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서대문 봄 정신과, 이호선 전문의] 

 

 

사연)

흔히 말하는 가부장적인 부모인 사람과 살고 있습니다.

현재 저는 갑작스럽게 몸이 좋지 않아져서 하던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쉬고 있는 상황입니다. 어머니께서 일을 하시고 아버지는 일을 못하시는 상황이셔서 집에 계십니다.

한 분은 제가 걷는 걸 보고 소리치고 빨리 걸어라고 하시고, 한 분은 집안일을 안 한다고 소리치십니다. 몸이 좋지 않아 밖으로 다니기 힘들다고 이야기하는데 아픈 거 참고 좀 걸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굳이 욕을 섞어가면서 해야 되는 말인지 의문이네요.

최근엔 저를 앉혀두고는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하고, 지금 제가 아프니 제 생각만 한다며 이기적이라고 하시면서 계속 큰 소리를 치셨습니다. 본인도 아픈 사람이라며 밖에서 일하는 사람 불쌍하지도 않냐고... 그러면서 그렇게 마음대로 살 거면 나가 살아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재작년에 제가 일을 하고 있을 당시 돈을 어느 정도 모아서 독립을 하겠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때 반응은, 한 분은 회초리를 가져와서 나갈 생각 하지도 말라고 소리치고, 한 분도 나가라고 그렇게 말하시더니 왜 나가냐면서 허락 안 해준다고 하셨고.. 정말 어이없었던 건 저를 집에서 못 나가게 하려고 하셨습니다. 일도 그만두라고 협박하셨고요.

그때 당시 부모의 협박에 저는 경찰에 신고할 거라고 하니 한분이 회초리로 제 배를 찌르면서 신고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딱 잡고서 째려보면서 신고할 거라고 소리친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마련한 집도 없어서 머물렀던 걸로 기억합니다. 나가지도 못하고 그렇게 흐지부지하게 그때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언제는 성인으로 보면서 크면 다 할 일 하라고 하면서 언제는 애기처럼 대하실 때도 있고... 어릴 때부터 말로 협박과 폭력을 일삼는 부모... 육체적으로 가하지 않지만 그게 더 고통스럽고 괴롭게 하더라고요.

그 외에도 제가 다 컸으니 욕을 저에게 해도 된다는 말과 이쁜 짓을 해야 자식이고 자식의 도리를 하라면서 본인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기를 바라십니다. 본인이 저지른 일로 인해 일어난 가정 붕괴가 제 탓이라고 한 적도 있습니다.

 

본인의 소유물로 생각하고 벗어나지 못하게 하면서 집에서 나가라고 소리칩니다.

저 사람들이 너무 구시대적이라고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저렇다 보니 상담치료도 받은 적이 있을 정도였고, 바꾸려고 하였지만 결국 바뀌지 않는다는 결론에 닿았습니다. 그 이후에도 집 나가겠다고 하였지만 허락해주지 않으셨고, 결국 저는 지금, 병을 얻고 직장을 잃었네요.

저는 제 상황은 나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암울한 건 변하지 않고 차별과 말로써 폭력, 협박하는 사람들과 함께 산다는 거예요.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네요.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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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사연자님, 안녕하세요. 서대문 봄 정신건강의학과 이호선 전문의입니다.

적어주신 사연 잘 읽었습니다. 사연자님은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언어적 폭력을 오래 경험해오셨고요. 심리적, 물리적인 독립이 이루어지지 않아, 끊임없이 부모님으로부터 지나친 간섭을 받고 있습니다. 당장은 일을 나갈 수 없고 다쳤다는 제약 때문에, 부모님과의 더욱 거리 두기가 안 되어 고통이 가중된 상태입니다.

그동안 사연자님께서 상담을 통해 부모님을 변화하려고 노력했지만, 변하지 못한 현실에 무력감을 많이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사연자님이 부모님에 대해 가지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하면 낮출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사연자님의 상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개념들을 소개하겠습니다.

 

가족치료에서는 가족은 상호작용하는 하나의 유기적인 체계이고, 개인은 이러한 체계의 한 부분을 담당한다고 봅니다. 개인의 ‘자기 분화’가 성숙하게 이루어진다면, 문제 있는 가족체계 안에서도 건강한 심리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자기 분화(Differentiation of self)’는 가족치료 이론가 보웬이 제시한 개념입니다. 자기 분화의 심리학적 정의는 개인의 생각과 감정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인데요. 이 둘을 구별할 수 있기에, 현상을 파악할 때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반응할 수 있게 합니다.

자기 분화 수준이 높은 사람은 자기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율성 또한 높습니다. 타인과의 심리적 분리가 이루어져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고, 타인이나 외부환경 자극에도 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면 자기 분화 수준이 낮은 사람은 자율성이 떨어지며, 타인과 개별화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타인의 감정과 의견에 쉽게 동조됩니다. 타인이 드러내는 감정에도 쉽게 반응하고, 오래 지속되며, 타인과 쉽게 ‘융합’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웹사이트에서 ‘자기 분화 척도’를 검색해보시면, 개인의 자기 분화 수준을 채점하고 확인해볼 수 있으니 검사해보시길 권합니다.

 

관계적인 측면에서의 자기 분화는 두 가지 힘의 균형을 가정합니다. 각 개인은 서로 연합하고자 하는 힘 즉, ‘연합성’과 분리하고자 하는 힘인, ‘개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합성과 개별성이 균형 있게 발달한 개인이 모인 가족이라면 건강한 상호작용이 이루어지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역기능적인 가족 문제가 발생합니다. 연합성과 개별성의 불균형 상태를 융합(fusion)이나 미분화(undifferentiation)라고 칭합니다.

 

이론적 개념을 이해했다면, 사연자님의 가족이 매우 ‘융합’된 상태임을 알아차리셨을 겁니다. 온 가족이 감정적으로 한 덩어리가 되어 정서적으로 함께 고착되어 있는 상태인 것이지요. 자기 분화 수준이 낮은 부모 슬하에 자란 자녀 역시 자기 분화 수준이 낮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러한 가족은 서로 간의 심리적 경계선이 없고, 지나치게 가깝기 때문에, 서로의 정서에 대한 반응성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즉, 쉽게 감정적인 영향을 주고 받습니다. 가족 구성원이 자신과 다른 타인이라는 개별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인식이 없기에, 나와 생각이 다르거나, 나의 예상과 다른 행동을 하는 것에 엄청난 정서적 위협과 과도한 불안을 느끼며, 상대방을 비난합니다.

사연자님의 부모님께서는 자기 분화가 낮은 상태이기 때문에, 서로를 한 덩어리로 연합시키고자 끊임없이 사연자님을 끌어당기고 있습니다. 사연자님이 ‘독립’이라는 개별성을 추구하면 이에 커다란 불안을 느끼시며, 처벌과 협박도 하는 상황이시고요. 일반적으로 부모들의 불안은 자녀들이 흡수하게 되고, 가족 모두의 불안이 증가하면 ‘동질화’에 대한 압력이 강해집니다. 똘똘 뭉치자는 것이죠. 그래서 분화 수준이 낮은 가족 구성원들은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개인 자신을 제대로 견디기 어렵게 됩니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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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자님과 부모님 또한 불안을 끊임없이 주고받는 ‘의존적’인 관계입니다. 심리적으로 가족에게 위안 삼고 의지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연자님은 지금의 가족을 벗어나는 것이 간절한 소망이지만, 한편 익숙한 체계에서 분리되는 것에서 오는 불안이 무의식적으로 매우 클 것입니다. 그래서 매몰차게 관계를 끊고 집을 나오지 못하셨던 것입니다. 사연자님도 지나치게 융합한 가족체계의 구성원으로서 오랫동안 적응한 상태라는 것이죠.

그렇지만 사연자님은 완전히 부모님과 융합되지 않은 자기만의 경계선을 찾았습니다. 사연자님만의 자율적인 세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과 부딪히고 계속 갈등이 일어나는 것이죠. 사연자님 자신의 감정을 보호하고 경계를 지키기가 매우 어렵고 힘들었을 것입니다. 부모님과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는 것은 지금의 가족체계에서 커다란 갈등과 스트레스를 초래합니다. 그럼에도 이를 감수하고 계속 부모님과 충돌하며, 자신을 가족과 분리하려고 노력하셨습니다.

 

앞으로도 사연자님이 자신답게 살아가려고 선택할수록 가족 내에서는 수용 받지 못하고, 도리어 이기적인 선택으로 비난받고, 사연자님의 죄책감을 자극하면서 개인이 아니라 가족을 우선시해야 하는 압박도 수차례 받을 것입니다. 가족 내에서 어떠한 비난과 평가절하를 당하더라도 ‘자신의 이야기’로 삼키지 않고, 보호해야 합니다.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사연자님에 대한 이야기는 전체 모습의 일부입니다. 사연자님께 이기적이라고 비난하더라도, 그리고 실제로 이기적인 선택을 했다 해도 괜찮습니다. 이는 ‘가족 한정’으로 나타날 수 있는 모습인 겁니다. 여전히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타적이고 배려심 있는 모습이 있을 겁니다.

그러니 부모님의 비난과 평가절하를 큰 상처로 가져오지 마시고, 하나의 의견으로만 접수하세요. 부모님의 세계는 오로지 자기 중심성만 존재하고, 객관성이 없습니다. 사연자님을 당신들 보고 싶은 대로 보기 때문에 사연자님을 왜곡해서 받아들일 겁니다. 무슨 말을 하시든 사연자님에 대한 왜곡이 있다는 전제를 두고 이에 휩쓸리지 않아야 합니다. 사연자님에게 하는 비난은 대부분 부모님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자신의 모습을 투사(projection)한 내용이 많을 겁니다. ‘이기적이다’, ‘가정 붕괴의 원인이다’와 같은 비난 모두 사실은 부모님의 당신의 이야기이니까요. 사연자님께 언어폭력을 하면, ‘당신이 너무 취약하기에 부정적인 감정들을 소화하지 못해 자녀에게 던지는구나.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100% 부모님의 것이다.’ 이렇게 경계를 세우셨으면 합니다.

 

부모님은 자녀 역할 이외에 직장인, 친구, 애인 등 수많은 역할을 맡는 사연자님의 다른 삶을 모릅니다. 사연자님에게 가족 이외의 중요한 삶의 영역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집에서만 보이는 모습을 보고 전체로 판단합니다. 얼마나 시야가 좁겠습니까. 한 개인의 관점을 변화하고 자기 세계를 벗어나게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부모님을 바꾸려는 시도는 포기하시는 게 오히려 에너지를 아끼는 방법입니다. 그렇지만 사연자님은 변화할 수 있는 주체입니다.

부모님 말씀대로 사연자님 마음대로 살 거면 나가서 살아야 합니다. 지금까지처럼 부모님의 좁은 세계 속에서 욕은 기꺼이 먹으면서 부모에게 이쁜 짓하는 자녀 역할을 하지 않기 위해서, 개인으로서 온전하게 살기 위해 집에서 반드시 나오셔야 합니다. 사연자님, 성인이 되었으니 독립하는 데에 부모의 허락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설득과 허락을 구하는 것은 심리적으로 의존하는 마음의 습관이 남아서입니다. 몸이 나아지면, 직장을 구해 필요한 짐만 챙겨 월세방이라도 들어가십시오.

부모님은 계속 타인을 비난하시면서 자기를 유지하는 분들이니 비난하도록 두세요. 비난받지 않고 지지받으며 독립할 방법은 현재는 없습니다. 부모님에겐 나쁜 자녀가 되겠지만, 괜찮습니다. 진정한 효도는 부모님 말씀 잘 듣는 것이 아니라, 씩씩하게 부모 영향 없이 혼자서도 잘 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연자님에겐 부모님보다 더 중요한 ‘삶’이 있습니다. 추진력을 얻기 위해 개인 상담을 다시 꾸준히 받아보셨으면 합니다. 전문가와 함께 익숙한 체계에서 벗어나는 불안을 잘 들여다보시고, 낯설더라도 자유로운 선택을 하시기를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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