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삼성 마음숲 정신과, 김재옥 전문의] 

 

 

 

화내기 참 좋은 세상입니다. 현재 얼마나 평온한 상태이든 간에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쉽게 화를 낼 수 있습니다. 후안무치한 범죄에 대한 인터넷 기사, 마스크를 제대로 안 쓴 지나가는 사람, 흐린 오늘 날씨, 내 기억 속 흑역사와 마주할 때마다 우리는 쉽게 화를 낼 수 있습니다.

가끔씩은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속에 이미 화가 가득한데, 이 화를 터뜨리기에 충분한 불꽃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날은 ‘오늘 하나 걸려봐라’ 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기도 합니다. 그러다 우연히 운이 없는 누군가가 불꽃이 되어 내 화가 터져 나오기도 합니다.

 

세상에 화낼 만한 일이 너무 많기에, 우리는 늘 화가 나 있습니다. 문제는 내가 늘 화를 낼 정도로 세상이 만만하지 않다는 겁니다. 화를 표현하기에 만만한 상황이나 사람을 마주치기 쉽지 않죠. 또 화를 내다보면, 주변 사람들과 내 안에 소중한 무언가가 모두 사라져 버리는 공허함을 마주치게 됩니다. 그래서 화는 참 곤란한 감정입니다. 쉽게 얻을 수는 있지만, 쉽게 해결할 수 없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이 화를 조절하기 위해 모두가 애쓰나 봅니다.

화를 조절하기 위해서 반드시 파악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내 화’라는 것의 구성 요소입니다.

 

이 요소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외적 자극, 다른 하나는 내적 자극 이죠. 외적 자극은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세상이 나에게 주는 자극 그 자체입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욕을 했다면, 그 욕 자체가 외적 자극이 되어 내 화를 일으키죠. 이런 외적 자극의 효과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외적 자극은 언제나 내적 자극을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욕을 한 뒤, 내 머릿속에 드는 생각, 기억 같은 것들이 내적 자극입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한 욕이, 내가 과거에 친구들에게서 비난받던 장면을 떠올리는 게 만들 수 있습니다. 외적 자극이 내적 자극을 만들어 낸 거죠. 더 나아가 단순히 과거의 장면이 아니라,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더 자극적인 내적 자극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이전에 날 칭찬했던 것도 사실은 비꼰 건가?”, “그러면 내가 없는 곳에서는 얼마나 욕하고 다니는 거야?” 이런 식으로 과거를 재해석을 하거나, “앞으로도 계속 나에게 이런 식이겠네”, “사과는커녕 계속 욕을 할 거야”처럼 극단적인 미래를 예상합니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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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런 내적 자극은 현재 상황과는 무관하지만, 나에게 현재 화를 불러일으킨다는 겁니다. 외적 자극만으로 10 정도만 낼 화가 내적 자극까지 더해져 100 정도로 화가 나는 셈이죠.

나를 화나게 할 만한 외적 자극을 준 사람이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스스로도 상대방이 10 정도의 화를 낼 것이라고 예상을 합니다. ‘이 정도로 비난을 했으니 화가 날만 하지.’ 이렇게요. 따라서 상대가 10 정도의 화를 낸다면 상황이 더 악화되지는 않습니다. 이미 예상한 상황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100 정도의 화를 상대가 낸다면, 90만큼은 다시 내적 자극이 되어 문제를 악화시키죠. 화는 두 사람의 내적 자극을 오가며 점점 커지고 결국 두 사람의 감정을 모두 소진시키는 거대한 화염이 됩니다.

 

따라서 분노를 조절하는 방법의 핵심은 내 마음속에 있는 내적 자극을 조절하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생각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타인이 나에게 주는 모욕과 자극을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은 고립된 곳에서 격리된 채로 살아가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물론 인터넷도 되지 않아야 하겠죠.

내적 자극으로 스스로 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믿기 어려워하는 분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 자신 내면의 화를 만나는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자신 스스로를 화나게 만드는 것이죠.

 

방법은 간단합니다. 과거에 겪었던 피해에 대한 상상을 계속하면 됩니다. 가장 최근에 받은 피해, 가장 큰 피해, 가장 억울했던 피해 등 이런 상상에 더해서 미래에도 같은 일이 일어날 거라는 상상을 더하면 효과가 좋습니다. 화라는 감정을 억지로 내려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런 상상만으로 감정은 이미 인지할 수 있을 만큼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렇게 화를 스스로 창조해 본 경험을 하게 되면, 이후 일상에서 마주치는 분노 속에서 내가 스스로 얼마만큼의 화를 만들어 내는지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러면 내적 자극을, 스스로를 더 화나게 하는 정신 활동을 멈출 수 있는 단계에 이르죠. 사람은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 행동은 반복하지 않게 되니까요.

 

우리는 언제든지 화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끝없는 분노 속에서 사는 것을 결정할 수도 있고, 최소한의 화와 함께 사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이미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능력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면, 그 능력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니 평온한 상태에서 최선을 다해 화를 일으켜 보시기를 바랍니다. 잠시의 불편함은 경험하시겠지만, 분명 화를 조절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발견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김재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삼성마음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저서 <정신건강의학과는 처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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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생님 경험까지 알려주셔서 더 와닿아요. 재옥쌤 짱!"
    "정말 도움됩니다. 조언 들으며 자유를 느꼈어요. 실제로 적용해볼게요."
    "늘 따뜻하게 사람을 감싸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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