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인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미 끝난 일을 말하여 무엇하며, 이미 지나간 일을 비난하여 무엇하리.”

과거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경계하라는 뜻입니다. 공자의 이 말이 오랫동안 기억되는 건 단지 그가 유교의 창시자이자, 동아시아 인문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대학자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후회라는 감정의 덧없음을 정확히 짚어 냈기 때문일 텐데, 그 말뜻을 곱씹다 보면 보다 근본적인 의문이 떠오릅니다. 인간은 대체 왜, 후회하는 걸까요?

후회의 감정은 각자에게 다른 강도로 다가옵니다. 같은 실수를 했더라도 금세 훌훌 털어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밤잠을 설치며 자신의 실수를 되새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퇴사를 후회하는 상황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A는 더 좋은 곳으로 이직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향후 목표와 실천 방안을 꼼꼼히 세웁니다. B는 사직서를 제출한 그 순간을 수백, 수천 번 떠올리며 자신을 탓합니다. 이러한 자기 비난이 지나치면 우울감과 무기력증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A와 B의 차이는 어디서 온 것일까요? 단순한 성격 차이인 걸까요?

사진_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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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샤이 다비다이(Shai Davidai)는 APA에 공개한 논문 <자신에 대한 자아개념과 후회의 관계에 대한 연구>에서 이 질문에 대한 구체적인 답을 내놓습니다. 그는 인간의 자아가 세 가지 종류로 구분된다고 말했습니다.

첫 번째, ‘실제적 자아’는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로 이루어진 자아입니다. ‘나는 학생이다.’ ‘나는 여자다.’ 등과 같이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나타냅니다.

두 번째, ‘이상적 자아’는 희망, 목표, 열망, 소망처럼 내가 이상적으로 소유하고 싶어 하는 자아를 가리킵니다. ‘절세미인이 되고 싶다.’거나 ‘완벽한 보디라인을 갖고 싶다.’ 등, 자신의 실제적 모습이 어떠하든지 간에 장차 이루고 싶은 이상형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의무적인 자아’는 의무나 책임에 근거한 자아로, 자신이나 타인이 부과한 의무에 스스로 맞춰야 한다고 여기는 자기 모습입니다. 이는 자신의 가치관이나 신념보다 부모, 가족, 사회, 문화 등 타인과 주변 환경에 의해 형성되기 쉽습니다.

 

다비다이는 개인의 자아 개념과 후회의 상관관계를 밝히기 위해 6개의 연구를 진행한 결과, 한 가지 특징을 알아냈습니다. 실험 참가자들은 실제적 자아와 이상적 자아의 불일치도가 클수록 더욱 자주, 오래 후회했던 것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을 고르라.’는 질문에는 전체 참가자의 76%가 ‘자신의 이상적 자아를 이루지 못한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다비다이는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로, 사람들은 자신의 의무나 책임에 대한 실패를 경험했을 때 신속히 대응 방안을 찾아낼 수 있지만, 이상과 관련된 후회는 해결되지 못한 채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예를 들어, 건강해지기 위해 운동을 해야 하지만 이에 실패했다면, ‘주 2회 헬스장에 가서 한 시간씩 운동을 한다.’ 등의 구체적인 해결책을 세우면 됩니다. 다비다이는 결론적으로, 사람들은 그들이 ‘되었어야 했던 것’보다 ‘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후회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자주 후회하는 사람의 몇 가지 특징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1. 이상적 자아의 모습이 거대할수록 더 많이 후회한다.

과체중인 사람이 다이어트에 성공할 순 있지만, 단신인 사람이 키 170cm의 팔등신 몸짱이 될 수는 없습니다. 애초 실현할 수 없는 목표는 더 깊은 좌절과 절망을 안깁니다. 목표 설정을 통해 발전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받는 건 어디까지나 그 목표가 현실적일 때입니다.

 

2. 추상적이고 광범위한 목표를 가질수록 더 많이 후회한다.

목표를 구체화해야 이상적 자아를 객관화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우러러보는 몸짱’과 같은 목표는 지극히 주관적입니다. 몸짱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자신이 도달해야 할 곳이 어디쯤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무작정 노력만 하는 것은 포기를 앞당길 뿐입니다. ‘체지방 00% 이하’, ‘허벅지 둘레 00cm 이상’ 등과 같이 명확하고, 세부적인 목표를 세우는 것이 좋습니다.

 

3. 실천 전략이나 계획이 없을수록 더 많이 후회한다.

원대한 목표만 세우고,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면 실패의 가능성은 더욱 높아집니다. 자신이 실천할 수 있는 수준에서 단계별, 기간별로 분류된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합니다. ②를 바탕으로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면 그에 맞는 단계별 계획 수립이 가능해집니다. 그렇게 세세하게 설정된 계획과 목표는 의무적 자아의 성격과 가까워지므로, 실패를 경험하더라도 보다 수월하게 방향 수정 후 대책을 세울 수 있습니다.

 

4. 가장 중요한 것은 ‘실천’하는 것! 실제로 하지 않으면 더 많이 후회한다.

이상적인 자아가 실패하는 것은 결국, 자신이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은 ‘일단 행하는 것’임을 명심하세요.

 

자신이 유독 후회를 자주 하는 것 같다면 위의 네 가지 특징을 점검해 보는 건 어떨까요? 어쩌면 실천할 엄두도 나지 않는 비현실적이고 원대한 이상을 꿈꾸고 있는 건 아닌지, 말만 앞세우고 정작 행동은 뒷전이었던 게 아닌지 말입니다. 분명한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실패와 후회를 밑거름 삼아 전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당신의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김인수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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