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오락기로 ‘갤러그’와 ‘철권’을 주로 했다던 어머니를 모시고 오락실을 찾은 적이 있다. VR 체험으로 오락의 신 경험을 맛보게 하고 싶었던 까닭이다. 어머니는 열심히 VR 체험을 했지만 오락이 끝나고  힘들어하셨다. 어머니는 무리해서 시대를 따라가려고 해서 멀미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대가 변하는 속도에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어. 그러니 멀미가 일지.’ 며칠 전 친구가 ‘메타버스(Metaverse)’에 대해 얘기할 때 참 별 이상한 게 등장하는구나, 생각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속이 울렁거리는 듯했다.


‘VR(virtual reality)’은 가상현실을 말한다. 게임 속에 본인이 들어가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VR은 빠른 발전 속도로 높은 완성도를 이루며 큰 인기를 끌고있다. 새로운 게임이 출시되면 이를 체험하기 위해 VR 게임 체험장을 찾는 이도 적지 않다. 이에 따라 최근 1~2년간 VR 멀미에 관련한 논문과 학술 기사가 100편도 넘게 쏟아졌다. 1인칭 시점으로 게임에 참여하는 VR 특성상 자연스레 멀미가 따라온 탓이다. VR 게임 체험장이든, 오락실이든 게임을 더 하고 싶은데 멀미 때문에 계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아쉬워했다. 우리는 왜 멀미를 하는 것일까?


보통 어릴 때 멀미를 많이 경험한다. 약 65%의 사람들이 멀미를 경험하고,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자주 발생한다. 주로 11세 경에 멀미 경험의 최대치를 찍고 그 후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미국 Northwestern 대학 신경 과학 및 로봇 공학 연구소의 연구를 살펴보자. 지구상에 생명체가 나타나고, 바다에서 살던 생물이 육지에 사는 생물로 진화하기 위해 여러 진화의 과정을 거쳤다. 그 과정에서 눈 크기가 커지게 되었다. 물이 아닌 공기를 통한 시력의 조합으로, 볼 수 있는 공간의 양을 100만 배 증가시켰다는 것이다. 여기에 바로 멀미의 기원이 있다.

멀미는 눈에 보이는 것과 귓속 안에서 감지한 움직임 사이에 불일치가 있을 때 발생한다. 과속하는 차 안에 있는 사람은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볼 수 있다. 눈으로 움직임을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균형에 관여하는 ‘고유수용기(proprioreceptors)’와 귓속의 ‘전정기관(the vestibular apparatus)’ 센서는 그 움직임을 다르게 느낀다. 눈은 내가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신호를 보내지만, 실제로는 앉아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정지되어 있음을 감지한다. 즉, ‘눈으로 들어오는 정보(움직임)’와 ‘귓속의 전정기관으로 들어오는 정보(정지)’가 달라 충돌하며 멀미를 느끼게 된다.


우리는 차를 타고 가다가 멀미 증상이 나타날 경우, 책을 읽거나 자동차 내부를 응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이의 센서는 자동차가 언덕을 오르내리거나 코너를 돌 때 움직임을 감지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방법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멀미를 잘 느끼는 사람 중 운전을 할 수 있는 분은 직접 운전대를 잡는 것을 추천한다. 막상 운전하는 당사자는 멀미가 덜하기 때문이다. 직접 운전하는 과정에서 핸들을 틀고 움직임을 예측, 실행하는 일은 ‘눈으로 들어오는 정보(움직임)’와 ‘귓속의 전정기관으로 들어오는 정보(정지)’의 충돌을 줄여준다.



멀미를 줄이는 방법은 아쉽게도 천천히 익숙해지는 것뿐이다.

호주 Swinburne University 대학 해양공학 교수 Alessandro Toffoli의 연구에 따르면, 해수면뿐 아니라 해수 아래에도 0.16~0.2Hz 정도의 파도가 일어난다. 흥미롭게도 인간이 멀미를 느끼지 않고 견딜 수 있는 움직임은 물고기의 움직임(0.2Hz)에 매우 가깝다고 한다.


멀미는 진화 과정에서 아직 해결되지 못한 과제일까? 현재 삶에 만족한다면 시대의 흐름에 꼭 발맞춰야 할 필요는 없다. 무리해서 따라가려 하다가는 어머니의 말마따나 멀미가 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멀미를 덜 하는 방법이 천천히 익숙해지는 것이듯, 우리는 새로이 찾아오는 변화에 차차 적응하면 되는 것이다.

김인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당신의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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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때 선생님 글을 만났더라면 좀더 빨리 우울감에서 헤어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글 내용이 너무 좋아 응원합니다. 사소한 관계의 행복이 회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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