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이호선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이런 사이트가 있는 지도 모르고 지내다가 우연히 알게 되어서 몇 자 적어봅니다. 저는 어릴때부터 기질 자체가 예민하고 내성적인 아이였습니다. 10살 때부터 엄마한테 폭언과 가정폭력을 대략 15년정도 당했구요. 어릴때 따돌림도 당했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한적은 없지만 제 모습이 싫고 불안 우울감이 너무 커서 성인이후부터 꾸준히 심리상담센터를 다니면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대략 10년정도 되었구요. 가격이 굉장히 비싸서 백만원 단위로 쓴 것 같아요 천만원 가까이 되네요.

대학생때는 아버지가 도움을 주셨구요 아버지는 어머니가 저를 학대할때 다 알면서 밖으로만 도셨고 방관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런 부분에 도움을 주신것 같아요. 돈 번이후로는 제가 벌어서 다녔어요. 제가 돈이 많고 돈에 아쉽지 않아서는 절대 아니였어요. 무기력함이 심해서 돈 벌어다 여기에만 썼어요. 버는 돈은 저에게 의미가 없었거든요. 돈도 사람도 뭐도 다 의미는 없었어요. 그냥 집에서 누워만 있었어요. 장소는 6~7군데 정도 옮겼어요. 이유는 이사나 이직 아니면 선생님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였구요.

출처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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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맞았던 선생님도 계시 꾸준히 굉장히 오래 다닌곳이 알고보니 사이비여서 나중에 도망치기도 했어요. 어쨋든 저는 저를 바꾸기 위해서 혼자 10년동안 부단한 노력을 많이 해왔던 것 같아요. 엄마한테서 벗어나기위해서 대졸 후 취직하고 혼자 자취를 하고 있구요. 고도비만에서 벗어나기 위해 25키로 정도 감량했어요.

사회가 너무 무섭고 사람이 무서워서 대학 다니던것도 취직도 포기하고 몇 년 동안 은둔 생활도 했지만 지금은 취직을 해서 처음보는 사람하고도 대화를 할 정도로 나아졌어요. 또 제가 저의 생계를 스스로를 책임지고 있기도하구요. 상담을 오랫동안 다니다가 정말 많이 좋아져서 선생님이 이제 그만와도 된다고 하셔서 종료한적도 있지만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더라구요.

요즘에 다시 불안감과 긴장감 속에서 매일을 지냅니다. 우울감도 그만큼 다시 심해졌구요. 운동중독일만큼 운동에 의지했는데 제가 지금 몸이 다쳤기도 하고 코로나 때문에 헬스장을 끊은지 2년정도됐어요.

저는 불안+우울이심하면 회피하거든요. 지금또 너무 도망가고싶어요. 근데 이제느끼는건 도망가봤자 시간만 버린다는걸 알아서 도망가지는 못하고 있어요. 여러선생님들을 만나고나서 크게 느낀점 두가지는

1. 내 인생을 구할수 있는 사람은 나 스스로 뿐이다(의존성이 굉장히 강했어요)
2. 불안하고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 딱감고 시작해야한다. 그래야 나아진다.

이것인데. 사실 예전만큼 이게 선명하게 와닿지 않네요. 사실 인생에 기복이 있다는것도 알고있어서 지나가겠거니 생각도하지만. 다시 상담센터에 간다고 해서 인생이 달라질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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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저는 퇴근하거나 휴무일엔 불안감 제거하는 것들 하루종일 중독자처럼 찾아보고있구요(잠깐 시도하다가 금새 기력해져서 포기하고 눕습니자) 그와 동시에 폭식하는게 저의 일과 입니다. 불안감이 너무 심해서 업무에 지장이 갈 정도인데도 집에와서 누워있거나 먹는것 밖에 할 수가 없네요. 직장상사가 ㅇㅇ아 너는 업무를 익히기전에 너자신부터 믿어야해 지금도 너를 못믿고 있잖아. 이런말도 들었어요.

이 불안감의 원인이 뭔지 깊게 생각해봤는데 저는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려고 할때 안될 것 같다는 불안감에 엄청 휩쌓입니다.. 어떠한 특별한 자격이 있는 사람만 시작해야할 것 같고. 저는 역시 그 자격조차 없는 미천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릴때부터 이해력이 부족해 주변 사람들에게 핀잔과 비아냥을 많이 경험하다보니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것 같아요. 작은 것들을 목표로 세우고 조금 조금씩 하다보면 괜찮아진다는데. 지금은 너무 무기력해서 해리?상태라고 해야하나 그거에만 너무 신경쓰다 보니까 나머지 것들은 신경 쓸 여유도없고. 축축쳐지게 된것 같아요.. 그 작은 것조차도 버겁게 느껴져요.

혹시 이런 저에게 도움을 주실만한 이야기가 있는지 해서 글로 적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답변)

안녕하세요, 서대문봄 이호선입니다.

남겨주신 사연 잘 읽어보았습니다. 사연자님이 어린 시절에 많은 상처가 있었고, 성인이 되고 심리상담도 오랫동안 받아오셨네요. 무려 10년 정도의 기간을 거쳐 여러 상담자를 만나셨습니다. 변화하기 위해 정말 엄청나게 노력하신 분이네요. 삶의 목적을 잃은 힘든 상황에서도 꾸준히 심리상담을 받고, 운동하고, 취직하고, 독립도 하시고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단계까지 성장하셨습니다. 사연자님이 달라지고 싶은 마음 하나 붙들고 하루하루 버텨오고 뛰어넘고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나서 걸어온 긴 시간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수많은 노력에 감탄했습니다. 그동안 정말로 애쓰셨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연자님과 유사한 가정환경과 상처 경험이 있는 분들은 꽤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사연자님과 같은 긍정적인 변화를 모두 만들어내는 것은 아닙니다. 큰 상처가 생기면 이를 대처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대처할 에너지와 역량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상처를 덮고 일단 하루하루를 잘 넘기는 것이 최선일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연자님께서는 삶에서 일어난 중요한 경험들을 마냥 묻어두지 않고, 상처를 직면하는 용기를 내신 분입니다. 물론 중간중간 도망친 적도 있으셨을 겁니다. 불안과 우울이 버거울 땐 누구라도 회피하고 싶어지니까요. 그 또한 당시에는 자신을 보호하는 선택이셨을 겁니다. 그게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지만, 장기적으로 고통을 회피하는 것이 시간을 낭비한다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깨달음을 얻으셨다고 했지요. 그리고 삶의 중요한 두 가지 법칙도 적어주셨습니다. ‘자기 삶을 온전히 책임지고 구할 사람을 자신이라고 믿는 것’, 그리고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도 일단 끌어안고 행동부터 시작하는 것’. 아주 훌륭한 말입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삶을 살아야 하는지 지혜롭게 잘 이해하시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출처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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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자님처럼 경험을 다각도로 이해하고 성찰하는 힘은 삶을 잘 살아가는 데에 있어 중요한 역량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수년간 심리상담을 통해 밀도있는 소통을 하면서 자신을 더 잘 알고 이해하게 된 내용이 많을 겁니다. 사연자님 자신의 심리 문제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잘 알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여기서는 원인을 분석하기보다 앞으로 사연자님이 가야할 길에 초점을 맞추고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먼저 사연자님께서 정신과를 가신 적은 없었다고 하시니, 약물치료 경험이 없었던 것 같은데요.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증상이 심각하지 않아서였는지, 부작용이나 의존도가 걱정되셨던 건지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동안 겪었던 사연자님의 불안과 우울의 심각도는 분명히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만, 고통을 장기간 겪어왔다는 점에서는 약물치료가 정말 필요한 때에 적절히 받지 못한 것 같아서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정리하는 상담으로 해결되는 어려움도 있지만, 그 영역을 벗어나는 수준의 증상들은 더이상 심리적인 문제만이 아닙니다. 뇌의 신경전달물질들의 불균형으로 인해 우울과 불안과 같은 증상들의 심각도가 달라집니다. 즉, 사연자님의 의지로 해결되지 않는 생리학적인 원인도 현재의 불안과 우울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불안장애의 경우 약물을 복용하면 단독으로도 70% 이상의 치료 효과를 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사연자님은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의 불안감과 우울감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에 압도된 상황에서는 대부분 과거에서 원인을 찾습니다. 심리상담도 과거의 중요한 사건과 현재를 연결짓는 방향으로 많이 진행되기도 하고요. 사연자님께서는 현재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마 앞날을 떠올릴 때 최악을 상상하거나, 시도한 일이 잘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빨리 떠오를 겁니다. 긍정적인 자신의 미래 모습이 그려지지 않고, 희망과 기대가 없다면 당연히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지는 감정도 동반될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연자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첫 번째는 ‘현재 시제’로 마음의 시계를 맞추는 것입니다. 유명한 ‘몰입(Flow)’ 개념을 제시한 칙센트 미하이의 말을 인용하고 싶은데요.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우리 마음은 부정적인 생각, 하찮은 계획, 슬픈 추억, 미래에 관한 걱정 쪽으로 기울어진다. 엔트로피(무질서, 혼란, 부패)는 의식이 게으름을 피운 결과다.” 즉, 우리 의식은 원래 온갖 쓸모없는 생각으로 치우치는 일이 자동적으로 일어납니다. 그렇지만 자동적으로 의식이 만드는 생각을 쫓아가고 머무느라 ‘현재’의 경험을 놓치게 될 때, 삶을 온전히 살지 못하게 됩니다. 늘 부정적인 감정을 쫓아가고 다루느라 에너지를 다 소진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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칙센트 미하이에 따르면 ‘마음의 평화’를 얻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의 목표에 집중’하거나 ‘마음챙김’과 같은 훈련을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연자님은 상담센터에 가도 도움이 될지 회의적이신데요. 이번에 간다면 상담 목적을 명확히 해서 센터를 찾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불안이나 우울감 증상 완화 효과가 검증된 ‘마음챙김’ 즉, MBSR을 기반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다루는 상담자를 찾아가세요. ‘현재’의 자신을 관찰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적절한 거리를 두고 대처할 수 있는 아주 효과적인 연습을 할 수 있을 겁니다.

두 번째로 어떤 감정이 주된 증상인지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서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약물치료를 받으세요. 지금 무언가를 시도할 에너지도 많이 떨어져 있고, 누워있고 폭식하는 일상이 지속되는 점이 우려됩니다. 사연자님이 혼자서도 잘 대처할 수 있었던 시기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혼자서 헤쳐가기 버겁고 많이 지친 상태임을 인정해주고 받아들였으면 합니다. 약물치료가 어떻게 도움이 될지 혼자 판단 내리지 않고, 전문의와 상의하고 의견을 들어볼 기회를 본인에게 주셨으면 합니다.

 

노력했지만 넘어지는 자신에게 어떻게 할지 물어보셨습니다. 재촉이나 비난을 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과거에 비판적이고 가혹했던 부모 역할을 무의식적으로 내면화한 분들은, 자신이 힘들어하는 순간에 연민과 공감을 발휘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사연자님이 지금 넘어져 있는 자신을 ‘문제시’하고, 변화해야 하는 존재로 보는 이면에는 ‘지금 이대로는 부족한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자기상이 자리잡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런데 건강한 자존감을 회복하고 긍정적인 자기상을 갖추는 일은 몇 회기의 상담만으로는 변화되기 어렵습니다. 평생에 걸쳐 다뤄야 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오늘 하루, 지금 이순간. 취약한 상태의 자신을 데리고 살 수 있을 정도의 연민은 키워야 합니다.

 

다정한 부모 역할을 자신에게 해주는 자기 양육적인 태도는 충분히 학습 가능합니다. 마음챙김이 도움이 될 겁니다. 연민, 자비, 수용, 공감과 같은 자기를 사랑하는 데 필요한 태도를 연습할 수 있습니다. 현재 겪는 증상들은 약물로도 조절 가능합니다. 약물치료도 효과가 있을 때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 텐데요. 사연자님의 회복하는 속도가 얼마나 걸리든 그 시간을 기다려주기로 택하는 것도 ‘자기 존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조만간 편안한 일상을 찾길 응원합니다. 혼자의 힘으로 다 극복하고 해결하려고 너무 애쓰지 마시고, 다시 기꺼이 의지하세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한양대병원 외래교수, 한양대구리병원 임상강사
(전)성안드레아병원 진료과장, 구리시 치매안심센터 자문의, 저서 <가족의 심리학>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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