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9일은 세계 아동 학대 예방의 날이다. 스위스 제네바에 본사를 둔 국제 NGO 단체 WWSF(Woman’s World Summit Foundation)에서 2000년에 제정하였다.

5분은 어떤 시간일까? 동네 버스의 배차 간격, 뮤직비디오 한 개 시청, 아침에 이부자리에서 뭉그적거리기 등등. 너무나도 아쉽고 짧은 5분마다, 전 세계 아이들이 폭력으로 인해 한 명씩 죽어가고 있다.

세계 아동 학대 예방의 날은 이러한 실상을 세계에 알리고, 아이들에게 행해지는 착취, 인신매매뿐 아니라 어린이에 대한 모든 형태의 폭력과 고문을 근절하려는 목적을 지닌다. 한국 또한 2007년부터 세계 아동 학대 예방의 날을 기념하고 있다. 2012년 아동복지법을 개정하여, 아동 학대 예방 주간과 아동 학대 예방의 날을 법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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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를 떠올리면 어떤 장면이 생각나는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아무도 모른다>는 아동 방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방치된 아이들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얼굴과 몸에 때가 끼고 수척해지는 과정이 그려진다. 공지영 작가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도가니>는 청각장애인 학교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을 두고 있다. 교장과 교사들이 청각 장애아를 상대로 저지른 비인간적인 성폭력과 학대를 다룬다.

아동학대를 다룬 영화는 많지만, 대부분 신체에 가해지는 ‘신체적 학대’만을 생각하기 쉽다. 아동학대에 처한 아이를 떠올렸을 때 멍든 팔다리, 보호받지 못하는 느낌의 후줄근한 옷차림 등이 먼저 떠오르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나라 아동복지법에서 말하는 ‘아동학대’란 아래의 의미를 지닌다.

 

보호자를 포함한 성인에 의하여 만 18세 미만 아동의 건강·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신체적·정신적·성적 폭력 또는 가혹행위 및 아동의 보호자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유기와 방임.

 

‘아동학대’라는 단어를 들으면 심각하게 느껴지지만, 실제로 벌어지는 아동학대에 대한 민감성은 많이 부족하다. ‘나도 맞고 자랐다.’, ‘잘 되라는 뜻으로 그런 거다.’ 등의 언행은 ‘사랑의 매’라는 말이 통용되던 것과 다르지 않다. 물론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은 지속해서 개선되고 있다. 2015년 11,715건에 머물던 아동학대 신고 건수가 2020년 42,251건으로 늘어났다. 그렇다면 아동학대는 어디서 누구에게 가장 많이 발생할까? 학교 등의 교육기관? 아이를 잘 모르는 낯선 사람?

놀랍게도, 혹은 너무나 뻔하게도 아동의 학대는 집(87%)에서 부모(82%)가 신체적 학대나 정서적 학대(79.8%)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 때문에 외부에서 알기가 어려우며, 심각한 사회적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친권의 강력함으로 해결이 쉽지 않다. 또한 재학대 신고의 95.1%가 부모에 의한 학대다.

 

현 2021년, 코로나 19로 인해 아이들이 가정에 머무르는 기간이 길어지며 학대의 위험성이 높아지고 있다. 학교에서 체벌이 금지되는 등 사회 인식이 개선되고 있으나 정서적 학대는 관찰 및 발견이 쉽지 않다. 정서적 학대는 학대의 효과가 가시화될 때까지 비교적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특징을 지닌다. 하지만 그렇게 켜켜이 쌓인 학대의 영향은 심각한 심리적 손상을 가져온다.

영국의 Southampton 대학 심리학과 연구에 따르면, 신체적 학대 경험자는 학대 경험이 없는 사람에 비해 자살 위험이 5배 높았다. 또한 정서적 학대는 다른 학대 유형보다 우울과 불안 증상을 더 많이 일으키고 자살 위험도 12배 높게 나타났다.

사진_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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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는 성인에 비해 밀접한 관계를 지속해서 맺을 수 있는 대상이 한정적이다. 또한 관계의 예시를 볼 수 있는 환경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즉 어려움이 발생했을 때, 문제를 해결하고 대처하는 방법을 주 양육자에게 배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이를 학대하는 것은 아이를 자신이 가치 없고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존재라는 ‘생각의 장’ 안에 가두는 것과 같다.

어릴 때부터 나무에 묶여있던 코끼리는 어른이 되어 나무보다 몸집이 몇 배가 커지고 힘이 세져도 묶여있던 나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정신의학과에는 종종 ‘작은 나무에 묶여있는 어른 코끼리’와 같은 어른이 방문한다. 아동학대는 성인이 되어서까지 많은 영향을 미치며, 그 영향 아래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어떤 사후 대책보다 예방이 더욱더 중요하다.

우리는 신체에 가하는 폭력만이 학대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정서적 학대는 신체적 학대에 비해 눈에 띄지 않아 더욱더 조심해야 한다. 어린이를 비난하고 수치심을 주는 모욕, 어린이가 아끼는 물건을 빌미로 협박하거나 폭력을 가하겠다는 협박, 사회적으로 부적절한 행동을 격려하고 허용하는 것, 어린이를 무시하거나 돌보지 않는 것, 의학과 교육적 필요를 제공하지 않는 것 모두 학대의 범위에 들어간다.

 

<아무도 모른다>에서 아이들을 돌보지 않고 방치한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 인생을 살 테니, 너희는 너희 인생을 살렴.” 어른으로 성장한 자녀에게 한 말이라면 멋진 의미로 들릴 수 있겠지만, 영화 속 아이들은 초등학생과 유치원생에 지나지 않는다. 영화는 극단적인 방치 문제를 다루지만, 현실은 극단적이거나 심각한 상황으로 여겨지지 않는 다양한 방식으로 학대가 벌어진다. 아이는 적절한 돌봄과 교육, 의학적 제공이 필요하다. 이를 행하지 않는 것은 학대다.

우리나라는 보건복지부 산하에는 중앙 아동보호 전문기관이 있다. 아동학대의 징후가 의심된다면 112나 1366으로 신고해야 한다. 어떤 이유에서도 어린이에게 훈육을 빌미로 학대를 일상화하거나, 그런 기미를 눈치채더라도 개인적인 가정사라 치부하고 모르는 척해서는 안 된다.

 

사람이 온다는 건

사실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 정현종 「방문객」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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