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pixabay
pixabay

 

어떤 사람이 개 두 마리를 길렀습니다. 둘 다 잘 생기고 용감한 개였습니다. 주인은 그중 한 마리를 사냥개로 키웠습니다. 밖에 데리고 나가 사냥하는 법을 가르쳤고, 사냥할 때마다 데리고 다니며 유능한 사냥개가 되도록 조련했습니다. 또 한 마리 개는 집 지키는 개로 키웠습니다. 집 안에 살면서 주는 밥 먹고 도둑이 들어오지 못하게 잘 감시만 하면 됐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냥개는 더욱 용맹스러워졌으나 집 지키는 개는 빈둥거리며 놀고먹는 일에 익숙해졌습니다. 사냥개는 자신은 매번 산과 들을 힘들게 뛰어다니며 열심히 사냥해 꿩과 토끼와 노루 등 짐승을 잡아 오는데, 집 지키는 개는 한가로이 낮잠이나 자면서 어슬렁거리는 게 못마땅했습니다. 게다가 주인은 자신이 애써 사냥해 온 고기 중 한 덩어리를 떼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놀고 있던 집 지키는 개에게 먹으라고 던져주기까지 했습니다.

‘이거 너무 불공평한 거 아냐? 저 녀석이 한 게 뭐 있다고 고기를 나눠주느냐 말이야.’

하루는 사냥개가 맛있게 고기를 먹고 있는 집 지키는 개에게 다가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야, 네가 뭘 했다고 내가 사냥한 고기를 먹는 거냐? 나한테 미안하지도 않니?”
그러자 집 지키는 개가 사냥개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내게 소리를 지르고 그래? 내가 집 지키는 개가 된 건 주인님이 그렇게 시켰기 때문이야. 너도 주인님 때문에 사냥개가 된 거잖아? 주인님이 나에게 사냥을 가르쳤더라면 내가 사냥개가 되었을 거야. 너에게 집을 지키라고 했으면 너도 집 지키는 개가 되었겠지. 그러니 나를 원망하지 말라고. 따지려면 주인님께 가서 따지도록 해. 너처럼 열심히 사냥하지 않고도 뒹굴뒹굴하면서 남이 사냥한 맛있는 고기를 먹고 살도록 가르친 건 주인님이니까.”

 

이 우화는 교육에 관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자녀를 교육할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 교훈을 주고 있죠. 매일 산과 들로 데리고 나가 사냥하는 법을 가르치면 사냥 잘하는 개가 되고, 빈둥거리면서 그냥 집이나 지키게 만들면 집만 지키며 사는 게으른 개가 됩니다. 어떤 개가 될지는 주인이 가르치기에 달린 겁니다. 자녀 교육도 같은 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열심히 가르쳐서 한 분야에 뛰어난 실력을 갖추게 되고, 자기가 먹고살 것을 자기 힘으로 만들어가는 존재가 되면 충분히 독립적인 인생을 살게 됩니다. 반면 삼시 세끼 꼬박꼬박 밥을 주면서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채 놀고먹어도 되게끔 가르치면 성인이 되어서도 무위도식하는 건달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남에게 의존하며 사는 인생이 됩니다.


이솝이 기원전 6세기 후반 고대 그리스에서 활동했던 사람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우화가 교육 목적으로 읽혔다는 걸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2,600년 전 이야기니까 현재와는 많은 차이가 있죠. 그렇더라도 교육에 대한 부모의 생각과 열정이 자식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 같습니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고 해도 자녀를 열심히 일하는 독립적 인간이 되도록 가르쳐야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게으름뱅이가 되도록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독립적 인간은 다른 사람도 돌보고 사회에 유익을 끼치는 이타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하지만 자기 밥벌이도 하지 못하면서 남에게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돌볼 여유도 없고 사회에 유익을 끼칠 여력도 없습니다. 목표도 의지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 무기력하게 사는 삶입니다.


그런데 우화를 좀 다른 각도에서 읽어 보면 흥미로운 걸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냥개와 집 지키는 개는 자신의 앞날을 스스로 선택한 게 아닙니다. 주인이 정한 겁니다. 너는 사냥을 해라, 너는 집을 지켜라, 이렇게 말이죠. 둘 다 똑같은 기질과 재능을 가졌다면 선택은 무작위로 이루어진 것이니 운명론입니다. 부모의 무작위 선택으로 자녀에게 각기 다른 교육 기회가 주어지고 이에 따라 자신의 앞날이 결정되는 셈입니다. 개인의 자유의지나 도전정신이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저마다 다른 기질과 재능을 가진 걸 주인이 알아보고 이에 따라 한 마리는 사냥개로, 한 마리는 집 지키는 개로 구별되어 길러졌다면 그리고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에 충실하며 주어진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며 살았다면 누굴 원망할 일도 후회할 일도 없습니다. 잘된 것이죠. 부모가 자녀의 기질과 재능을 어렸을 때부터 제대로 발견하고 파악해서 이에 걸맞게 교육하고 능력을 발휘하며 살도록 해주는 건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내 삶의 운명은 누군가에 의해 이미 결정된 거라고 믿는 운명 결정론이든 내 삶은 내 의지와 능력으로 얼마든지 개척하고 만들어갈 수 있다고 믿는 운명 개척론이든 현재 내 삶의 조건과 환경은 이미 주어져 있습니다. 과거보다는 미래가 중요한 것이죠. 그래서 현실을 대하는 태도를 봐야 합니다. 사냥개와 집 지키는 개를 관찰해 보십시오. 사냥개는 열심히 살고 있지만, 무위도식하는 개를 비난합니다. 은근히 부러워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나는 죽어라 일하며 먹고사는 데 남들은 한량처럼 놀고먹는 걸 보면 속상합니다. 세상이 불공평하게 느껴집니다. 한편으로는 나도 저렇게 팔자 좋게 살고 싶기도 합니다. 집 지키는 개는 어떨까요? 용감하게 종횡무진 활약하는 야성미 넘치는 사냥개가 부러울까요?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우화 속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그냥 무기력할 뿐입니다.


의욕도 의지도 열정도 호기심도 목표도 없는 사람은 부러운 것도 없습니다. 누군가가 부럽다는 건 그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것이고, 그 사람처럼 되지 못한 자신을 돌아본다는 겁니다. 자신의 현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앞날에 대한 어떤 기대가 있을 때 부러움이 생깁니다. ‘부러움(Envy)’을 심리학에서는 욕망의 대상을 본인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상대방이 가지고 있을 때 느껴지는 괴로운 감정이라고 설명합니다. 사람 외에도 물건, 단체, 능력, 외모, 집안 등을 포함하는 총체적인 감정이죠. 부러움은 타인이나 자신이 가지지 못한 어떤 대상과의 비교를 통해 도출됩니다. 가난한 사람만 부자가 부러운 건 아닙니다. 많은 재산 때문에 불안하고 집안에 분란이 끊이지 않는 사람은 가진 것 없이 홀가분하게 사는 가난한 사람이 부러울 수 있습니다. 휘황찬란한 궁궐에서 호의호식하는 왕자가 자유롭게 어디든지 갈 수 있는 거지가 부러울 수 있는 겁니다. 사냥개가 매일 힘들게 사냥하지 않아도 편하게 먹고 살 수 있는 집 지키는 개가 부러울 수 있듯 집 지키는 개 역시 마음껏 산과 들로 쏘다니며 용맹스럽게 짐승을 사냥하는 사냥개가 부러울 수 있습니다. 부러움은 상대적인 겁니다.


질투와 부러움은 뭐가 다를까요?
질투는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상대방을 미워하면서 깎아내리려는 마음입니다. 상대방의 불행을 바라는 것이죠. 그도 나처럼 가진 것을 잃어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부러움은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상대방을 선망하는 마음입니다. 상대방의 불행을 바라기보다는 나도 그걸 가짐으로써 행복해지기를 바랍니다. 파괴가 아닌 창조입니다. 나보다 공부 잘하는 친구가 있을 때 그가 나보다 공부를 잘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거나 괴롭히는 것은 질투입니다. 그러나 나도 친구처럼 공부를 잘하려는 마음으로 같이 공부하자고 하거나 나를 좀 도와달라고 하면서 열심히 공부해 그 친구만큼 나도 공부를 잘하게 되는 것은 부러움입니다.


“부러우면 지는 거야.”
우스갯소리로 많이 하는 말입니다. 이 말의 속뜻은 나와 남을 비교해서 내가 열등하다고 느껴 상대방에게 질투심을 갖게 되면 그 자체로 나는 이미 패자임을 인정하는 것이고, 그로 인해 괴로움을 겪게 될 테니 불행해진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질투가 아닌 선망 혹은 갈망으로서의 부러움이라면 얼마든지 긍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부러움의 대상을 바라보며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고 의지를 불태우는 것이죠. 그렇게 되는 걸 목표로 삼고 열심히 배우고 땀 흘려 성장의 기회로 삼는 겁니다. 이렇듯 부러움을 긍정적으로 내면화하면 오히려 자존감이 높아집니다. 에너지가 솟는 것이죠. 그러면 자신이 바라던 것을 얻거나 최소한 그것에 가까워짐으로써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부러움의 대상이 생겨야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의지와 열정이 솟아나게 됩니다. 그러니 부러우면 지는 게 아니라 이기는 겁니다.


제가 두 마리 개의 주인이라면 얼마간 서로의 역할을 바꿔서 시켜볼 것 같습니다. 사냥개는 집을 지키게 하고, 집 지키던 개는 사냥터로 내보내는 것이죠. 산과 들로  마음껏 쏘다니며 사냥하던 개가 집에 쪼그리고 앉아 주는 밥만 축내고 있으려면 온몸이 찌뿌듯하고 몸살 날 지경이 될 겁니다. 집 지키는 개가 부럽지 않겠죠. 산과 들이 그리울 테니까요. 집 지키던 개 역시 안 하던 일을 하려니 고역일 겁니다. 마구 뛰어다니며 꿩과 토끼를 잡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죠. 온몸이 쑤시고 아플 게 뻔합니다. 사냥개가 전혀 부럽지 않을 겁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 뒤 두 개가 만나면 아마 이런 대화를 나누지 않을까요?

“며칠 집을 지켜보니 도저히 못 하겠더라. 매일 집을 지키는 너는 참 대단하다. 부럽다.”

“나도 그래. 온몸이 뻐근해 죽겠다. 사냥 잘하는 네가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어. 부러워.”

상대방의 장점을 인정하고 칭찬해 주는 것, 이것이 아름다운 부러움 아닐까요?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최강록 정신과 전문의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의료법인 삼정의료재단 삼정병원 대표원장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교수
  • 애독자 응원 한 마디
  • "선생님 경험까지 알려주셔서 더 와닿아요.!"
    "조언 자유를 느꼈어요. 실제로 적용해볼게요"
    "늘 따뜻하게 사람을 감싸주십니다"
최강록 전문의의 대표칼럼 전체보기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