한다. 환자는 자신의 의심을 확신하기에 상대방에게 적대적이고 완고하며 방어적이다. 강박성 인격장애(Obsessive-Compulsive Personality Disorder)로 볼 수도 있다. 강박성 인격장애는 윤리적, 도덕적 문제와 가치에 관해 지나치게 엄격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유연한 사고를 하지 못한다. 따라서 상대가 연인임에도 자신의 완벽한 통제 아래 두려고 무리수를 두는 것이다.

   

  부정망상이나 인격장애는 어떻게 치료하는 게 좋을까?

  자신이 병을 앓고 있다고 인정하지 않으므로 치료받으러 간다는 게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연인 관계를 건강하게 이어 가려면 어떡하든 설득해서 함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찾아가 치료받도록 해야 한다. 환자 스스로 자신의 마음에 병이 들었음을 인정하는 것이 출발이다. 이후 향정신성의약품을 사용한 약물치료와 정신치료 등을 꾸준히 병행하면 좋아질 수 있다. 힘들더라도 환자와 맞서 싸우거나 화내거나 타이르고 설명하면서 이해시키려 할 필요가 없다. 상대방의 의심과 집착을 풀어주려고 자꾸 변명과 해명에 몰두하다 보면 오히려 환자가 더 심각한 증상에 빠질 우려가 있다. 부정망상이나 인격장애는 이성적인 설명으로 설득할 수 있는 병이 아니다. 환자의 자존감을 높이고, 연인에게 변함없이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말과 행동을 신중히 하면서 충분한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사랑은 갖고 싶은 사람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을 구속하고 통제해서 내 손아귀에 넣는 게 사랑이 아니다. 사랑을 지키기 위해 과도하게 집착하고 근거 없이 의심하다가는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사랑이 순식간에 사라지거나 무너져버릴 수 있다. 사랑은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믿는 것이다. 사랑은 친절하고 참을 줄 알며, 예의를 갖추는 것이다. 인간의 본능은 사랑하는 사람을 소유하고 구속하려 하지만, 건강한 이성과 인격을 가진 사람은 욕망을 절제하며 사랑과 믿음을 지키려 한다. 정말 이성 친구나 애인을 좋아하고 사랑한다면 전적으로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믿어야 한다. 상대방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야말로 사랑을 견고하게 만들어주는 힘이자 연인을 더 믿을 만한 사람으로 성장시키는 원동력이다.

  하버드대학교 초빙교수를 지낸 독일의 저명한 신학자 폴 틸리히는 이런 말을 남겼다.

  “사랑의 첫 번째 의무는 상대방에게 귀 기울이는 것이다.”

  연인인 두 사람 중 항상 상대방이 주인공인 관계가 진정한 사랑이고, 늘 내가 주인공인 관계가 이기심과 집착에 빠진 사랑이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에게 귀 기울이면서 온전히 그를 믿는 것이고, 어리석은 사랑은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면서 상대를 불신하는 것이다. 

 

  당산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성찬 원장

이성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당산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인하대학교병원 전공의
(전)수도군단 의무실장.아산정신병원.다사랑중앙병원 진료원장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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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 말씀은 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위안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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