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성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어느 날 출근 시간 바삐 걷다가, 지하철역에서 한 시각장애인이 흰 지팡이로 땅을 두들기면서 걷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순간 앞이 보이지 않는데도, 아주 뛰어난 음악성을 발휘하는 뮤지션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 'Isn't she lovely?’ 등의 노래로 유명한, 너무나 천재적인 능력을 지녀서 이름마저 스티비 원더(Wonder:놀라움, 천재라는 뜻)라고 불린 뮤지션. 그리고 선글라스로 눈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눈을 당당하게 드러내며 환상적인 노래를 부르는 안드레아 보첼리 등이 떠올랐습니다. 

 

요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많이 바뀌었고, 이는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봅니다. 사실 장애란 선천적인 경우도 있지만, 후천적으로 누구나 장애인이 될 가능성이 있기에, 장애인의 환경이나 증상 등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한때 허리에 디스크가 생겨서 걷기 힘든 적이 있었는데 그때 휠체어를 타고 지나가시는 분을 보고 ‘아, 나도 장애인이 될 수도 있겠구나. 장애란 다른 사람만의 이야기는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현병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조현병은 환각이나 환청을 겪거나, 현실감각이 떨어지면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병으로서 일반인들은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질환 중 하나입니다. 조현병에 대해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중 흥미로운 것은 ‘선천적인 시각장애인은 조현병에 걸리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두려워하는 조현병에 대해 새로운 사실이 알려진 것입니다. 왜 시각장애인은 조현병에 걸리지 않을까 하는 질문은 많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합니다.

이 연구에서는 Western Australia 대학의 정신의학과에서 1980년과 2001년 사이에 호주에서 태어난 467,945명의 전체 인구를 상대로 선천적인 시각장애인의 조현병 여부를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전체적으로 1,870명의 어린이가 정신분열증(0.4%)을 앓았고, 9,120명의 어린이가 정신병(1.9%)을 앓았습니다.

 

하지만 시각장애를 가진 66명의 어린이 중 아무도 조현병 혹은 다른 정신과 질환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요? 왜 시각장애인은 조현병에 걸리지 않을까요? 어떤 연관이 있는 걸까요?

 

사진_ freepik
사진_ freepik

 

뇌는 여러 번 반복해서 시각 정보로 들어온 것들을 모아 하나의 도식으로 삼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다른 사물들을 볼 때마다 기존에 있는 도식과 비교를 통해 시뮬레이션하고 새로운 정보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때, 도식으로 포함해 업데이트를 하죠. 집을 예로 들어 생각해 볼까요? 평생 움막 형태의 집에서만 살아온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에게 ‘집’이라는 도식은 ‘가죽으로 이루어지고 사람 키보다 조금 더 큰 세모 형태’의 것만 있습니다. 이 사람이 어느 날 아파트를 본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집이라는 도식과 매우 다르므로 아파트가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이라고 생각하기 어렵지요. 직접 들어가서 자고 먹고, 비바람으로부터 보호받는 경험을 하고 나면, 아파트가 집의 일종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또 이후에 벽돌로 지어진, 나무보다 더 큰 네모난 다세대 주택을 봐도 집일 수도 있다고 예측할 수 있습니다. 도식은 이런 예측을 가능하게 만들어 줍니다.

 

조현병의 증상 중 하나는 시각적 왜곡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직선으로 뻗은 길이 실제와 다르게 끊겨 보인다거나 벽에 박힌 못이 자신을 감시하는 카메라라고 왜곡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본 것을 사실이라고 굳게 믿고 잘못된 지각일 리 없다고 확신하게 될 때 우리가 망상이라고 불릴 만한 예측을 하게 됩니다.

 

앞선 호주의 연구자들은 이 점을 시각장애인들에게 조현병이 생기지 않는 가능성 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각 정보가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오류나 잘못된 예측이 일어날 확률 자체가 매우 적다는 말입니다. 시각장애 때문에 시각적으로 받아들이는 정보의 양 자체가 적거나 아예 없어서, 도식을 만들기도, 또 오류를 만들거나 예측을 하기에도 부족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자신의 오류를 수정하고 업데이트하는 우리의 능력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연구 결과에 대해 우리는 내가 가지고 있던 도식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개방성과 나의 예측을 수정할 수 있는 유연성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시각을 통해 뇌로 입력된 새로운 정보를 과거와 비교하고 어떻게 조정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유연성은 커질 수 있습니다. 조정하지 못하면 편견에 빠져 살아가게 되는 거죠. 이런 조정을 우리는 개방성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개방성은 타인과 더불어 사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내가 건강한 정신을 유지하게 만드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개방성이 있는 사람은 새로운 정보에 대해서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죠.

 

‘선천적인 시각장애인은 조현병에 걸리지 않는다.’라는 연구는 (특정 질환이 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더 개방적이고 유연한 태도는 우리의 정신건강을 한층 더 나아지게 할 수 있다는 큰 시사점을 남겨 주는 흥미로운 연구였습니다.

당신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성찬 원장

이성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당산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인하대학교병원 전공의
(전)수도군단 의무실장.아산정신병원.다사랑중앙병원 진료원장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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