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신문 | 김인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저는 목표를 이루고 나면 제 인생이 정말 획기적으로 변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끈질긴 집념과 노력으로 제가 커리어에서 이루고 싶었던 일을 다 이루었죠. 그랬는데 예상치도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깊은 우울감에 빠진 것입니다.

십 년 넘게 단 한 가지 목표만 보고 달려왔어요. 내 직업에서 성공하면 다른 모든 것들도 덩달아 상황이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목표를 이룬 후 느낀 감정은... 제가 무리하게 잡은 목표 한 가지만 겨우 달성했다는 생각이 들고 인생의 나머지는 모두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년 전의 저로서는 전혀 상상도 못했던 일입니다.”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환자의 표정은 어둡고 착잡해 보였다. 그는 허무맹랑한 꿈에 매달린 것도 아니고, 자신의 목표를 뚜렷하게 설정했다. 그의 목표란, 외국인 바이어 및 동료들과 원활한 영어 소통을 하며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꾸었던 ‘글로벌 인재’의 꿈. 회사 업무를 하면서도 틈틈이 영어 공부를 하던 그는 영어 공부에 매진한 지 십 년쯤 지난 후 문득 그가 바라던 목표는 이루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보다 업무 파악이 미숙한 외국인 동료의 코를 납작하게 해줄 정도로 자신의 외국어 실력을 뽐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외국인 동료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나자 아주 찰나의 순간, 그는 짜릿한 승리의 쾌감에 도취되었다. 속으로 뛸 듯이 기뻤다. ‘십 년 동안 밤낮으로 노력한 결과야. 나는 드디어 더 이상 언어 장벽 앞에 좌절하지 않게 되었어!.’

하지만 강렬하고 짜릿했던 성취감 이후에 그를 찾아온 것은 달콤한 성공의 행복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깊은 우울감이 그를 덮쳤다. 처음에 그는 이런 상황을 인정할 수 없었다. ‘일이 년도 아니고 장장 십 년이나 벼르던 일이 드디어 이루어졌는데, 왜 우울증이라는 깊은 늪에 빠져버린 것일까?’ 

30대 중반인 환자가 이룬 네이티브 못지 않은 영어구사 능력과 사회적인 성취는 과소평가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목표를 이루고도 그는 왜 불행한 것일까? 흔히 우울감이란, 큰 사건에 실패하거나 자신의 전반적인 사정이 예전에 비해서 현저히 나빠졌을 때 스트레스를 받는 것인데 말이다. 

 

긍정 심리학자 Tal Ben-Shahar는 이런 현상을 도착 오류(arrival fallacy)’라고 명명하였다. 도착 오류란 우리가 목적을 달성하거나 의도했던 도착 지점에 이르면, 그 이후로는 영원히 행복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종종 어떤 한 가지 사건으로 우리의 인생이 행복해질 것이라는 상상에 빠진다. 취직, 임금 인상, 승진, 결혼, 여행, 출산 등등 어떤 한 가지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그 이후는 탄탄대로를 걸을 것이라는 환상에 젖기가 쉽다. 

하지만 이것은 착각일 뿐. 단 하나의 사건으로 우리 인생이 전반적으로 월등히 나아지는 일은 잘 없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열심히 노력해 왔는데도 불구하고 성공의 시간은 찰나일 뿐이다. 그가 노력해 온 십 년이라는 시간에 비하면 몇 분, 몇 시간, 혹은 며칠간의 승리감이나 도취감은 아주 잠깐이다. 그리고 그 이후로 그는 실망과 허무감을 느끼게 되고 스트레스, 압박감, 공허함도 몰려왔다.

 

목표를 통해 가고자 했던 도착 지점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기대했던 것만큼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진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목표를 달성한 후 인생에는 온통 장밋빛 미래만 남아 있을 것이라는 도착 오류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사람들은 흔히 단기적인 목표를 자주 설정한다. 그리고 목표를 달성한 후에도 계속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하는 것이, 목표 달성 후 우울증에 빠지지 않는 방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사람을 매우 지치게 만들 수 있는 단순한 발상일 수도 있다. 이에 여러분들은 목표와는 다른 개념인 ‘목적’있는 삶을 살아내시길 바란다.

목표는 단기적이고 가시적이다. 반면 목적은 방향성을 지니고 이루어가는 과정 자체에서 충족감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의대생의 목표는 ‘의대를 졸업해 의사가 되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목적은 방향성이며, 보다 가치 중심적이므로 ‘아픈 이들을 돕겠다’는 것이 의대생의 목적일 수 있다. 

의대생이 의사가 되고 나면 목표가 달성되었으므로 한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무력감에 빠질 수도 있다. 더 안 좋은 경우에는 앞에서 얘기한 환자의 경우처럼 도착 오류 때문에 성취 후 우울감에 빠질 수도 있다. 

환자는 나중에 자신이 영어를 공부하려고 했던 원래 동기는 영어를 통해 많은 지식을 자유롭게 습득하고 외국인들과도 편안하게 소통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지려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잊고 있던 목적을 찾은 것이었다. 

 

당신의 지금 목표는 무엇인가? 가치 지향적인 목적을 향해 있는가? 

 

‘우리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목표가 아니다. 목적의식으로부터 목표를 받아들일 때야말로 진정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_‘목적지향적인 삶’의 선구자 리처드 라이더(richard leider) 

 

당신의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김인수 원장

 

김인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당신의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 애독자 응원 한 마디
  • "그때 선생님 글을 만났더라면 좀더 빨리 우울감에서 헤어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글 내용이 너무 좋아 응원합니다. 사소한 관계의 행복이 회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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