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발칙한 이솝 우화> (10)
본능과 이성이 충돌하는 순간 – 돼지와 사자


한여름 갑작스레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너무 많은 비가 내리는 바람에 홍수가 났습니다. 숲속에도 홍수가 들이닥쳐 동물들이 다 떠내려가고 나무들은 전부 물에 잠겼습니다.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던 돼지 한 마리도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갔습니다. 이대로 가다 보면 영락없이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한 돼지는 안간힘을 써서 근처에 있던 통나무에 올라탔습니다.
그런데 겨우 정신을 차린 돼지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맞은편에 커다란 사자 한 마리가 있었던 겁니다. 사자 역시 살기 위해 가까스로 통나무를 부여잡고 있었습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돼지는 사자에게 정중히 인사를 건넨 다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동물의 왕과 한 통나무에서 만나게 되어 큰 영광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비상한 상황입니다. 저희는 홍수로 떠내려가고 있습니다. 이 통나무를 놓치는 순간 물에 빠져 죽거나 급류에 휘말려 바위에 부딪혀 죽게 될 겁니다. 그러니 안전한 곳에 이를 때까지 사이좋게 이 통나무를 붙잡고 있어야 합니다. 식욕이 이성을 마비시키는 일은 절대 일어나선 안 됩니다.”
“당연하지. 네 말이 옳아. 너를 잡아먹으려다 둘 다 죽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으마.”
돼지는 안심이 됐습니다. 통나무를 사이에 두고 돼지와 사자는 홍수에 떠밀려 가면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이튿날 아침이 되어 잠에서 깬 사자가 간밤에 꾼 꿈 이야기를 했습니다.
“간밤에 거리를 떠돌아다니다가 어느 유대교 회당에 들어가 안식일 예배를 드렸지 뭐야?”
사자는 꿈 이야기를 한 다음 돼지를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지만, 참고 또 참았습니다. 그런 사자를 보며 돼지는 마음이 놓였습니다. 또 하루가 갔습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사자는 묻지도 않았는데, 지난밤에 꾼 꿈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어젯밤 꿈의 연속이었어. 이번에는 내가 성당에서 열리는 금요일 미사에 참석했다니까.”
꿈 이야기를 들려준 사자는 가끔 돼지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리곤 했습니다. 사자 배에서는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사자는 잠을 자는 동안에도 유난히 으르렁거렸습니다. 돼지는 불안했지만, 하루를 더 보냈습니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자 사자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습니다. 들으나 마나 어젯밤에 꾼 꿈 이야기를 하려는 것 같았습니다.
“참 이상해. 사흘 연속 비슷한 꿈이야. 어제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지. 아주 즐거웠어.”

돼지의 표정이 어두워졌습니다. 돼지는 사자를 향해 비장한 목소리로 이야기했습니다.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동물의 왕의 행운을 빕니다.”
통나무를 벗어나려는 돼지를 사자가 황급히 붙잡았습니다.
“아니, 왜 그래? 내가 식욕을 억제하면서 이성적으로 너를 대했는데, 왜 떠나려는거야?”
“그 이성의 힘이 이제 한계에 도달한 것 같습니다. 유대교인들은 돼지고기를 먹지않습니다. 가톨릭 신자들도 성금요일에 돼지고기를 먹지 않죠. 그런데 개신교인들은 언제든 돼지고기를 즐겨 먹습니다. 동물의 왕께서 유대교와 천주교를 버리고 굳이 개신교를 택하신 건 저를 먹잇감으로 보기 시작한 겁니다. 잡아먹히느니 물에 빠져 죽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돼지는 미련 없이 통나무에서 벗어나 강물 속으로 몸을 던졌습니다. 그러고는 유유히 흘러갔습니다. 사자는 침을 삼키며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돼지가 떠내려간 쪽을 끝없이 쳐다봤습니다. 뱃속에서는 어느 때보다 요란하게 꼬르륵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disney 라이언킹 화면 캡처
disney 라이언킹 화면 캡처

평상시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 위급한 상황에서는 종종 일어나기도 합니다. 초원에서 돼지와 사자가 맞닥뜨렸다고 생각해 봅시다. 돼지는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쳐야 했을 겁니다. 사자는 쏜살같이 달려 거대한 앞발로 돼지를 넘어뜨린 후 여유 있게 식사를 즐겼겠죠. 대화와 타협이 끼어들 공간이 없습니다. 본능이 이성을 압도하는 순간입니다. 하지만 홍수로 급류에 떠내려가면서 겨우 부여잡고 있는 통나무를 사이에 두고 돼지와 사자가 만났을 때는 본능대로 행동할 수가 없습니다. 위기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안전을 위해 모든 본능을 억제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아무리 사자라도 섣불리 행동할 수 없습니다. 이를 잘 아는 사자는 돼지가 눈앞에 있는 데도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식욕을 억제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면서 이성의 끈이 느슨해집니다. 사자는 배가 고파 죽을 지경입니다. 먹을 게 없으면 모르겠는데, 바로 코앞에 먹음직스러운 돼지 한 마리가 있습니다. 당장이라도 덮치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랬다가는 돼지 말처럼 통나무를 놓쳐 물에 빠지거나 급류에 휘말려 바위에 부딪힐 공산이 큽니다. 허기를 채우기 위해 목숨을 건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형편입니다. 사흘이 지나자 마침내 사자의 본능이 이성을 앞서기 시작합니다. 사자는 꿈 이야기로 이를 합리화했습니다. 눈치 빠른 돼지가 이를 알아채고 사자에게 이별을 고합니다. 사자의 식욕이 이성을 마비시키는 순간, 돼지가 살아날 확률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강물 속으로 몸을 던졌을 경우 행운이 돼지와 함께한다면 살아날 수도 있습니다. 돼지는 확률이 조금이라도 높은 쪽에 도박을 겁니다. 그로 인해 사자는 배를 채울 확률이 제로에 가까워집니다. 희비가 엇갈리는 찰나입니다.


본능(本能, Instinct)이란 사람이나 동식물 등 생명체가 갖는 타고난 행동 능력을 말합니다. 물론 경험이나 학습도 영향을 미치지만, 이에 앞서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행동을 가리킵니다. 예를 들면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아기가 엄마의 젖을 빨고, 물고기가 헤엄을 치며, 새가 날개를 움직여 하늘을 나는 것 등입니다. 엄마가 자신이 낳은 아기에게 무한한 사랑을 쏟는 것은 모성 본능, 꿀벌이나 비둘기가 먼 곳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은 귀소 본능, 철새가 계절마다 엄청나게 먼 거리를 이동하며 살아가는 것은 이동 본능으로 설명되곤 합니다. 자신을 보호하고 생명을 유지하며 종족을 보존하려는 기본적 행동입니다.

이에 반해 이성(理性, Reason)은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일컫습니다. 사물이나 사태를 보고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어떤 게 선한지 악한지, 어느 쪽이 아름다운지 추한지를 식별하는 능력입니다. 본능은 생각하고 판단해서 하는 행동이 아닙니다. 선천적으로 주어진 능력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죠. 그러나 이성은 생각하고 판단해서 어떻게 할지 결정한 바에 따라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성은 동물과 구분되는 인간만의 특징으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능력입니다. 기쁨, 슬픔, 분노, 욕망, 불안 등의 본능적 감정은 언제든지 인간의 몸과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이성적 의지로 통제하고 제어하지 못하면 인간은 정신의 자립성을 유지할 수 없게 됩니다. 독일 철학자 칸트는 본능이나 감성적 욕망에서 나온 행동과 구별해서 의무 또는 당위를 인식함으로써 나타나는 행동이 이성적인 행동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자율적으로 자기의 의지를 결정하는 이성이 있기에 도덕적 행위가 가능한 것 입니다.

 

본능을 억제하고 이성을 따라 행동한다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본능대로 행동하는 건 쉬울뿐더러 쾌락을 가져다줍니다. 배고플 때 먹고, 졸릴 때 자고, 화가 날 때 욕하는 것이죠. 그런데 배가 고픈데도 남의 것을 훔치지 않고, 졸려도 시험을 위해 밤새워 공부하고, 화가 나도 웃는 얼굴로 상대방을 대하는 것은 어렵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은 도덕적 의무감 혹은 당위성을 인식해 이성적으로 행동합니다. 모든 사람이 본능을 따라 행동한다면 사회는 무질서의 혼란을 겪게 될 겁니다. 본능과 본능이 충돌하고, 욕망과 욕망이 부딪힐 때 이를 다스릴 수 있는 건 이성뿐입니다. 본능을 따라 살고 싶은 욕망을 제어하고 이성의 요구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합리적 존재로서 인간이 행해야 할 의무입니다.
정신적으로 혼란을 겪고 힘들어하는 사람 중에 이성에 따라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기보다는 본능을 따라 분노를 참지 못하고 매사 불안해하며 감정 기복이 지나친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분노하고 불안하고 울고 웃다가도 조금 지나면 후회하고 자책합니다. 이와 반대로 너무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려 애쓰느라 자신의 본능과 욕망을 지나치게 억압하고 통제함으로써 자유롭지도 행복하지도 못한 채 중압감에 짓눌려 사는 분들이 있습니다. 언젠가 억눌렸던 본능이 폭발하면 큰 일탈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사회적 틀 안에서 적절히 자신의 본능과 욕망을 충족시키는 게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성에 의한 행위를 너무 의무와 당위로 포장해 스스로 옥죌 것까지는 없습니다. 본능에 의한 행위와 이성에 의한 행위를 적절하게 조화해 나갈 필요가 있는 것이죠.

 

우화 속 돼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물속에 빠져 죽거나 급류에 휩쓸려 가다 바위에 부딪혀 죽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요행히 다른 통나무를 붙잡거나 뭍으로 안전하게 떠밀려 생존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사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화도 나고 배도 고파서 굶어 죽었든가 역시 뭍에 안전하게 도착했을 수도 있습니다.

돼지로서는 어차피 둘이 통나무를 붙잡고 무사히 살아났다 해도 그 후에 사자에게 잡아 먹혔을 테니 중간에 사자와 이별한 게 나았을 겁니다. 사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끝까지 내색하지 않고 돼지를 안심하고 마음 놓게 만들어 뭍에 닿을 수 있는 게최선이었을 겁니다. 그것이 어렵다면 마지막으로 모험을 감행해서 실컷 포식이나한 다음 장렬하게 최후를 맞는 것도 한 방법이었겠죠. 본능에 충실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끝까지 이성에 매달리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행동을 한 탓에 죽도 밥도 아닌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남이 어색했기에 헤어짐도 불안했습니다.

돼지가 통나무에서 사자를 만났을 때 이렇게 말했더라면 어땠을까요?
“존경하는 사자 대왕님은 동물 중 가장 힘이 세니까 있는 힘껏 통나무를 움직여 무사히 뭍에 닿게 된다면 이를 기념해 저를 기꺼이 먹이로 드릴 테니 맛있게 잡수십시오. 지금 위험을 참고 애를 써서 그렇게 된다면 사자 대왕님께는 꿩 먹고 알 먹는 이득이 될 겁니다.”
이성에 호소하며 은근히 본능을 자극하는 것이죠. 그런 다음 통나무가 뭍에 닿으면 그때쯤 사자는 기진맥진해 돼지를 잡아먹을 힘이 남아 있지 않을 겁니다. 그러면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치는 돼지를 따라가지 못하고 물끄러미 쳐다보고만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정신과 최강록 원장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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