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ㅣ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코로나로 인해 삶이 멈춰버린 건우 씨의 이야기

건우씨는 진료 전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답답하다며 이야기 도중 가슴을 치기도 했습니다. 그를 만날 때마다 느껴지는 무거운 공기에는 그의 절박한 마음이 그대로 묻어났습니다. 

건우씨는 해외에서 꽤 유명한 명문대를 졸업했습니다. 대학에서 만났던 친구들이나 교수님에게 항상 인정받는 학생이었던 그는 오랜 타지 생활에서 느낀 외로움 탓에 국내에서 커리어를 이어 나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2020년 초, 졸업 후 국내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시기부터 코비드-19 바이러스의 대유행이 시작되었죠. 바이러스가 만들어내는 파급력과 공포와 함께, 코로나 사태는 그의 삶을 뒤바꾸게 되었습니다. 요즈음 우리의 삶처럼 말입니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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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코로나 사태는 단순히 마스크를 써야 하고, 만남을 줄여야 하는 불편함 그 이상이었습니다. 모든 삶이 그야말로 멈춰버린 것이지요. 성공적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이어나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 오랜 타지 생활에서의 힘듦을 고국에서 보상받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모두 사라져버렸습니다. 매일 TV에서 내비치는 확진자 수에 따라 그의 마음도 따라 흔들렸습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그랬듯 금세 끝날 거다, 그러고 나면 기회가 올 거다, 하는 생각으로 자신의 마음을 다독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긍정적인 마음은 그 덩어리가 줄어들어만 갔습니다. 

건우씨는 점차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그 누구도 보기가 싫어졌습니다. 언젠가부터는 집 밖에 나서는 것이 너무 힘들어졌습니다. 구직 활동을 해야 하는데, 해야 하는데, 하며 속으로만 되뇌이다 보면 어느새 밤. 건우씨는 또 다시 무기력에 빠져들어 자신을 자책할 뿐이었습니다. 자기 비난을 시작할 때면 내가 왜 살아야 하나, 내가 살아갈 이유가 있나, 나는 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도돌이표처럼 그의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떠올랐고, 불안한 감정은 그를 하루 내내 괴롭혔습니다. 

페이스북에서 같은 학교를 졸업한 친구의 타임라인을 발견한 순간, 건우 씨는 그 때의 절망스런 감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사진 속의 친구는 직장에서 주최한 파티에서 말쑥하게 차려입고 샴페인 잔을 들며 활짝 웃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차마 ‘좋아요’ 버튼을 누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 직장은 건우씨가 오랫동안 그려왔던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밤은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삶을 속도를 내어 살아가는데, 내 삶은 왜 멈춰 있는 걸까?’ 

이 모든 변화가 고작 반 년만에 그에게 일어났습니다.  

코로나 블루(Corona Blue)가 뭔가요?

코로나 블루는 코로나 바이러스(Corona virus)와 우울감(Blue)이 합쳐진 신조어입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생긴, 더 정확하게는 코로나의 영향으로 인한 우울, 무기력, 불안과 같은 부정적인 마음의 변화를 뜻합니다. 학술적으로 정확하게 정의된 질병은 아니지만 분명 일상적인 우울감, 혹은 우울증과는 그 궤가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병 자체에 대한 공포만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만성적으로 우리 삶에 스미는 무기력이 코로나 블루의 특징이라 할 수가 있겠네요. 

나뿐만 아니라 나를 둘러싼 공동체, 국가, 그리고 전세계가 이러한 무기력감과 두려움에 빠져 있는 상태입니다.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 인류에게 공포를 주는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밝혀지고 규명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아직도 명확한 해결책이 나타나고 있지 않은 상황 자체가 두려움을 자아내고 있는 것이지요. 언제 끝날지 모르니 두렵고, 항상 피부에 와닿는 모든 상황을 경계해야 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니 한 시점의 사건을 뜻하는 코로나 ‘사태’라 표현하기보다 새로운 시절의 시작, 코로나 ‘시대’로 부르는 편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삶의 현실적인 부분도 흔들립니다. 바이러스로 잔뜩 위축된 삶은 대인관계와 직업적 영역 전부를 쪼그라들게 합니다. 우리 삶을 대변하는 숫자들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습니다. 뉴스나 신문에서는 연일 코로나 사태로 인해 줄어들기만 하는 여러 경제적 숫자들, 반대로 늘어나기만 하는 확진자 수를 이야기합니다. 정부의 대응 단계가 높아질수록 우리의 두려움은 커지고, 또 반대로 우리의 삶은 더욱 좁아지기만 하지요. 참 팍팍하고도 힘든 시절입니다. 

건우씨는 코로나 블루에 빠졌습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그리고 그 누구도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그의 생활을 송두리째 흔들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습니다. 다시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거나,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더 이상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자신감이 사라지고, 자존감이 무너진 삶입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지는 것도 그런 탓이겠지요. 

자존감이 무너지는 시대, 우리 마음의 형태

기대했던 것, 자신 있어 하던 것들이 모두 의미가 없어진 상황에서 그의 마음에는 절대적인 절망만 가득합니다. 잔인하게도, 사회적 동물로서의 본능이 이 상황에서도 빛을 발합니다. 공동체 내에서 다른 이들과의 비교, 그리고 자책의 반복이 계속되는 거지요. 반복의 끝엔 “나는 정말 쓸모 없는 사람이구나.” “나는 이것밖에 안되는 존재구나.” 하는 식의 회한만 남게 됩니다. 이렇듯 코로나 블루  상태의 마음 안, 우리의 자존감은 풍화되어 갑니다.

또, 참으로 애석하게도 우리의 뇌는 상황을 일반화(generalization)하려는 성질이 있습니다. 이 상황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뇌는 ‘이 상황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잘못된 ‘가설’을 ‘정설’로 받아들입니다. 이는 생존이 최우선인 뇌의 기능 탓입니다. 우리는 항상 현재에 온전히 머무르지 못하고, 미래를 생각하려 합니다. 미래는 항상 미지의 영역에 속하지만, 우리 뇌는 어떻게든 이를 추론하려 하고, 또 대비하려 분주합니다. 고대의 원시인이든, 현대인이든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나약한 인간의 삶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아주 미묘한 단서만으로도 미래를 그리려 하고, 또 그에 맞추어 생존하려 합니다. 

하지만 우리 뇌는 항상 ‘정답’만을 내놓지는 못합니다. 때로는 정확하고 이성적인 추론에 근거하기보다 감정에 휘둘립니다. 코로나 블루로 인한 두려움, 무기력감 탓에 뇌는 그릇된 판단을 합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이 상황이, 이 마음이 끝나지 않을 거라는 결론을요. 절망의 늪으로 점점 빠져드는 과정인 것이지요. 

코로나 블루, 마음의 중심을 잡으려면

참 어려운 시절이고, 힘든 시대입니다. 당분간은 온 세계가 코로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신음할 것 같습니다. 또 코로나가 당분간은 우리의 삶에 스며들게 될 거라는 예측도 나옵니다. 이런 시대에 마음의 중심을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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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에 대한 마음의 대비책은 이 상황을 맞이하는 우리의 태도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먼저,  코로나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상한 비유로 들리지만 코로나는 여름이 오면 어김없이 오는 장마, 날이 추워지면 이따금 찾아오는 폭설과 같은 것으로, 즉 삶에서 가끔씩 맞이해야 하는 불청객으로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릅니다. 내가, 아니 인류가 아무리 애를 써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면, 물러가기를 기다리기보다 우리 삶의 출발점을 코로나 시대에 맞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상황을 인정하고, 좀 더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마음의 바닥을 다지는 일이 중요합니다. 

‘언제 끝나나, 대체 언제 끝나나’ 기우제를 지내는 마음보다 ‘어쩔 수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조금씩 해 나가자’는 생각이 훨씬 더 도움이 된다는 건 당연하겠지요.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대해서 반발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이 상황에 대해 그저 긍정으로 바라볼 수 있는, ‘무한 긍정’이 가능한 사람이 어디 있으려나요. 반발심과 저항이 드는 마음 또한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또  껴안아야 하겠지요.

우리는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설령 이전에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작은 것일지라도요. 그리고 그 작은 것들을 하면서 성취감을 느껴 나가야 합니다. 의식적으로 혹은 의도적으로, 내가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좀 더 많은 긍정의 점수를 매겨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건우 씨의 경우처럼 모든 계획이 다 어그러진 상황일지라도, 그나마 남아 있는 것들에 시선을 돌려 작은 성취를 마음 안에 쌓아 올려야 하는 것이지요. 

무기력이 온몸을 감싸는 상황에서 무엇인가를 하는 게 참 쉽지 않은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볼까요? 우리는 매일 ‘무엇인가를 하기’와 ‘아무것도 하지 않기’와 같은 양자택일의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고요. 그렇다면 그 둘 중 ‘무엇인가를 하기’를 좀 더 자주 선택하는 거지요. 

당장 사람들을 만나거나, 거창한 일을 계획하지 않아도 됩니다. 내 방에 온종일 머무르기보다 집 근처를 짧게나마 산책하는 것으로도 충분해요. 처음에는 세수도 하지 않고 나가 보세요. 코로나 시대에 마스크는 필수니까 아무도 모를 겁니다. 그냥 편한 옷 그대로, 부담 갖지 말고 시작하는 거예요. 땅을 보고 걷지 말고, 변하는 나뭇잎의 색을 살피고, 피부에 와닿는 계절의 온도를 느끼고, 하늘에 걸린 구름의 크기를 좌우로 고개를 돌리며 바라보는 겁니다. 그리고 그 선택의 끝에서는 잘했노라고, 오늘 집에만 있고 싶었는데 참 대견하다며 자신을 다독여주어야 합니다. 칭찬은 굉장히 대단한 것에만 할 수 있는 건 결코 아니니까요. 티끌만큼의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면 오늘 한 선택은 의미가 있는 것이겠지요. 그날의 보람과 작은 성취는 다음 날의 또 다른 ‘무언인가를 하는’ 선택으로 이끌게 될 테고요.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같은 SNS, 카카오톡 프사(프로필 사진)에 걸린 누군가의 자랑을 너무 마음에 담아 두지는 마세요. 어느 시점의 언젠가 우리 또한 분명 그런 모습일 테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작은 것들을 쌓아 올리면서 코로나 시대를 견뎌 가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강남 푸른정신건강의학과 의원ㅣ신재현 원장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남푸른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계명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저서 <나를 살피는 기술>, <어른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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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생님을 만나고나서 분노를 좀더 잘 다루게 된 것 같아요"
    "신재현 선생님의 따뜻한 조언에 살아갈 용기를 얻었어요"
    "지방이라 멀어서 못 가지만 여건이 되면 찾아가고픈 제 마음속의 주치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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