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나를 태우는 또 다른 나 (27)

[정신의학신문 : 대한불안의학회 신영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직장은 어떤 곳일까? 전혀 다른 경험을 하며 살아온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이는 곳이다. 관계 및 업무 활동을 통해 개인과 사회를 적절히 존중해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처럼 직장은 서로의 이해관계와 존중이 중요하다. 존중은 모두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지만, 실제 직장생활을 들여다보면 사람마다 입장 차이가 다르다. 살아온 삶이 다르기 때문일까? 세대 간 갈등, 문화적인 면으로 사회적 불안을 살펴보자.

 

직장에서 MZ 세대 바라보기

‘MZ 세대’란 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통칭하는 말이다. 집단보다 개인의 행복을 지향하고, 미래보다는 현재를 중시한다는 특징 등으로 기성세대와 비교되며 주목받고 있다. 기성세대는 MZ세대를 궁금해하며 이렇게 말한다. ‘완전 별종이다. 이해가 안 돼.’ 여느 세대 차이가 그러하듯 이해하지 못하는 지점 때문에 갈등을 빚기도 한다. 가치관과 문화의 차이로 인한 갈등은 직장생활에서 더욱더 두드러진다. MZ 세대와 기성세대가 서로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MZ 세대라고 이야기했지만, 기성세대와 소위 ‘요즘 애들’이라고 일컬어지는 새로운 세대의 갈등은 오래전부터 줄곧 있었다. 살아온 시간과 겪은 경험이 다르니 세대 간의 갈등은 너무나 당연하다. 세대 갈등이 없던 시절은 없었다. 그러니 세대 갈등 자체를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 하지만 해결을 위해서라면 갈등을 그냥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갈등을 해결하려면 상대를 알고 이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MZ 세대를 별종으로 보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꼰대와 MZ 세대

‘꼰대’는 기성세대를 뜻하는 은어이며 비칭이다. 나이를 떠나, 권위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을 비하하는 데 사용하기도 한다. 꼰대는 상대가 아닌 자신의 입장에서 잔소리를 한다. 구구절절 옳은 이야기를 하는데, 막상 상대에게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MZ 세대는 그런 꼰대를 만나면 어떻게 할까?

귀를 막아버린다. MZ 세대는 끝없이 질문을 던지는 세대다. 기성세대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도 질문이라고 하는 걸까, 싶을 정도로 당연한 질문을 말이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열심히 일해야 해.’라는 말에 이렇게 반응한다. ‘왜 열심히 해야 하는데요?’ 기성세대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여기는 것에 대해 MZ 세대는 ‘왜?’라는 질문을 쏟아낸다. ‘회식이니까 오세요.’, ‘어른을 공격해야지.’,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 이런 말에 ‘왜요?’를 붙이는 것이다. 기성세대라면 황당하기 이를 데 없으며, 예의마저 없어 보이기도 할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기성세대가 의심하지 않았던 일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MZ 세대는 정말 별종인가? 이상한 애들인가?

 

MZ 세대는 이상하고 황당한 세대가 아니다. 위와 같은 ‘왜?’라는 질문에 윗세대, 기성세대가 합리적으로 설명해준다고 하자. MZ 세대는 그 설명과 대답을 수용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끝없이 생겨나는 의문과 질문에 합리적인 답을 듣지 못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왜 회사에서 열심히 일해야 하는데요??’

‘열심히 일해야지!’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기성세대는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해왔던 일에 대해 합리적으로 설명할 능력이 없다. 대화에는 이해가 필요하다. ‘아 저 사람, 저 세대, 저 아이들 입장에서는 이렇게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할 수 있겠구나.’와 같이 말이다. 상대의 생각을 듣고 이해하고 조정할 수 있다면, MZ 세대는 놀랍게도 기성세대의 생각과 말을 이해하고 따라올 수 있는 세대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소통의 출발은 여기서 가능해질 것이다.

사진_freepik
사진_freepik

 

사회적 불안과 개인으로서의 불안

기성세대와 MZ 세대의 갈등 외에도 인간관계, 직장에서의 문제는 대부분 바꾸기 힘들다. 사회적인 불안은 여기에 있다. 불안한 환경이면 불안하지 않은 환경이 만들면 된다. 말을 하는 것처럼 손쉽게 세상을 바꾸고 환경을 바꿀 수 있으면 좋겠지만 사실상 이는 어려운 일이다. 우리의 능력 밖에 있으며 시간이 오래 걸릴 때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이미 노력을 많이 해왔다. 하지만 노력은 천천히 반영되며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개인으로서 직장, 인간관계 등 사회적 불안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문제를 수용하기 전에, 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50대 환자 한 명은 우울증과 불안증도 겪고 있었다. 남편 때문에 괴로워하며, 남편은 원수처럼 여겼다.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하고, 불안하고, 우울해하기도 했다. 3개월쯤 뒤 다시 병원을 찾은 환자는 표정이 환해졌다. 이혼한 것일까? 남편이 세상에서 사라진 걸까? 아니다. 환자는 이렇게 말했다. ‘기분이 달라졌어요. 제가 막 힘들고 지쳐있을 땐 모든 게 짜증이었는데, 제 기분이 좋아지니까 괜찮게 보이더라고요.’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환자의 생각과 기분이 달라진 건 왜일까?

 

우리가 환경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쉬운 것은 나 자신을 바꾸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만사는 본인에게 달려있다. 같은 문제라도 나 자신이 불안할 때는 그 문제가 심각하게 여겨지며 짜증도 많이 난다. 하지만 마음이 편안할 때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어가기도 한다. 즉, 나의 상태에 따라 갈등 및 문제가 스트레스로 작용하거나 작용하지 않는다.

 

‘할 수 없는 일’과 ‘할 수 있는 일’ 구별하기

결혼 만족도 조사를 해보면 웃기는 일이 벌어진다. 결혼 당시에는 만족도가 굉장히 높게 나타난다. 하지만 점점 끝없이 추락하는 과정이 이어진다. 재미있는 점은 50대 중반쯤 되면 놀랍게도 다시 만족도가 올라간다는 것이다. 왜일까? 서로에 대해, 혹은 결혼으로 인한 만족도를 포기했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포기’란 부정적인 의미만을 말하지 않는다.

부부로서 살다가 50대 중반이 되면 상대를 바꾸기 위해 노력과 시간을 어지간히 들인 이후일 것이다. 내가 온 힘을 쓴다면 상대가 변할까? 그렇지 않다. 하지만 ‘저 인간은 변하지 않는구나. 원래 저렇게 생겨먹었구나.’ 생각할 수 있다. 포기함으로써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다. 여기에서 포기는 ‘수용’을 말한다. 내가 어찌할 수 없던 부분에 소모했던 에너지를 스스로 돌리게 되면 훨씬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 나 자신에게 중심을 두는 사람은 상대를 더 따뜻하게 대할 수 있고, 그에 따라 당연히 만족도가 올라간다. 이러한 불안 수용 과정은 가정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어느 날 40대 중반의 직장인이 찾아왔다. 직장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이른바 ‘진상’ 때문에 괴로움을 겪고 있었다. 직장인은 스트레스에 시달려 체중이 4kg 정도 빠졌다고 하며 눈물을 보였다. 회사에 다니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힘들면 그만둘 생각을 해야 하지 않은가 물었을 때, 나를 찾아온 이유가 드러났다. 직장인은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의 직장을 벗어날 수 없었다.

 

‘내년에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요. 그리고 지금 나가면 새로 갈 직장도 없어요.’

 

아침에는 다니자고 결심하고, 저녁에는 도저히 못 다니겠다는 마음이 들면 끝없이 불안하고 스트레스받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다니느냐 마느냐를 선택해야 다음 대책을 세울 수 있다. 너무 괴롭지만 도저히 개인적인 상황으로 인해 직장을 나올 수 없다면, 포기해야 한다. 불안과 스트레스에 질질 끌려다니면서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다. 위와 마찬가지로, 여기에서 포기는 ‘능동적으로 그 상황을 수용함’을 뜻한다. 그래야 내가 진짜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

직장을 다니며 갈등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갈등은 길어질수록 불안이 짙게 올라오기 마련이다. 장고 끝에 악수 둔다는 말과 같다. 계속 생각만 하게 되면 시야가 좁아지게 되고, 엉뚱한 결론으로 도달하게 된다. 불안증 환자에게 자신이 불안을 느끼는 지점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서 보라고 말한다. 그래야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필요한 일은 현실을 똑바로 인식하는 것이다. 현실 가운데 내가 정말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신영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원 박사
미네소타대학 연구조교수,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소장
대한 신경 정신의학회 중독특임이사
보건복지부 및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 국민권익위원장 표창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