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선의 [가족의 심리학] (8)

[정신의학신문 : 서대문 봄 정신과, 이호선 전문의] 

 

 

 

아내는 어머니를 대신할 수 없다

- 아내에게서 어머니를 찾으려 하는 남편들

 

결혼한 지 3개월째인 Y 씨는 저녁을 먹다가 정색을 하고 아내에게 말했다.

“자기야, 오해하지 말고 들어. 내가 정말 참다 참다 하는 말인데…… 너는 음식 솜씨가 진짜 없는 것 같아. 그래 경험이 없으니까 그럴 수 있다고 쳐. 일단 정성이 너무 없잖아. 대충 아무렇게나 하니 맛이 나겠니? 이럴 바엔 앞으로 시켜 먹든가 나가서 먹든가 하자.”

아내 M 씨는 입 안에 든 밥알이 튀어나올 뻔했다. 선배가 밥 먹고 가자는 걸 마다하고 퇴근하자마자 집에 들어와 나름대로 차린다고 차린 밥상이었는데, 남편이 이런 반응을 보이니 어이가 없었다. 맥이 탁 풀렸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숟가락을 내려놓고 대번 쏘아붙였다.

“뭐라고? 그게 할 말이니? 맛없는 건 물론이고 정성이 일도 없다고? 대충 아무렇게나 한다고? 야, 진짜 말이 안 나오네. 먹지 마, 먹지 말라고! 넌 내가 얼마나 힘든 줄 모르지?”

 

M 씨는 숟가락을 내동댕이치듯 내려놓고 벌떡 일어났다. 참을 수 없었다.

“아니, 내 말은…… 옛날에 엄마는 밑반찬도 많이 해놓고 국이나 찌개도 간 딱 맞춰서 참 맛깔나게 해주셨는데, 왜 너는 도저히 그 맛이 안 나느냔 말이지. 엄마가 가르쳐준다고 해도 네가 싫다고 했잖아? 내 식대로 해보겠다며? 그런데 왜 나아지질 않느냐 이 말이야.”

남편의 말은 불난 집에 부채질한 꼴이 되었다. M 씨는 고함치듯 대꾸했다.

“야, 너 그럼 엄마랑 살지 왜 나랑 결혼했니? 엄마가 해준 음식이 그렇게 맛있고 먹고 싶으면 엄마한테 가서 살아. 그동안 내가 해주는 맛없는 음식 먹느라 고생했다. 잘 가라!”

M 씨는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다. Y 씨는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지만, 물은 엎질러진 뒤였다. 두 사람은 한동안 살벌한 분위기 속에 냉랭한 상태로 지내야 했다. 그나마 이혼 이야기까지 나오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가슴을 쓸어내릴 만한 위기 상황이었다.

사진_freepik
사진_freepik

 

이와 비슷한 사례를 가진 부부들이 의외로 많다. 음식 솜씨는 물론 말투, 씀씀이, 정리 정돈, 청소를 비롯해 생활 전반에 걸쳐 툭하면 아내를 자기 어머니와 비교하면서 핀잔을 주거나 타박을 하는 것이다. 어머니를 궁극의 경지 혹은 모델이 되는 인물로 설정해 놓고 아내를 그에 맞추려 한다든가 아내에게서 자꾸만 어머니의 흔적이나 모습을 발견하려고 애쓰는 남편들이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서로에 대해 잘 모르고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부족한 젊은 부부에게서만 발생하는 일은 아니다. 결혼 생활 수십 년 차인 오래된 부부 사이에서도 심심찮게 벌어지는 일이다. 이런 취급을 받으며 기분 좋을 아내는 없다. 아내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릴 수밖에 없고, 시어머니와의 사이도 더욱 불편해지기 마련이다.

 

“남편은 아내에게서 두 번째 어머니를 찾고, 아내는 남편에게서 첫 아이의 모습을 발견한다.” 이런 말이 있다. 많은 사람이 이 말에 공감하지만, 여기서부터 부부 사이의 갈등이 시작되고 비극이 잉태된다. 남편에게 어머니와 아내는 경중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존재들이다. 어머니는 자신을 낳고 길러준 여인이다. 아내는 인생의 파트너이자 결혼 생활이 유지되는 동안 자신을 지탱해주고 도와주는 여인이다. 비교와 가늠의 대상이 아니다. 매사 이 두 여인을 비교하고 평가할 때 문제가 심각해진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고부간의 갈등이란 시어머니와 아내의 문제라기보다는 두 사람 사이에서 방황하는 남편의 문제일 수도 있다.

갈등의 싹은 신혼 초 부부관계에서 잘 드러난다. 많은 부부가 결혼 후 새로운 가정이 꾸려졌음에도 여전히 결혼 전 부모님 가정에서 살아온 익숙한 방식 그대로 생활하려고 한다. 배우자가 자신과 사뭇 다른 문화를 가진 가정에서 살아왔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같은 상황에서도 자신과는 전혀 다른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서로에 관해 충분히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하는 게 보통이다. 당연히 의견이 대립하고 충돌한다. 이런 상태에서 시어머니가 개입하면 상황이 더 힘들어지기 마련이다. 시어머니는 아들인 남편 편을 들게 되고, 며느리인 아내는 외톨이라는 생각에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이 자신을 어머니와 비교하면 감정이 폭발하고야 만다.

 

왜 남편은 아내에게서 자신의 어머니를 찾으려는 것일까?

 

남편이 아내에게서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하려고 애쓰는 것은 자기 어머니의 상(像)을 아내에게 투사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투사(投射, Projection)란 긍정적이든 혹은 부정적이든 자신의 무의식적인 충동이나 특성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함으로써 자신에게 그런 충동이나 특성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려는 심리를 가리킨다. 자신을 힘들고 괴롭게 하는 죄의식, 열등감, 자책감, 공격성 같은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돌림으로써 현실을 부정하는 방어기제로 삼기도 하고, 자신이 평소 누군가에게 공감과 위안을 얻으며 익숙하다고 느꼈던 감정을 전혀 다른 사람에게 찾으려 함으로써 현실을 부정하는 방어기제로 삼기도 한다. 남편은 결혼 전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얻었던 편안하고 안정적인 감정을 아내에게 적용하려고 한다. 어머니와의 애착 관계가 강할수록 아내에게 자신의 애착 대상인 어머니를 투사할 수 있다.

사진_freepik
사진_freepik

 

이런 관계는 몇 가지 문제를 낳게 된다.

 

첫째, 남편의 정서적인 독립이 더욱 어려워진다. 장성해서 새로운 가정을 꾸려 독립했으면 남자는 아내에게 남편으로서 역할을 다해야 하고, 자녀에게 아버지로서 역할을 다해야 한다. 자신이 서 있을 곳은 과거의 둥지가 아니라 지금의 가정이다. 그러나 남편이 과거 속의 ‘어머니-아들 관계’에만 머물러 있기에 현재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가 없다.

둘째, 아내의 심리적인 고충이 점점 가중된다. 아내는 남편과 애정을 쌓거나 부부로서 협력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남편을 보면 마치 큰아들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문제로 남편과 갈등이 생기는 경우, 남편은 홀로 남게 되고 아내와 자녀는 다른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된다. 결국 가족이 이원화되다 보니 자녀가 아버지를 낯설어하고 피하는 상황에까지 이른다.

셋째, 자녀에게도 악영향이 미칠 수 있다. 남편과 자녀가 멀어지는 것과 반비례해서 아내와 자녀의 애착 관계는 갈수록 깊어진다. 따라서 자녀가 정서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시기를 놓칠 수 있다. 자라면서 나이에 맞게 분리와 독립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게 어려워진다는 이야기다. 심각하면 독립 자체를 막을 수도 있다. 아내에게 자신의 어머니를 투사하는 남편의 심리가 부부 사이를 멀어지게 함은 물론 자녀의 미래까지 망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성인이 되면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고 부모에게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독립해야 한다. 마땅히 경제적 정서적으로도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부모로부터 분리되는 과정을 거쳐야만 당당한 성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다. 부모는 부모고 나는 나다. 의식적으로라도 이런 마음을 가져야 한다. 부모 역시 자식을 떠나보내는 연습을 해야 하고 자식 또한 부모에게서 떠나가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과정이 없이 나이만 먹은 상태에서 생각 없이 결혼한 남성은 엄연히 아내가 있고 자신의 가정이 생겼음에도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의존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옆에 있는 사람은 내 아내인데 그녀에게서 어머니의 체취를 발견하려 애쓰고,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을 때 상실감과 불안감을 느끼는 것이다.

 

※ 본 기사에 등장하는 사례는 이해를 돕기 위해 가공된 것으로 실제 사례가 아닙니다.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한양대병원 외래교수, 한양대구리병원 임상강사
(전)성안드레아병원 진료과장, 구리시 치매안심센터 자문의, 저서 <가족의 심리학> 출간
  • 애독자 응원 한 마디
  • "매번 감사합니다. 정말 공감되는 글입니다. "
    "너무 좋은 글이라는 걸 느끼고 담아갑니다. "
    "이런 글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듭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