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산숲 정신건강의학과의원 : 이성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동갑내기 남편이 있습니다. 남편은 가부장적이지 않고 저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묵묵히 해주며 우리가 평등한 부부관계에 있다는 확신을 제게 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한번씩 저를 속상하게 하는 일이 가끔 있어요. 제 감정에 공감해주는 것보다 타인의 감정을 우선시 하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복도식 아파트에 산다 치고, 옆집에 남편의 친구 부부가 살고있고 복도에 종종 생화를 사다가 둔다고 합시다. 예쁘고 향이 좋아서 같이 공유하고싶은 마음이라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저도 꽃을 좋아하기 때문에 크게 문제 될 일이 아닙니다.

근데 이 꽃들이 백합같이 가루가 심하게 날리는 꽃이고 저는 꽃가루 알러지가 심합니다. 복도를 지나기만 해도 눈이 붓고 콧물 재채기가 심해지고 목도 아픕니다. 그래서 제가 어느날 남편에게 '복도의 꽃 때문에 꽃가루 알러지가 너무 심해서 점점 힘들다, 친구들에게 잘 이야기 해서 꽃을 이제 복도에 두지 않기로 하면 안되냐' 라고 물어봤더니, 제게 돌아온 대답은 '그래도 친구들이 꽃을 꼭 복도에 두고싶어할지도 모르니 꽃을 치우라고 하기 좀 그럴 것 같아' 였습니다.

출처_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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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남편에게 '나한테 이렇게 눈에 보이는 증상들이 나타나고 괴로워하고 있는데 어떻게 고작 친구의 감정이 상하는 것을 내 신체적 정신적 고통보다 우위에 둘 수 있느냐, 믿을 수 없다' 라고 했고, 자신이 한 말의 문제를 인지한 남편은 저에게 곧바로 사과하고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했습니다. 친구들은 물론 전혀 몰랐고 미안하다, 앞으로는 꽃은 복도에 두지 않겠다고 흔쾌히 이야기 했고 앞으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남편과 이 일에 대해 다시 이야기해보니, 친구들에게 이런 논란의 가능성이 있는 주제를 꺼내는게 굉장히 부담스럽게 느껴졌다고 하네요.

이와 같은 패턴의 일들이 다른 주제로 종종 생기곤 합니다. 저는 이 비슷한 패턴의 일들을 남편에게 이야기해주면서 '이렇게 하면 당신이 나의 고통에 공감해주는 것보다 고작 타인들의 기분따위를 우선시하는 것 같아서 정말 기분 나쁘고 무시당하는 기분이 든다'하고 설명을 몇 번 해줬습니다. 남편은 잘 들어주고 미안하다, 앞으로 그런 일 없도록 조심하겠다 사과도 잘 하고 자기 나름 저의 기분을 맞춰주려는 노력을 추가로 평상시에 더 많이 하는데, 막상 이런 상황이 닥치면 무엇이 저에게 그런 기분을 들게 하는지 그 순간에 잘 판단을 못 하는 것 같더라구요. 약간 앞뒤 맥락을 당장 눈 앞에 벌어지는 사건과 잘 연결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저는 미안하다는 말보다도, 이 패턴이 반복되는 이유를 파악하고 이것을 방지하기 위한 어떤 노하우를 스스로 좀 터득하는 모습을 보고싶구요. 이건 제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해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남편은 화목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기억하는 최대한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이 늘 심하게 싸웠고, 물건을 던지며 싸우는 경우도 잦았다고 합니다. 감정적인 케어를 두 분께 전혀 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자랐어요. 안정적이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사랑을 받는것도 표현하는 것도 낯설어했는데, 제가 자주 싸우기도 하고 잘 이야기하기도 하는 과정을 거치며 저에게 자기 나름의 표현을 점점 스스로 하는 단계까지 오긴 했어요. 이런 주제로 제가 답답해서 화를 내거나 하면 남편은 늘 너무 미안해하고 죄책감들어하고, 이런 태도의 원인을 파헤치는 것은 극도로 두렵지만 동시에 이걸로 제가 고통받는것도 괴로워하구요.

 

공감능력과 정서발달에 대한 다른 글들과 이야기들도 읽어보고, 남편과도 많이 이야기해본 결과 '어릴적의 경험이 지금의 감정적 판단에 계속 영향을 미치고 있다'라는 결론까지 함께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기서 부터 저와 남편이 각자 어떻게 이 상황을 다뤄야할지 잘 모르겠어요. 성인인 남편에게 공감과 감정을 제가 직접 가르쳐주는 것이 쉽게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점은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전문가도 아니고, 이런 상황을 사랑으로 극복하겠다는 생각도 별로 현실적이라고 생각하지 않구요. 남편은 전문 상담가를 만나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 우리에게 도움이 될거라는 생각을 하고 저도 찬성하는데, 그렇다면 같이 부부 상담을 받는것이 가장 좋을까요? 아니면 남편이 개인 상담을 받기로 하고, 배우자로서 제가 곁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남편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도움이 될까요?

 

 

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올려주신 사연 잘 읽어보았습니다. 남편분과의 관계, 성장 환경, 갈등의 양상, 원인 등 상세하게 현재의 어려움을 적어주셔서, 상황을 잘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남편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설명하고, 앞으로 나아질 수 있는 노력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남편분의 성장 환경을 적어주셨는데요. 어린 시절 부모님과의 상호작용은 이후의 대인관계 맺는 방식에 상당한 영향을 끼칩니다. 집에서 늘 심하게 싸우는 부모님 슬하에 자라면 자녀들의 내면은 긴장, 불안감, 공포 등 부정적인 감정에 자주 휩싸입니다. 부모님이 다툰 이후에 자녀가 느꼈을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해주지 않았다면, 처리되지 않은 감정들은 계속 자녀에게 쌓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처리하는 방식은 훨씬 일찌감치 ‘패턴’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보통은 두 가지 방향으로 처리합니다. ‘억압’하거나 ‘표출’합니다.

자녀가 표출하기에는 더 큰 갈등 상황이 올 수 있으므로 대부분의 자녀들은 감정들을 억압합니다. 스스로에 대한 보호기제이자 방어기제인 것이죠. 느낄 수 있는 감정과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을 최대한 제한합니다. 감정을 꺼내봐야 제대로 수용받지 못하고, 갈등 상황이 촉발된다고 본능적으로 예측하기 때문입니다.

출처_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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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분은 높은 언성과 물건을 던지는 폭력적인 상황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정서적으로 방임되어 오셨습니다. 갈등을 타인에게 표현하는 행위가 평화롭고 안전하게 해결되는 빈도보다 때때로 위험하고 고통스럽게 경험되는 빈도가 더 높았던 것이죠. 즉, [갈등 = 부정적인 감정들의 폭탄]이 됩니다. 갈등을 ‘위협적’으로 지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의 대인관계에서 어떤 패턴이 생길까요? 대부분 평화롭고 순종적인 방식을 지향합니다. 타인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합니다. 수용적이지 못했던 부모 대신 이상적인 부모상을 내면화하고 타인에게 그 역할을 무의식적으로 수행하기도 합니다. 자신이 받고 싶었던 것들을 타인에게 해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과거 상처 경험을 보상하고 치유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입니다. 미숙하게 감정을 폭발시켰던 부모와 대척점의 모습을 지향하는 것도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다 남편분이 사연자님과 결혼을 하셨습니다. 사연자님과 수평적인 관계를 맺으며 소통하고 자주 싸웠다고 하셨는데요. 남편분에게 정말 필요했던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갈등에 대해 가지는 무의식적인 공포와 불안감을 표면화하면서, 대인관계 갈등을 맞닥뜨리고 소화할 기회를 차곡차곡 쌓아온 것입니다. 사연자님께서 자신의 감정을 건강하고 구체적인 화법으로 잘 전달하는 분이어서, 남편분이 감정표현 영역에서 좋은 롤모델을 만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남편분은 사연자님을 먼저 공감해주지 못하고 왜 지인들을 먼저 공감했을까요? 여기서 새롭게 생각할 두 가지 이야기 있습니다. 첫 번째, 남편분의 반응은 사실 지인의 감정을 먼저 ‘공감’한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을 우선시하는 배려있는 행동이 아니라, 갈등이 초래할 부정적인 감정 폭탄에 압도될 두려움 때문에, 이 두려움을 알아차리고 소화하기 버겁기 때문에, 익숙하게 갈등을 덮은 것입니다. 남편의 행동을 ‘나를 최우선으로 공감해주지 않는 태도’라고 해석하면 서운하고 속상한 감정이 따라오는 게 당연합니다. 공감의 영역으로 보기보다는 다음과 같은 해석이 사연자님의 감정도 덜 상하고, 다각도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듯합니다. ‘남편은 갈등 상황을 최소한으로 줄이려는 본능이 매우 강하다.’ 마치 동물이 위협상황에서 얼어붙고 도망치는 것처럼, 두려움에 압도되는 순간에는 멀리 결과를 생각하고 사연자님 감정을 헤아릴 심리적인 여유는 없습니다. 아직은 익숙한 패턴대로 행동하는 것일 뿐입니다. 새로운 패턴으로 바뀌기까지는 시간과 시행착오가 필요함을 서로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출처_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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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공감의 우선순위보다는 ‘갈등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라고 말씀을 드렸는데요. 그렇다면 왜 지인과의 갈등과 사연자님과의 갈등 중에 전자를 더 우선시했을까요? 그 순간 남편분은 ‘전자와의 갈등이 더 불편하다’고 지각한 것입니다. 사연자님보다 덜 친밀한 사람들과의 갈등을 불편하고 위협적으로 지각한다는 것에도 의미가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인들은 사연자님에 비해 신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대인관계에서의 갈등을 기꺼이 감당한다는 것은 나의 감정을 표현하고 진면목을 보여주어도, 상대가 나를 오해하지 않고 제대로 수용해줄 것이라는 신뢰가 기본으로 있어야 합니다. ‘누울 자리를 보고 뻗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만일 사연자님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고, 지인보다 더욱 눈치를 보는 수직적인 관계였다면 사연자님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더 노력했을 것입니다. 사연자님을 본능적으로 우선시했겠지요. 그렇다면 사연자님은 공감받는다고 해석하고 관계에 만족하셨을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는 심층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순종적인 태도는 사실 수평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남편분의 행동이 진심 어린 공감과 수용일 때도 있겠지만, 때로는 갈등을 피하기 위하여 ‘순응’하는 본능으로 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 차이를 서로 잘 알고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사연자님과 남편분이 소통하는 데에 삐걱대는 상황을 오히려 반갑게 해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편분의 공고한 방어기제를 타인에겐 잘도 발휘하면서, 사연자님 앞에서는 때로 거두고 미숙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어떻게 보면 그만큼 신뢰가 쌓였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에 성장하지 못했던 미숙한 면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남편분에게는 감정인식과 감정표현의 영역입니다. 그 미숙함이 표현될 자리, 허용되어도 괜찮다고 받아들여지는 관계가 부부관계입니다. 그동안 사연자님은 남편분에게 ‘참 좋은 대상’이 되어주었습니다. 남편분이 자기를 안전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겪는 두 분의 어려움은, 과거에 남편분이 평범한 가정에서 성장했다면 소화되었을 경험을 다룰 소중한 기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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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분은 마땅히 그 시절 아이답게 미숙하게 감정을 표현할 기회가 사실 없었습니다. 부모의 미성숙한 감정폭발은 아주 유아적이고 퇴행적인 모습이라 해석할 수 있는데요. 이를 매우 폭력적이고 부정적인 경험으로 자각했으니, 남편분에게 있어 ‘날것의, 미숙한, 서툰 표현’들은 그동안 억압되어왔을 겁니다. 그리고 이제야 사랑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 사연자님을 만났습니다. 억압하는 방어기제를 조금씩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드러내지 못했던 모습을 꺼내놓았습니다. 사연자님이 마음에 안 드는 남편분의 미숙한 대처 방식들은 그러한 맥락에서 나오는 것임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두 분에게는 부부상담을 권하고 싶습니다. 결국 소통방식을 잘 조율해야 하기 때문에, 상호작용을 관찰할 수 있는 부부상담이 좀 더 신속한 개입과 교육이 가능합니다. 부부상담을 하더라도 필요하다면 각자 개인 회기를 가질 수 있습니다. 사연자님이 없을 때 남편분이 상담자와 상호작용하는 연습도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상담은 과거 경험을 검토하면서 처리하지 못한 감정들을 애도하고, 소화하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에서 배우자도 물론 영향을 받습니다. 남편분이 필터링하지 못한, 서툴더라도 자동적으로 나오는 반응들은 앞으로도 툭툭 튀어나올 수 있습니다. 남편분이 뒤늦게라도 알아차리고 사과하고 수습하면 됩니다. 필요한 시행착오이자 성숙해지는 과정입니다. 당분간은 늦게 알아차리고 수습하는 방식으로 반응하겠지만, 상담도 받고 반복하다 보면 점차 제때 최선의 반응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동안 의식하지 못한 사연자님에 대한 생각과 감정들 역시 ‘뒤늦게’ 알아차리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때 남편분이 표현한 내용의 적절성에 집중하기보다는 표현하는 용기 자체를 격려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사연자님께서 남편분이 어떤 모습이기를 기대하는 것은 참 자연스럽습니다. 그렇지만 나의 기대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이 원래 타인의 속성임을 알고 계실 겁니다. 만일 우리가 타인에게서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고 싶어 한다면, 타인이 표현하는 방식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조정하려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내가 정해놓은 상대방의 일부분’만 만나고 소통할 수 있을 뿐입니다. 앞으로 ‘온전한 자신의 모습’으로 두 분이 관계를 맺고 서로에게 더욱 지지적인 관계를 만들어가기를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이성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당산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인하대학교병원 전공의
(전)수도군단 의무실장.아산정신병원.다사랑중앙병원 진료원장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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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 말씀은 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위안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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